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보조인력, PA(Physician Assistant)에 대한 논쟁은 수년째 반복되지만 매번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현재 관련 법안이 없는 PA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단체와 이미 존재하는 PA를 양성화해 제도 안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최근엔 코로나19 바이러스 4차 유행 조짐과 의사 파업의 영향으로 증가한 PA와 전문간호사의 의료행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울대병원 160명 임상전담간호사 추진 일파만파
지난 5월 17일 서울대병원은 160명 가량의 PA를 임상전담간호사(CPN·Clinical Practice Nurse)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있다. 이를 위해 소속도 간호본부에서 의사·교수가 속한 진료과로 바꿀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은 현행 의료법 테두리 안에서 의사 보조·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와 범위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실제 양성화가 이뤄질 경우 처우도 확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사자 격인 간호계는 PA의 업무는 간호사의 의무가 아니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PA에 대한 문제는 어김없이 현장을 달궜다. 보건복지부는 PA문제를 해결할 대책으로 전문간호사 제도를 활용해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시행규칙에 정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2018년 국회를 통과해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법 시행 후 수개월 지났음에도 정부가 업무 범위를 규정한 시행규칙을 만들지 않아 전문간호사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문간호사제도 활성화를 위한 연구'란 보고서를 내놓고 만연한 PA 인력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간호사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직종 간 업무 범위 갈등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직접 나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PA 수는 2016년 9명에서 2020년 6월에 27명으로 늘어났고, 같은 기간 수술 참여 건수는 5108건 중 62건(1.2%)에서 1635건 중 509건(31.1%)로 늘었다.
PA는 수술 보조,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 전공의 보조 및 대체 역할을 한다. 이런 직렬은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이지만, 국내에서는 의료법상 의료행위를 할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는 PA에 관련된 규정과 교육과정이 없어서 임상에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간호사를 선발하고 있다. PA의 업무는 간호사, 전문간호사, 전공의 등의 업무가 혼재돼 PA는 물론 타 의료종사자, 대상자에게 심각한 혼란을 줄 수 있다.
현재 PA는 의료법에 없는 직종으로 그들의 행위는 불법 의료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부족한 진료보조 인력을 충족시킬 인력 활용 방안으로 PA 제도 도입의 법제화와 불명확한 업무 경계 규정화 등 관련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의료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불법적인 PA의 의료행위는 의료 면허체계의 붕괴와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며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도 "수익 증대를 위해서는 불법도 서슴지 않고 전공의 교육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대학병원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이러한 현실을 통렬히 인식해 불법에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반발 했다.
미국의 의사보조사 프로그램과 국내 실태
미국에서 의사 보조사(PA)에 대한 필요성은 1961년 처음 제기됐다.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연례회의에서 찰스 허드슨 회원은 의사를 보조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 직종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에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의견에 동조한 몇몇 의사들이 새로운 의료보조 직종의 교육 프로그램의 수립에 참여했고 결정적으로 1965년 듀크대 유진 스티드 교수의 도움이 더해져 결국 4명의 전직 해군 의무병 출신인 제대 군인들을 듀크 대병원에서 훈련시켜 의사 보조사로 활동하게 한 게 의사 보조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워싱턴주립대와 에모리대가 차례로 의사 보조사 프로그램 수립에 동참했고 1970년에는 마침내 미국의사협회가 의사 보조사를 정식 의료 보조인력으로 인정, 훈련 과정 지침을 만들어 프로그램 운영에 반영토록 했다.
1965년 시작된 의료 직종 치고는 굉장히 빠른 시일에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그만큼 이 직종에 대한 필요성을 협회도 공감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초기에는 학사과정 중 2년을 마친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2년간의 집중 교육을 거치게 해 의과학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의사 보조사 교육을 진행하였으나 2010년대 들어와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석사과정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서 대학에서 의학과 관련된 기초과학을 공부하고 어느 정도 의료 경력(병원 내 봉사활동 포함)을 쌓아 진학하는 게 의사 보조사가 되는 정석이 됐다.
미국에서 의사 보조사는 의사의 관리 하에서만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처방이 가능하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의사 보조사도 미국의 1차 진료 필드에서 그야말로 대활약을 하고 있다. 석사 2년의 교육과정만 마치고 추가적인 전문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주로 가정의학과, 내과에서 종사한다.
대형병원에 고용된 경우는 내원한 환자에 대한 1차 진료까지 맡는다. 그러나 심층교육을 받으면 외과 영역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2년의 석사 과정 이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따라서 전문성이 결정되며 피부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의 분야로 갈 수 있다.
예커대 흉부외과 전문의의 의사 보조사는 수술팀의 일원으로 집도의를 보조하게 된다. 피부과에서는 1차 상담과 간단한 시술을 담당한다. 성형외과의 경우는 꼭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면 스스로 수술을 집도하기도 한다.
개원가 판치는 무면허 불법 수술 일명 ‘오더리’
얼마 전 강남지역의 한 성형외과 원장이 무면허 의료업자를 고용, 성형수술을 하고 국세청 로비로 탈세를 벌인 사실이 적발됐다. 이 병원은 오더리를 활용,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심지어는 일반의사들을 대상으로 2000만~3000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이 오더리에게 교육을 받게 하기도 했다. 오더리는 병원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월 50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하며 의료사고 유발률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더리 창궐의 1차 원인은 병원들의 도 넘은 수익 욕심에 있다는 분석이다. 수요가 급증한 성형외과뿐 아니라 정형외과에서도 척추질환 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수술을 권유하면서 무리하게 잡힌 수술일정 소화를 위해 오더리를 투입시키고 있다. 병원으로선 일반 의사보다 인건비도 저렴해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오더리는 대형 성형외과에서 마취 후 집도의를 갈아 치우는 섀도우 닥터보다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척추 및 관절 수술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일부 병원은 저렴한 가격을 내걸기 위해 오더리를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며 "오더리가 없으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다"고 했다. 일부 지방병원들은 부족한 의료인력 수급 실태가 빚은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정당화해줄 순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기기 시장의 과당 경쟁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다. 전국에 의료기기 업체가 3000곳 정도 되는데 병원을 상대로 제품을 팔아야 하는 ‘을’의 입장으로선 기기 사용을 시연한다는 명목 하에서 영업사원들 종종 수술까지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획기적인 근절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필수 의사협회 회장은 “‘유령수술’이라 불리는 오더리 수술은 반인륜성과 사기성을 모두 갖춘 범죄”라며 “적발 시 의사면허를 10년간 또는 영구 정지시키는 등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하루빨리 미국, 유럽처럼 정규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하거나 자격증 제도를 마련하는 등 양성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의료계 다수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