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회사원 A씨는 “요즘은 지하철이나 길을 가다가 누가 휴대폰을 들고만 있어도 나를 찍는 것 같고 괜히 의식하게 되고 불안하다.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30대 주부 B씨는 “공중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는 것 자체가 이젠 불안과 두려움 탓에 이용을 꺼리게 된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주위에는 불안감과 감시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별히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급증했다기보다는 정보화사회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이 유출돼 사생활 침해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자신도 이런 위험에 노출될까 스트레스를 받는 이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개인은 매일, 몇 초 내지 수 시간 동안 의도하지 않은 시선에 노출된다. 일상이 CCTV로 시작해 CCTV로 끝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다양한 CCTV가 불특정 다수의 삶을 빈틈없이 기록하고 있다. 또 누구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 속 카메라는 사생활의 경계를 침해하는 복병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던 여고생의 치마 속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다가 적발된 사람도 있고 유명 방송 앵커도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가 적발돼 패가망신을 당했다. 버스. 지하철, 목욕탕. 커피숍, 해수욕장, 길거리 등 어딜 가든 주위를 꼼꼼히 살펴야 할 지경이다.
‘감시공포증’은 막연한 불안장애의 한 종류
‘누군가 날 감시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물론 다 정신질환은 아니다. 감시공포증은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체의 가장 기본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공포증이 개인, 가정, 직장 생활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면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감시당한다는 근거가 상당한 경우, 한번이라도 피해를 당한 이후에 드는 감시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감시공포증은 평소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완벽한 성격의 성향을 가진 사람,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사람에서 나타나기 쉽다. 이는 불안장애의 한 형태로 가장 흔하고 일단 발생하면 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불안장애는 크게 막연한 불안이 주요 증상인 범불안장애와 공황장애,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과 공포성 불안장애인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감시공포증은 막연한 불안으로 전자에 속한다.
우울증 환자, 망상장애로 발전하기 쉬워
‘누가 엿듣거나 엿보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심해지면 망상장애로까지 번진다.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시공포증이 생겨도 자신에게 정신질환적인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환자들은 매스컴이 보도하는 개인정보 침해·유출 사례를 증거로 들이대며 자인하길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 귀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다는 식의 망상에 빠져 있다. 주위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설득해도 환자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인정보 침해 사례들을 나열하며 “봐라, 이렇게 도청을 당하지 않느냐”고 반박하기 일쑤이기 때문에 이를 객관적으로 이해시키는 작업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망상장애는 의심과 동시에 호기심이 많고, 집요하며 편집증적 요소를 지닌 사람에서 나타나기 쉽다. 중년 이후 우울증이 심해지면 이런 증상이 동반되거나 더욱 고착화된다. 좌절이나 배신 등 정신적 스트레스도 망상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서구에서는 전 인구의 1% 정도가 망상장애를 갖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비슷한 수준이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준 올리는 항불안제로 치료
감시공포증에 따르는 망상장애에는 약물치료가 최우선이다. 불안장애는 뇌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등의 결핍으로 인해 초래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높이는 게 약물치료의 핵심이다.
불안장애 환자는 증상이 심해지면 혈압이 오르고 몸은 떨리거나 저린다. 흉부 압박감, 헐떡거림, 비지땀, 어지러움, 동공확대, 배뇨장애, 설사, 복부불쾌감 등을 보인다.
감시공포증의 치료는 증상의 양상에 따라 달라진다. 노이로제(편집증적 신경과민)의 경우 약물치료보다는 정신이완이 더 효과적이다. 서호석 교수는 “노이로제는 신경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며 “평소 생활에 긴장도가 높다면 명상이나 단전호흡, 취미활동 등으로 정신을 이완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심신이 이완되지 않으면 ‘아프다’는 생각이 더욱 불안장애를 악화시키게 된다. 정신과 약물에 앞서 소화불량, 두통 등 육체적인 증상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다음 항불안제를 투여하는 게 효과적이다.
항불안제만 복용하기도 하지만 항우울제와 병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항불안제는 두렵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교감신경계 흥분을 푸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장기, 과량 복용하면 약물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인지행동요법이 큰 도움이 된다. 습관이 돼버린 불안에 대한 인지패턴을 교정해준다. 약물에 비해 효과가 늦은 대신 더 오래 간다. 보통 12~20주간 치료한다.
약물과 상담치료를 대신할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은?
첫째, 자기조절법이다. 감시공포증 등 대다수의 불안장애는 근육이완법, 복식호흡, 바이오피드백, 자기최면, 명상,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컨트롤 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
둘째, 과도한 카페인 음료 섭취나 음주를 피하도록 한다. 각성제 등 신경자극약물 또는 마약 등을 복용하고 있다면 당연히 끊을 것을 권고한다. 불안을 당장 없애기 위해 음주를 한다든지, 의사 처방 없이 마음대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셋째,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한다. 그래도 불안한 감정이나 신체적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즉시 의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