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간호사제 도입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와 빠른 시행을 촉구하는 대한간호협회가 각각 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시행규칙 개정안과 관련된 맞대응 시위를 벌이며 대립하고 있다.
응급구조사협회는 시위를 통해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은 타 보건의료 직군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며 생존 및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고, 타 보건의료 직종의 사회적 필요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독단적인 법률”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의료법 제78조에 의하면 전문간호사는 자격을 인정받은 해당 분야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전문간호법 개정안’은 보건·마취·정신·가정·감염관리·산업·응급·노인·중환자·호스피스·종양·임상·아동 등 13개 분야별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각각의 특성에 맞게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문간호사들은 의사의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또는 '지도하에'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예컨대 보건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시행하는 처치, 주사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보건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돼있다.
응급구조사협회 “간호 및 진료의 보조 범위 벗어난 위법행위”
이는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인 ‘간호 및 진료의 보조’ 등의 범위를 벗어나는 위법 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응급구조사들의 생각이다. 특히 응급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포함된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 시술·처치·관리 및 그 밖의 응급전문간호에 필요한 업무’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명시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인 응급처치 영역과 응급의학과 의사 고유의 업무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응급구조사협회보다 하루 앞선 지난달 31일부터 시위를 이어오는 중이다.
의협은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의 즉각 폐기를 촉구하며 13일까지 릴레이 1인시위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진행한다. 7일째인 9월 6일 의협 박진규 의무 부회장·김경화 기획이사·연준흠 보험이사, 그리고 한국여자의사회 이미정 부회장·김현정 학술이사가 보건복지부 앞 1인시위 현장을 방문한데 이어, 이번에는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이 1인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박성민 의장은 6일 보건복지부 세종 청사 앞에서 "무면허자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를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전문간호사의 의사 면허 침해를 강하게 비판했다.개정안에는 13개 분야별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모호해 향후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박성민 의장이 힘을 보태고 나선 것이다.
의협,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무시한 개정안 철회해야
박성민 의장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의협과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등에서 연이어 성명을 발표하는 등 범의료계의 반대 움직임이 뜨겁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전문간호사 단독으로 환자에 대한 처방·투약 등을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진의인지 의심스럽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무시하는 이번 개정안을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전문가에게 국민의 건강을 맡길 수는 없다"고 밝힌 박 의장은 "보건복지부가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정안 저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협 집행부 임원진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이번 릴레이 1인시위가 입법예고 기간 동안 이어지는 만큼, 타 의료계 단체와 회원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한다"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장기간 진행 중인 1인시위를 응원했다.
이에 맞서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도 3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달 2일 입법예고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시행규칙 개정안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간호사협회, 대학4년 대학원2년 임상3년 으로 전문성
이날 첫 주자로 곽월희 제1부회장과 조문숙 병원간호사회장이 나섰으며, 오후에는 신경림 회장도 현장에 합류해 뜻을 모았다. 복지부는 지난달 2일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은 간호대 4년과 대학원 2년에 임상 3년 이상 등 해당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전문성에 맞춰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신경림 회장은 "현재 의료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법진료의 근원은 의사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의협은 정부와 간호사 등 다른 보건전문인력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회장은 "의협은 의료인간의 협력과 상생을 위해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법제화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간협은 1인 시위를 오는 13일까지 전문간호사 13개 영역별 간호사 단체 임원진들이 하루에 3명씩 차례로 나설 계획이다.
보건의료노조·복지부 합의문서 '의사 증원' 부분도 갈등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 개정안에 더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와의 합의문에 담긴 '의사 증원'도 의사와 간호사 사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의사 증원에 대해 간협 등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찬성하고 있으나 의협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협은 합의문에 포함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 의사 증원' 항목에 대해 의사 단체와의 논의 없이 보건의료노조와 합의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의협은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 의사 증원을 의정 협의체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시도한다면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단 정부는 해당 합의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합의문에 의정 논의를 거치겠다는 문구를 정확히 담겼다고 강조한다.
합의문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고려하고, 의정 및 사회적 논의를 거쳐 지역, 공공, 필수분야에 적당한 의사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진료환경과 근무여건 개선방안을 마련하면서 공공의사인력 양성,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포함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마련, 추진한다"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