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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공주 ‘춘마곡 추갑사’ … 마곡사는 봄도 가을도 아름다워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9-16 05:38:06
  • 수정 2021-09-16 0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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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곡사의 남원과 북원, 극락교 건너 수행과 교화의 장으로 나뉘어 … 갑사-남매탑-동학사 등산 코스엔 향수

충남 공주는 금강과 계룡산의 본거지다. 일찍이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었다. 봄 경치는 마곡사가, 가을 단풍은 갑사가 으뜸이라는 의미다.   


마곡사는 공주 도심의 북서쪽인 사곡면 운암리, 갑사는 도심의 남동쪽인 계룡면 중장리에 있다. 이보다 규모가 작으나 공주의 3대 사찰로 꼽히는 동학사는 계룡면보다도 더 동쪽 코너인 반포면 학봉리에 있다. 과거 천안-논산 고속도로가 나기 전에는 호남고속도로에서 접근하기 쉬운 갑사나 동학사로 많은 탐방객이 몰렸으나 지금은 마곡사로 더 쏠리는 경향이 있다.


마곡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화를 간직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그러나 거대 관광사찰들처럼 번잡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공주의 봄은 계룡산 갑사에서 시작해 태화산 마곡사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초봄에 마곡사의 벚꽃과 백목련이 꽃비와 함께 떨어지면 붉은 철쭉꽃이 이어서 봄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태화산에서 흘러나온 맑고 차가운 마곡천(태화천 또는 희지천으로도 불림)을 따라 S자형 갓길로 몇 구비 돌다보면 마곡사의 입구인 해탈문에 이르게 된다.


겨울을 지나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지는 마곡의 봄에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으니 ‘춘마곡’이란 말이 생겨났다. 마곡사란 절 이름은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 명종 2년에 절을 재건하고 설법할 때 법문을 들으러 오거나 경치를 구경하려 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가득 차니 마치 삼(麻)이 서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삼을 재배하던 골짜기에 지은 절이라 마곡사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면 마곡천을 따라 조성된 포장도로와 나무데크길이 절 입구까지 이어진다. 


길지 중 길지에 자리잡은 마곡사 … 세조 ‘만세불망지지’라 찬탄 


마곡사는 뒤로는 국사봉(392m), 서쪽으로는 옥녀봉(361m), 동쪽으로는 태화산(613m)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모양새다. 국사봉에서 발원한 마곡천은 절집을 관통하여 만곡을 이루며 흐른다. 


마곡사 터는 산봉우리들 사이로 청계수가 흐르는 이른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자리다.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태다. 절 터를 두고 도선대사는 ‘천만년 오래도록 절이 들어앉아 있을 큰 터이며 삼재가 들지 못하는 곳’이며 ‘유구(維鳩)와 마곡 두 냇가 사이는 천 사람의 목숨을 살릴만한 곳’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명종 재위 당시 천문학자 격암 남사고는 ‘유구마곡 양수지간은 만인의 생명을 살릴만한 곳이다’라며 기근이나 병란의 염려가 없는 십승지로 꼽았다. 피부병 치료 차 온양온천 행차길에 마곡사에 들른 세조는 매봉 아래 작은 봉우리에 올라 ‘만세 동안 없어지지 않을 땅’이라고 감탄하여 영산전 현판을 직접 써서 내리고, 잡역의 부담을 면하게 하는 수패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9세기 체징이 창건, 왕실의 태실, 충남 조계종의 본산


마곡사는 9세기 신라 후기시대의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이 창건했다. 1172년 고려 명종 때 지눌 이후 범일, 도선, 각순 대사 등이 수차례 중수했다. 


1851년(철종 2년)에 작성된 <사적입안>에는 마곡사가 640년(백제 무왕 41년, 선덕여왕 9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남아 있는 자료에 근거했을 때 웅진(공주) 사람이었던 체징이 창건했다는 게 더 타당하다. 


1782년 대화재로 대법당을 비롯한 전각이 모두 소실된 이후 1788년(정조 12년) 제봉체주(霽峰體珠, 1780~1788 활동) 스님에 의해  대광보전 개건 등 의미 있는 중창이 이뤄졌고 왕실의 태실로 봉해지는 등 마곡사의 사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충남의 모든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남원에서 수행하고 극락교 건너 북원에선 대중 교화  


마곡사의 대웅보전(뒤쪽)과 대광보전은 일직선상에 수직으로 배치돼 있다.

