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일식집을 운영하며 방송에도 출연했던 정호영 셰프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으로 인한 ‘매출 쇼크’를 고백하며 자영업자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정 셰프는 KBS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해 “(코로나 이전에는) 매장 3곳을 합친 한 달 매출이 2억5000만원 정도였다”며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적자가 3억원 이상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월세와 20여명의 직원 월급 등 한 달 고정비가 1억8000만원 정도인데, 코로나 발생 후 매출에 극심한 타격을 입으면서 적자 폭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적용되기 시작한 지난달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영업자는 K방역을 위한 노예인가요?” 게시글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우리를 1년 반 동안 문 닫게 하고 코로나가 종식됐느냐”며 “자영업자는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정부한테 수탈과 착취를 당하는 노예인 것이냐”고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거리 두기 4단계 조치를 ‘짧고 굵게’ 끝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강도 방역 조치가 한 달이 넘도록 완화될 기미가 없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자영업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포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사장 김모(66)씨는 “대체 언제까지 자영업자들을 쥐어짤 생각이냐”고 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장사를 제대로 못 했는데 거리 두기 4단계까지 적용되니 이젠 장사를 하는 의미가 없다”며 “공무원들에게 1년 반 동안 월급을 반으로 깎겠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아니냐”고 했다.
국내 최대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도 정부 조치를 성토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소상공인이 나라의 호구냐”는 글을 올렸다.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네티즌은 “마스크를 안 쓰고 수영장·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진도 정말 많은데 이런 사람은 규제 안 하고 소상공인만 잡도리하는 게 맞느냐”고 했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분투하고 세금 또박또박 내는데, 소상공인들만 이 피해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자영업자 게시판에 올라온다.
정부의 고강도 거리 두기 조치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중환자, 사망자 발생 규모가 오히려 커지는 추세다. 정부는 올 들어서만 14차례 거리 두기 단계를 연장할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한다.이런 가운데 방역 전문 학회인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구성한 ‘코로나19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6일 “정부의 방역 시스템이 붕괴 직전의 한계 상황에 놓였다”는 긴급 성명을 내놨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4차 대유행이 번지는 지금은 이동량 감소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성명을 발표한 홍윤철(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 공대위 위원장은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몇 달 안에 확진자가 최대 1만명까지 늘 수 있다”며 “거리 두기 중심의 방역 체계에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차 땐 이동량 33% 줄었는데, 지금은 0.57%
방역 전문가들은 데이터 분석과 전문가 토론을 통해 현행 사회적 거리 두기 ‘약효’가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공대위 토론회 자료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의 효과’에 따르면, 작년 1차 유행 초기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효과를 보였고, 2차 유행 초반 즈음에도 감소 효과가 났다. 그러나 특히 4차 대유행 들어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코로나 감염 확산 감소에 효과를 보인다는 객관적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가 구글의 이동량 통계를 통해 분석해 낸 국내 이동량 데이터를 근거로 들었다. 코로나 1차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처음 시작된 작년 3월 2일 즈음엔 ‘쇼핑센터·놀이시설이나 소점포 등을 찾는 이동량’이, 코로나 이전과 견주어 33%까지 크게 줄었고, 2차 유행 중인 작년 9월 에도 이동량은 29.7%까지 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번 4차 대유행(7월 27일 이후) 시기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오후 6시 이후 2인까지만 만나게 하는 거리 두기 초강수 대책이 나왔지만, 이동량은 0.57% 찔끔 감소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거리 두기 피로감이 누적되고, 여름 휴가철·광복절 연휴까지 겹치면서 초강수 거리 두기에도 불구하고 이동량 감소는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이에 지난 7월 12일 수도권 4단계 거리 두기 발표 당시, 당국의 “짧고 굵은 방역 강화”란 약속은 계속 ‘희망 고문’으로 바뀌고 있다. 하루 확진자 네 자릿수 기록은 31일까지 56일째 이어지고, 중증 환자는 4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하루 확진자 1만명대 보건 인력 부족도 난제
전문가들은 의료 현장 인력의 시급한 증원을 주문했다. 지금껏 국내 코로나 방역은 진단 검사(Test)·역학 추적(Trace)·신속한 치료(Treat)란 3T를 근간으로 했는데, 인력 부족으로 빨리 확진자를 찾아내 격리하는 기능이 뚝 떨어진 것이 감염 확산을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감염 경로를 확인 못 하는 ‘조사 중’ 비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달 13일부터 26일 사이 2주간 방역 당국에 신고된 확진자 2만5131명 가운데, 33.4%인 8386명의 감염 경로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3월 하루 확진자가 400명일 때와 현재 2000명 안팎 확진자를 걸러내기 위한 업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방역 인력은 별반 충원되지 않아, “하루 1만명대 이상 확진자 발생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같은 상황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내달 2일 총파업까지 예고한 바 있다.
