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500억~2750억달러 규모 M&A 성사 전망 … 1조4700억달러 유동성 자금 대기
올해 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됐을 때 신규 상장사들의 전망은 어두워 보였다. 코로나19 확산과 이로 이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전반적인 불확실성은 공개 주식시장을 뒤흔들었고, 르네상스캐피털(Renaissance Capital) 같은 투자기관은 올 봄 기업공개(IPO) 상태를 ‘거의 완전한 중단’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분야 전문가들은 생명공학 IPO가 암울한 한 해의 한 줄기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은 과연 어느 정도 성공할지였다.
올해 85개 기업 상장 예상, 240억달러 육박 … 최고의 해라던 2018년 72개, 84억달러 압도
나스닥에는 올 12월 초 기준 102개의 헬스케어기업이 상장돼 236억달러의 자본금을 모았다. 이 중 82건의 생명공학기업으로서 총 150억달러를 유치해 지난 2년간의 실적을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작년의 경우 55개의 생명공학회사들이 56억달러의 자본을 확충했기에 4배가 넘는 폭발세를 보였다. 2018년에 72개 바이오텍이 84억달러를 유치하면서 이 때가 생명공학 최고의 해로 기록될 줄 알았지만 올해 예상이 빗나갔다.
나스닥의 헬스케어산업 종목 등재 관리자인 조단 색스(Jordan Saxe)는 “내가 제일 낙관적이고 공격적인 예측을 한 사람이었는데도 예상의 50%나 어긋났고 예측을 두 번이나 수정해야 했다”며 “어쨌든 올해는 IPO 기업 수뿐만 아니라 IPO의 자본금 유치 실적, 각 주식의 결정 가격 등에서 기록적인 해였다”고 말했다.
색스는 2020년의 놀라운 성과를 생명공학 분야만의 몇 가지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돌렸다. 우선 생명공학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전망과 분기별 매출에 대한 영향을 비교해서 투자금을 배정한다’고 말했다. 소매업과 같은 다른 산업과 달리 생명공학 투자자들은 향후 몇 달이 아니라 아마도 1년 안에 마일스톤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장기전에 나서고 있다.
헬스케어산업은 장기적인 투자 속성상 느긋하게 시장을 봐야 한다. 그래야 첨단 기술 또는 소비자 기반 소매기업 투자에서 얻을 수 없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헬스케어 기업의 세 번째 낙관적인 요인은 혁신이다. 색스는 “진정으로 혁신에 투자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바이오제약 업계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모더나와 화이자-바이오엔텍이 개발한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들이다.
색스는 “사람들에게 mRNA 백신을 투여하는 것은 이전에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일이다. 이것은 진정한 혁신이다. 장기적인 가치 창출의 관점에서 볼 때, 다른 투자 기회와 비교하면 진정한 보답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오히려 생명공학 투자의 원동력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헬스케어에 중점 투자하는 사람과 이 분야에 투자 경험이 있는 벤처캐피탈은 오랫동안 생명공학 분야의 가치를 이해해왔지만, 이번 대유행으로 대중의 인식 속에도 헬스케어가 파고 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색스는 “이제 모든 사람이 PCR 테스트, 분자생물학, 백신 등이 얼마나 이 세계적인 유행병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많은 생명공학기업의 올해 보여진 파이프라인 페이스에 맞춰 움직이겠지만 전적으로 투자자의 입맛에 달려 있다.
색스는 “내년에 최악의 상황(perfect storm)을 가정하면 올해의 좋은 성적을 다시 넘어설지 장담할 수 없다”며 “올해 연말까지 IPO기업이 총 85개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2018년의 55개와 85개의 중간쯤 되는 숫자의 바이오기업이 상장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따라서 약 65~70개 기업이 상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비밀리에 기업 상장을 신청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몇몇 생명공학 회사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암젠·바이오젠 ·BMS 기업 사냥에 나설 듯 … 바이오마린, 블루버드바이오, 데시페라, 에스페리온 유망 매물
내년에는 바이오제약 및 생명과학(진단 의료기기 포함) 기업 간에 약 2500억~2750억달러 규모의 인수합병 거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컨설팅 회사인 PwC는 “새해에는 500억달러 이상 규모의 여러 메가 합병이 일어나고, 250억~500억달러의 중간 규모 거래도 다수 이뤄질 것이며, 50억~150억달러 규모의 인수도 올해와 비슷하게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대규모 제약사들의 재무 상태가 탄탄하고 대출 받을 능력도 상당한 등 제약 및 생명과학(PLS) 부문의 유동성이 여전히 강해 인수합병(M&A)에 쓸 수 있는 대기 자금이 1조4700억달러이나 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바이오제약 전문지들은 지난 10일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이 미국서 승인된 직후인 12일 아스트라제네카가 알렉시온을 390억달러에 인수한 게 대형 M&A 본격 재개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그 인수 이전까지 올들어 제약 및 생명공학 M&A 거래는 242건으로 전년도 대비 2.3% 감소했고 가치적으로는 61% 급감한 1410억달러에 그쳤다.
