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안과 분야 세계 유일 유전자 치료제인 노바티스의 '럭스터나주'(Luxturna 성분명 보레티진 네파보벡, voretigene neparvovec-rzyl)의 수술적 투여에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럭스터나는 ‘레버선천흑암시'(Leber’s Congenital Amaurosis)와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을 유발하는 여러 유전자 중 RPE65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성망막변성 치료제로 2017년 12월 1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레베선천흑암시는 망막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망막의 시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소실되어 어려서부터 심한 시력 저하, 야맹증, 안진(눈떨림)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빛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거나 밝은 곳에서도 캄캄한 어둠 속에 등불 하나 켠 수준의 빛만 감지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10만명 중 2~3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RPE65는 망막에서 시각회로의 중요한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로서 1993년 미국 국립의료원 국립안센터의 마이클 레드몬(Michael Redmond) 박사팀에 의하여 처음 발견됐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빛이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으로 전달되는 게 어려워져 심한 야맹증과 시력 저하, 시야 협착 증상이 나타나고 점차 심해져 실명에 이르게 된다.
럭스터나는 인체에 무해하도록 만든 아데노연관바이러스에 RPE65 정상 유전자를 복제한 뒤 환자 망막에 투여해 변이 유전자 대신 정상 유전자가 작동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임상시험 결과, 치료 후 정상 수준의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어도 영구적인 시력상실을 막고,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빛 감지 능력을 높여주는 등 시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팀은 지난 7월 13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레버선천흑암시 유전자치료제인 럭스터나를 유리체절제술을 통해 한 눈에 투여했다고 밝혔다. 1주일 뒤 반대편 눈에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약물 투여는 유리체절제술을 시행한 뒤 망막과 망막 아래 망막색소상피세포층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약을 투여하는 고도로 정교한 과정이다. 이번 수술에는 첨단 유리체망막 수술 기법인 3D 디지털 보조수술 방법이 활용됐다.
환자는 20대 장미지씨다. 생후 5개월 무렵 처음 저시력증 진단을 받았다. 창문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들었다. 장씨의 수술 전 시력은 양안 모두 0.1 이하였다. 안경 등의 도움을 받아도 더 이상 시력을 교정하는 건 어렵다. 시력뿐만 아니라 시야도 매우 좁아 중심부의 아주 일부 시야만이 남아 있고 이마저도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간신히 사물을 구별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쾌활한 성격 덕에 장씨 얼굴엔 늘 웃음이 머무른다. 글씨를 최대한 키워야 하지만 또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며 호탕한 목소리로 웃는다. 현재는 안마를 배워 국내 한 기업체에서 건강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 장씨를 괴롭히는 건 극심한 야맹증이다. 해가 지면 바깥 출입은 아예 할 수 없을 정도다. 낮이라도 어두운 실내나 지하보도는 주변 도움이 필요하다. 이대로 환한 대낮에도 빛을 전혀 감지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른다는 불안이 뒤따른다고 한다. 실제로 서서히 시기능이 저하되는 중이며 수년 내 완전 실명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선천성 시력이상으로 여겼던 장씨가 희귀 유전질환인 레버선천흑암시를 진단받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씨를 어려서부터 진료해 온 오세열 삼성서울병원 소아 안과 교수는 유전성망막변성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함께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김상진 교수에게 환자를 부탁했다. 장씨를 유심히 살펴 본 김 교수는 환자의 증상과 망막의 미세 구조 이상 등을 토대로 장씨가 레버선천흑암시일 수 있다고 보고 유전자 진단을 해보기로 했다.
김 교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 방식으로 장씨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 RPE65 유전자의 병적 변이를 확인했다. RPE65 유전자 이상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소아나 젊은 환자들에서 세심한 진료와 검사를 통해 발견되므로 환자 발견이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미국, 유럽 여러 나라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정식 승인이 나질 않아 경과를 지켜보던 중 럭스터나 판권을 가진 노바티스에 김 교수가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에서 럭스터나가 처음 투여된 까닭에 장씨의 상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평가할 방법도 김 교수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이번에 직접 만들었다. 수술 후 장씨의 시력도 다소 좋아지고 시야도 넓어지는 효과가 확인됐으나, 이것만으로는 야맹증의 호전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내에 2차원 평면 미로를 바닥에 설치하고 화살표를 따라 도착점에 다다르기까지 빛의 밝기(조도)와 소요된 시간을 종합해 환자의 빛 감지 능력과 주변 사물의 인식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매우 약한 조도에서 시작해 점차 밝기를 올려가며 어느 정도의 밝기에서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길을 찾아 통과하는지 검사한 결과, 장 씨는 럭스터나 투여 전 검사에서는 150럭스 (lux)까지 조도를 올려야 화살표를 따라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었으나 수술 후 훨씬 낮은 밝기인 10럭스 조도에서 스스로 화살표를 보며 길을 찾아 검사를 통과했다.
150럭스는 맑은 날 해 뜨기 30분 전 정도의 밝기이며, 10럭스는 도시에서 해가 지고 한 시간 정도 후의 밝기로 일상생활을 위한 야간 시기능이 크게 향상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럭스터나를 투여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장씨는 “세상이 이렇게 환한 줄 미처 몰랐다”며 “평소 영화관을 가고 싶었지만 용기 내지 못했는데 혼자서 꼭 가보고 싶다”고 한다.
김상진 교수는 “국내에선 안과 의사들도 유전성망막변성은 불치의 병이라고 단정하고 유전 진단을 시도하는 것조차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아직은 한 가지 유전자에 대한 치료제만 나와 있지만, 수년내 여러 유전자 치료제들이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정책적 배려가 더해진다면 해당 환자들에겐 말 그대로 한줄기 빛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안과에서는 김상진 교수와 함돈일 교수가 망막색소변성, 레버선천흑암시, 원뿔각막세포이상증 등 다양한 유전성 망막변성의 유전 진단을 차세대염기서열분석을 통해 시행하고 있다. 특히 안과 과장인 함돈일 교수는 미국 국립의료원 국립안센터에서 RPE65 유전자를 발견한 레이몬드 박사와 함께 RPE65 연구를 했던 터라 “이번 성과를 더욱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진 교수는 망막질환 중 희귀 유전성 망막 질환과 소아, 선천 망막 질환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포스트게놈유전체사업에 2013년부터 참여하여 국내 망막 및 시각 관련 질환의 유전체 분석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결손 마우스를 이용해 스타가르트병과 망막색소변성을 유발하는 ABCA4 유전자의 유전자 치료제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