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주목받는 물질이 있다. 바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이다.
석면의 유해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군 발암 물질이기 때문이다. 석면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생활환경 곳곳에 똬리를 틀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유해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드물다.
따라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석면으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히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 1군 발암물질 지정…석면폐증·악성중피종 발병 주범
석면(asbestos)은 사문석 같은 돌에 포함된 섬유질의 광물이다. 섬유처럼 유연하고 열에 강하며 방부성·절연성·방적성 등 우수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다 가격마저 저렴해 ‘기적의 물질’ 또는 ‘마법의 물질’로 찬사를 받으며 건축 자재·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됐다. 특히 1800년대 중반 직포기 개발로 석면이 본격적으로 상업 용도로 이용되면서 단열재·마찰재(브레이크라이닝)·지붕재·천장재·흡음재 등으로 널리 사용됐다.
과거 석면은 광물성 규산염이기 때문에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유해물질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영국에서 악성중피종이 석면 노출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유해성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1987년 석면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성 등급에 따르면 석면은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실한’ 그룹1(1등급)에 해당한다. ‘1급 발암물질’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확실한 물질을 의미한다.
석면이 최근 들어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한 이유는 석면을 호흡할 경우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4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폐가 딱딱하게 굳고 하얗게 변하는 석면폐증, 폐암, 복막 또는 흉막에서 발생하는 암인 악성중피종 등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악성중피종은 대부분 환자가 발병 후 1년 이내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질’을 의미하는 석면은 인체에 흡입되면 사라지지 않고 결국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그야말로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물질인 셈이다.
더욱이 석면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수천분의 1 정도로 미세해 호흡하면 코나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사람의 폐로 직접 침투한다는데 심각성이 크다.
2007년 이전 건축물 석면건축자재 사용…재개발·리모델링 건물 철거 시 분진 주의해야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이후 석면의 사용이 급증해 건축물 재료로 널리 사용됐고 1992년 최고 사용량을 기록한 후 1990년대 말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였다. 이후 소량만 사용되던 석면은 2009년 4월에 영·유아들이 땀띠나 습진을 막기 위해 엉덩이나 겨드랑이에 바르는 가루인 베이비파우더와 일부 화장품·의약품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석면파동을 야기해 급기야 2009년부터 석면의 국내사용을 전면 금지와 함께 석면이 함유된 수입 탈크의 국내 반입 전면 차단 조치가 시행됐다.
이와 함께 의약품과 의약외품, 화장품에서 석면이 검출될 경우 최소 3개월 간 제조업무 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법적, 행정적 규제 장치도 마련했다. 석면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57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용이 전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석면의 국내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석면안전관리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석면으로 인한 질병의 공포는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석면 사용량은 1990년대 중반 절정에 이르렀고 2009년 석면의 신규 사용이 금지될 때까지 지속해서 사용됐다. 당장 석면광산 또는 석면방직공장, 석면제품제조 공장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들의 직업적 노출은 차치하고서라도 석면광산·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의 경우도 석면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례로 2007년 7월 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11.6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환경부가 2008년부터 석면광산·공장 인근 주민에 대한 건강 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충남 지역 석면광산 인근 주민 215명 중 110명에게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하철 역사·학교·학원 등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건축물에 여전히 석면 건축자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의료기관에도 석면건축자재가 사용됐으며 건물에서 석면이 검출되기도 했다. 질병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의료기관에서 오히려 석면 분진에 노출되어 암이 유발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과거 석면을 사용한 노후한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어 건축물을 해체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작업자나 주변 거주자가 석면에 노출될 수 있다.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석면이 함유된 보온재· 보일러·천장 등을 해체·수리하는 작업을 수행할 경우에도 노출될 수 있으며 폐선박(과거 선박에도 석면사용이 많았음)을 해체하거나 수리하는 과정에서도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석면 질병의 잠복기가 최대 40년인 점을 고려할 때 석면 환자의 발생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며 앞으로 더욱 증가해 2045년경에는 석면 환자 수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석면에 대한 건강 장해를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석면의 공포 시작…노출 방지 위해 석면 함유제품 피하고 금연해야
이처럼 석면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크게 우려됨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석면 관련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일반인의 경우 공기 중 날리는 석면 먼지를 호흡기를 통해 흡입해 노출되는데 이를 인지하고 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석면함유 제품의 사용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흡연은 석면에 의한 폐암 발생을 11배에서 55배까지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만큼 가급적 금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체 형태의 건축자재 등 석면첨가 제품은 분진으로 날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해체·파손·수리과정에서 노출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재개발에 따른 철거 또는 건축물의 리모델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석면을 함유한 건축물의 분진이 날릴 수 있는 만큼 외부활동 시 건물해체 또는 리모델링 현장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건축물의 철거·해체 작업을 하는 작업자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석면조사를 통해 건축물의 석면건축자재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석면건축물이 확인된 경우 건축물에 사용된 석면건축자재의 위치·면적·상태 등을 표시한 건축물 석면지도를 작성해 건축물 유지·보수 공사작업 중 석면 비산을 방지하는 등의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또 공용 건물의 경우 건물주는 개인의 재산권 보호보다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건축물 내 석면정보를 모든 이용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용자는 건축물의 훼손을 예방하며 안전하게 이용함으로써 석면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석면에 의한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관청, 공공기관 모두 석면의 유해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노후 건물의 철거 또는 재개발 시 석면 관련 정보를 지역 거주 주민들에게 투명하고 성실하게 공개하고 주민감시단 활동 등 주민 참여와 감시활동, 필요한 경우 주민건강영향조사 등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입법과 규제를 통해 국민들의 석면 노출을 최소화하고 향후 발생 가능한 석면 관련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보상대책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