마곡사는 사찰을 관통하는 개울을 경계로 수행공간인 남원과 교화공간인 북원으로 나뉘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원에는 중심 전각인 영산전 외에 홍성루, 선방인 수선사, 요사채인 매화당, 명부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전(보물 제800호)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1650년 경 중수)이다. 400년 세월을 감당하기가 버거운지 영산전 마룻바닥은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린다. 휘어진 나무기둥과 서까래, 빛바랜 단청, 우물 정자 모양의 천장에도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앉아 있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보처불 등 칠불이 모셔져 있다. 7불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마곡사를 목불의 보고라고도 부른다. 칠불 주변에는 소형 불상들이 가득해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는 마곡사의 독특한 경내 배치도

사바세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의 해탈문과 풍채가 당당한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 잉어때가 노니는 계곡물 위의 극락교를 건너면 북원으로 향한다. 북원은 교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주불전인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을 비롯해 응진전, 관음전, 범종루, 심검당, 대향각 및 요사 등이 자리잡고 있다.


주불전인 정면 5칸의 대광보전(보물 제802호)과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은 수직과 수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종축선상에 서 있다. 마곡사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기법이다. 두 건물은 규모와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아름드리 싸리나무 기둥으로 지어져 더 유명하다. 화엄사상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은 닫집과 용머리 문양의 공포 그리고 수많은 벽화들로 장식돼 화려하고 장엄하다.


대광보전 앞마당에 조성된 5층 석탑(보물 제799호)은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상륜부가 청동제 ‘풍마동’(風磨銅)으로 장식돼 있다. 풍마동은 바람을 받으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이글거리며 반짝인다는 구리를 말한다. 이런 양식의 석탑은 국내에서는 마곡사 석탑이 유일하다. 탑 왼편 응진전 앞에는 멋들어진 향나무 하나가 자라고 있는데 백범 김구 선생이 심은 것이다.


남방화소의 화승의 맥을 잇는 마곡사 


마곡사는 화승(畵僧)의 맥을 이어온 화소사찰(畵所寺刹)로 북방화소(금강산 유점사), 경산화소(수락산 흥국사)와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남방화소의 본거지이다. 


이곳에서 형성된 마곡사 화맥은 19세기 금호당 약효, 보응당 문성, 금용당 일섭 스님을 거쳐 불화의 거장인 순천 송광사의 석정스님으로 이어진다. 조선 말 마곡사에 상주한 스님이 300여 명에 달하고 그중 80여 명이 화승이었다고 하며 백련암 가는 길에는 국내 사찰 중 유일하게 근현대 불모(佛母, 불화를 그리거나 단청을 시공하는 사람) 6명의 업적을 기린 ‘불모비림’이 조성돼 있다.


다양한 불화와 인물화 및 산수화들로 장식된 마곡사 불전들은 불모들의 '불화 갤러리'이다. 대광보전, 대웅보전, 영산전, 지장전 등에 그려진 영산회상도, 삼장보살도(동국대 박물관 보관), 칠성불화, 수월백의관음보살도, 나한도, 신중화, 금강역사도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승들의 남방화소 역할을 한 마곡사에 걸려 있는 수월백의관음보살도

특히 대광보전 후면 벽에 그려진 수월백의관음보살도는 압권이다. 대광보전과 영산전의 신중화는 마곡사 화맥의 계보를 잇는 금호당 약효의 작품이다. 이 정도 규모의 불화가 조성되어 있는 사찰은 구례 화엄사, 양산 통도사, 순천 선암사 등 손에 꼽는다. 


또 영산전 현판은 세조의 친필이다.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왔던 세조가 헛되이 돌아가며 남긴 글씨로 알려지고 있다. 대광보전과 현판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의 글씨다. 심검당 현판은 송하 조윤형, 심검당 측면에 걸린 마곡사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마곡사에서는 이처럼 덤으로 묵향도 느낄 수 있다.