행정명령으로 옥죄는 방역보다는 자발적이고 오랫동안 동참할 수 있는 방역 정책 개발이 나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예컨대 뉴질랜드에서 쓰는 ‘사회적 버블’ 개념이 거론되고 있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등 매일 얼굴 보는 사람 10명 미만 정도는 ‘사회적 버블’로 묶어 자유로이 보게 하되, 나머지 모임은 자제시키는 식이다. 공대위는“20개월 동안 코로나와 싸우면서 시민과 방역 요원, 의료진이 모두 한계 상황”이라며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K방역’ 2.0 대전환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고통받는 K방역, 자화자찬은 큰 실망
공대위는 “K방역은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확진자가 줄고 국민이 편안한 생활을 해야 성공이지 국민이 고통받는 상태는 성공이 아니다” 라며“최근에 논의되는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가 달성되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말했다. 이어“정부는 작년 여름부터 백신 구매에 나섰다면 접종을 원하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국내 물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행히 우리 방역과 의료 체계는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찾아내고, 빠르게 치료하는’ K방역의 우수성은 현장에서 십분 발휘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일일 확진자가 네자릿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K방역을 자화자찬하는것은 백신 수급도 원활치 않고 델타변이로 확진자 확산세를 예측하지 못해 이제 자화자찬은 신뢰가 가진 않는다.
방역 인력 확충…국민의 자발적 ‘동선 기부’도 필요
홍윤철교수는 “K방역이 성공했다며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방역 정책을 짜야 하고 정부 주도, 행정 명령 중심의 방역 정책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민 참여형’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주장했다. 이어 “지금처럼 억제·규제하는 방식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정책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과 접촉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이어 덴마크도 ‘위드 코로나’로 대전환
덴마크가 코로나를 ‘사회적으로 중대한 질병’으로 분류하던 것을 종료하고, 코로나 방역을 위한 모든 제한 조치를 다음 달 10일 전면 해제하기로 했다. 코로나를 더 이상 심각한 전염병이 아닌 ‘감기’처럼 일상에 존재하는 질병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19일 봉쇄 해제를 발표한 영국보다 더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덴마크의 이번 조치는 최근 영국을 필두로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도입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해당 국가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늘더라도, 백신 접종이 증가했기 때문에 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며 규제를 완화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이달 기준 백신 접종 완료자 중 돌파 감염을 통해 입원할 정도로 코로나 중증을 앓을 확률은 0.005%, 사망 확률은 0.001%에 불과하다.영국은 지난달 19일 봉쇄 조치 전면 해제를 발표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으로 바꿨고, 결혼식·장례식 등 참석 인원 제한도 풀었다. 1m 거리 두기도 사라졌다.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축구 경기를 보러 갈 경우 ‘백신 접종 증명서’ 확인을 권고하지만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다.
프랑스는 올해 11월 15일까지 식당, 카페, 술집, 영화관, 박물관 등 다중 이용시설에 들어갈 때 보건 증명서를 요구하나 모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실내 공간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의무 규정만 적용되고 있을 뿐 나머지 방역 규칙은 거의 사라졌다.
싱가포르도 방역 규제를 추가 완화했다. 웅예 쿵 싱가포르 보건부장관은 29일 “우리 인구의 80%가 백신을 접종받았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싱가포르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 한해 지난 10일부터 식당에서의 취식을 허용했으며, 쇼핑몰과 영화관 이용 정원을 늘렸다고 전했다.
덴마크의 이번 조치에 대한 경계의 시선도 있다. 해우니케 덴마크 보건 장관은 성명에서 “팬데믹이 끝난 것은 아니”라며 “정부는 코로나가 다시 사회의 주요 기능들에 위협이 될 경우 신속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도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전국민 70%가 접종해도 집단면역이 어렵고, 코로나 종식은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위드 코로나' 전략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특히 현재 대유행 중인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해 감염력이 2배 이상 높고,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는 10~30% 떨어져 집단면역을 위한 조건이 더 까다로워졌다.
에방의학 전문가들은 ‘코로나 종식 불가, 코로나와의 공존'이 확실해지는 가운데, "델타 변이 등장으로 코로나를 종식시킬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며 “이제 코로나로 인한 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것에 방역의 초점을 맞추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시급히 이뤄지면 안되고, 고위험군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웬만큼 이뤄졌을 때 싱가퍼르형식으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