내년에 기업 사냥에 나설 유력 제약사로는 암젠, 바이오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이 꼽힌다. 가능한 유망 타깃으로는 유전자 치료제와 관련된 바이오마린, 블루버드바이오, 글로벌블러드테라퓨틱스 등과 면역항암제 스타트업 아이오반스바이오테라퓨틱스가 지목됐다. 이밖에 리아타파마슈티컬스, 데시페라파마, 에스페리온, 아마린 등이 유망한 피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분야별로는 그동안 양적으로 투자가 집중된 항암제 부문에서 경쟁이 가열되면서 내실 재평가를 통한 제휴나 매각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런 현상은 유전자치료제 및 세포치료제 부문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에서 생명공학기업 인수는 혁신성이 인정되면 이런 저런 조세감면 혜택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에 비대면 IPO 활동 … 대면접촉보다 효율성 높아, 기업들 여전히 직접 만나기 선호
기업공개에 성공한 생명공학들이 기록적인 한 해를 보냈다고 해서 ‘성공이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4월말에 상장한 ORIC파마슈티컬(ORIC Pharmaceuticals)은 2019년 말에는 자금 사정이 아주 좋아 적잖은 현금을 확보했다. 이 회사는 올 2월 말에 S-1을 비밀리에 신청했고, 빠르면 3월 중순에 상장 허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이 회사는 작년의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증자를 하고 파이프라인을 확장하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이 계획에 큰 지장을 줬다. 아납티스바이오(Anaptys Bio) 상장 경험이 있는 도미닉 피시텔리(Dominic Piscitelli) ORIC파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장 계획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기 위해 매일 상황을 관찰해야 했다”며 올 초봄의 긴박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암의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약물을 개발하고 있는 이 회사는 유행병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피시텔리는 “우리는 상장 전 TTW(test-the-waters, 사전 테스트) 미팅을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우리는 이 전염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유행병 이후 2020년이 어떻게 될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4월에 상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ORIC는 1억2000만달러의 기업공개 가격을 매겨 증권신고서에서 제시한 8600만달러 목표를 초과했다.
이와 비슷하게 청각장애를 위한 유전자치료제를 연구하는 생명공학인 아쿠오스(Akouous)도 기업공개를 장시간 늦출 뻔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B시리즈를 발표했다. 이 회사 마니 시몬스(Manny Simons) CEO는 “미국에서 코로나19의 실질적 영향을 이해하기 전에 기업공개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파장이 분명해지자 회사 측은 과도한 준비와 기업공개 지연보다 신속한 상장이 낫다는 판단 아래 상장을 추진했다. 아쿠오스는 결국 6월 초 1억달라 유치 공모를 신청했고 그 달 말 2억1250만달러라는 주식가를 평가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 때문에, ORIC과 아쿠오스 둘 다 IPO를 가상으로 했다. ORIC는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동원한 2주간의 로드쇼를 시작하고 “가능한 한 많은 투자자 미팅 계획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대신 로드쇼를 4일간의 줌(Zoom) 회의로 압축했다.
화상회의를 통해 투자자들과의 친분을 쌓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피시텔리는 투자자들과 자신, ORIC CEO인 제이콥 차코(Jaboc Chacko)와의 친근감 형성이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시텔리는 “신규 투자자들은 경영팀을 보고, 교류하고, 보디랭귀지를 원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아쿠오스는 화상회의가 아닌 전화기를 사용해 회의하는 구식회사였기 때문에 이런 비디오 IPO 미팅이 더욱 신경쓰였다. 다만 시리즈 A와 B를 지행하면서 많은 투자자와 접촉한 친숙함이 밑거름이 돼 무난히 IPO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아쿠오스의 시몬스 CEO는 “많은 주요 투자가들이 기업공개 과정에서 처음으로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시텔리와 시몬스는 가상 회의가 IPO 과정에서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직접 만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피시텔리는 “나는 우리가 그냥 원래의 접근법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재적인 비효율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현재의 접근 방식에서는 신규 투자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시텔리는 모든 미팅을 직접 수행하는 대신 예를 들자면 3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고 줌(Zoom)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