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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유한양행 창업, 故 유일한 박사 영면 50주기
  • 정종호 기자
  • 등록 2021-03-11 22:28:34
  • 수정 2021-03-18 15: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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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 실천 … 손녀에겐 1만달러 학자금만 남겨, 딸 유재라 200억 유산 사회기부
50년 전인 1971년 3월 11일, 한국 기업사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표상으로 남을 유한양행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가 향년 75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유일한 박사는 일찍부터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최근 ‘재산 절반’ 사회 환원을 선언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의장 등 국내 IT기업 리더의 잇따른 재산 기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세기 전에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 정착에 본보기가 된 인물이 바로 유일한 박사다. 

그는 1904년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5세 당시 미국의 잘 나가는 대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에 사표를 던지고 ‘라초이 식품회사(La Choy Food Product Inc.)’를 설립했다. 6년 만에 직원 400명에 연간 매출이 200만달러(현재 가치로 250억원 상당)에 이르는 회사로 키웠다. 라초이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숙주나물 사업을 시작해, 미국 전역에 동양 식료품을 취급하는 회사로 유명해진다. 

하지만 이를 뒤로하고 1926년 31세가 되던 해에 귀국, 국민건강 향상과 교육을 통한 기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193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주식공개를 단행(1962년)했고 1969년에 이미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주었다. 

유한양행은 1969년 이후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사원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선출하고 있다. 현재 약 1900여명의 유한양행 임직원 중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처럼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유일한 박사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는 원칙 아래 기업이윤을 나라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투자했고 장학 및 교육사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유일한 박사는 자신이 사망한 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됐다. 장남 유일선 씨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과 함께 유일선 씨의 딸이자 자신의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 양의 학자금으로 1만달러만 남겼다. 

딸 유재라 씨에게는 학생들이 뛰놀 수 있도록 유한중·공업고등학교 일대의 땅 5000평 등을 상속하면서 “소유주식을 비롯한 모든 재산들은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쓰도록 한다”고 유언을 남겨 많은 이들을 숙연케 했다.

유일한 박사는 작고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CIA의 비밀문서가 공개돼 그가 생전에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행적이 알려져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됐다.

딸 유재라 씨는 1991년 세상을 떠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주식 등 200억원대의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대를 이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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