만공과 백범의 자취가 서린 곳 


일제강점기 마곡사와 만공 스님과 백범 김구 선생의 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만공은 마곡사 주지를 지냈고, 백범은 은거 생활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만공이 마곡사 주지로 있던 1937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서 만공이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와 병합하려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 1874~1955)와 친일 주지들에게 호통을 치며 단호하게 반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1본산 주지 중에서 만공만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 독립운동가로서의 만공의 삶을 재조명하고 독립유공자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백범은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군 중좌를 처단한 뒤 인천형무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해 마곡사에서 은거 생활을 하던 중 원성 스님이란 법명으로 출가하였다. 응진전 옆에 백범기념관(백범당)과 해방 후 다시 찾아와 승려 시절을 기념해 심은 향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라고 있다. 백범이 삭발식을 치른 삭발바위와 군왕대 및 백련암을 연결한 ‘백범 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마곡사가 일제강점기에 만공, 백범과 같은 ‘위험 인물’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호국불교의 성격을 띤 화엄도량이었기에 가능했을 듯  싶다. 


태화산 마곡사의 단풍 든 가을 풍경

마곡사는 춘마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을 단풍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태화산 자락의 적송이 잘 보존돼 5km 등산로가 명상과 걷기에 좋다. ‘솔바람길’ 또는 ‘솔잎융단길’로 불린다. 은적암 또는 백련암 입구에서 출발해 마곡사에서 관리하는 송림욕장을 거쳐 활인봉(423m)과 나발봉(417m) 등 태화산 능선을 타고 다시 마곡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전통불교문화원)로 돌아오는 코스다. 중간에 세조가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라며 감탄했던 군왕대도 있다. 올 추석 들를 말한 명소, 올 가을 단풍 여행지로 마곡사를 추천한다. 


단풍과 폭포가 아름다운 으뜸 사찰 ‘갑사’ 


계룡산 서쪽 자락의 갑사는 고승 아도화상이 백제 구이신왕 원년인 420년 창건했다. 대웅전 등 30여개의 전각이 조밀하게 들어선 가운데 천년고찰답게 산신불 괘불탱화, 월인석보판목, 동종 등 문화재가 많다. 당대 최고의 사찰이어서 갑사(甲寺)로 쭉 불리어왔다. 절을 창건할 당시 짐을 나르던 소가 냇물가에서 기절해 죽자 소의 공을 치하해 세웠다는 공우탑(功牛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높이 15m의 철당간 및 지주도 볼거리다.


계룡산 갑사의 대웅전과 가을 풍경, 자료 공주시

계룡저수지를 지나 동쪽의 갑사 입구로 이어지는 국도변은 은행나무가 즐비하다. 갑사탐방지원센터에서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약 2㎞(5리) 정도의 길에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한 오리숲이 조성돼 있다. 일주문 앞 1600년 된 느티나무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괴목대신제가 매년 열린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가리는 거목들로 갑자기 산중으로 접어든 느낌이 든다. 


갑사는 가을철 단풍 등산코스로 붐빈다. 갑사에서 동편 계곡길로  600여m를 올라가면 난데없는 물소리가 들리니 바로 용문폭포다.  10m쯤 되는 높이에서 물이 힘차게 떨어진다. 이곳에서 600여m를 더 오르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천진보탑과 신흥암이 나온다. 조금 더 등산하면 금잔디고개에 이른다. 여기서 동편으로 삼불봉고개, 남매탑, 신선봉, 장군봉을 거쳐 병사골(갑사의 정동쪽)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또는 금잔디고개→큰골삼거리→상신탐방지원센터(갑사의 북동쪽)로 내려갈 수도 있다.


심불봉고개에서 남매탑을 거쳐 문수암, 동학사(갑사의 동남쪽)로 내려오는 짧은 거리의 코스도 있다. 동학사에서 다시 서쪽으로 돌아 관음봉→연천봉고개→갑사로 돌아올 수도 있다. 연천봉에서 신원사(갑사의 남쪽)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다. 


동학사는 비구니스님이 수행, 거처하는 절로 매년 4월 초순 벚꽃이 만개할 시기의 2km 꽃길이 아름답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연천봉 중턱 상원암 근처 남매탑(청량사지5층석탑, 쌍탑)은 아름다운 전설로 발길을 끈다. 한 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갑사로 가는 길’이란 수필 때문에 왠지 50대 이전 세대에게는 막연히 가보고 싶은 그리움이 남는 곳이 남매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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