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해 2025년까지 지방의료원 20개를 신축 또는 증축해 병상 5000개를 확충하는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대전‧서부산‧진주 의료원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방침도 공표됐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의료원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 발표 … 2025년까지 20개 지방의료원·병상 5000개 확충
보건복지부가 지난 13일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400병상 규모의 20개 안팎의 지방의료원을 확충하고, 지방의료원 35개 전체에 감염병 안전설비를 지원하고, 전공의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필수의료 분야 간호사를 충원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최근 코로나19의 3차 확산으로 공공의료자원 확충에 대한 요구가 커진데 따른 조치다. 17일 오전 기준 수도권의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치료 병상은 바닥을 드러내 152개 중 3개만 남은 상태다. 경기도의 0개, 서울 1개, 인천 2개다.
지방은 아직 확산세가 크지 않아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수도권에 비해 의료시설이 낙후돼 확진자가 조금만 증가해도 의료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정부 방안은 향후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병상 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지적돼온 지방의료자원을 확충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구체적 방안은 △강화된 공공의료체계 확립 △필수의료인력 확충 및 지원 △지역완결적 의료여건 조성 등 3대 분야로 구성된다.
이 중 가장 핵심은 지방의료원의 신설과 병상 확보다. 정부는 우선 400병상 규모의 지방의료원을 20곳으로 늘려 총 5000병상을 확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신축이 결정된 의료원 6개소에 3개소를 더 추가해 최소 9곳을 신축하고, 규모가 작은 11개소는 증축해 병상을 늘린다.
현재 지방의료원은 적십자병원을 포함한 전국 41곳에 1만450병상을 갖추고 있다. 이중 11곳을 2022년까지 증축해 1700병상을 늘리고, 2025년까지 9개 지방의료원을 신축해 3500병상을 더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신축 예정 지방의료원 중 필요성이 인정되고, 구체적 사업계획이 수립된 경우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그 외 지역은 내년에 지역 균형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제도를 개선한다. 예타 조사는 대규모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진행하기 전 사업 타당성 등을 검토해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지방의료원 신·증축에 대한 국고 지원도 확대한다. 3년간 한시적으로 기존 50%에서 60%로 높이고, 의료원 신축 시 국고보조 상한액 165억원의 기준도 상향할 계획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26년 하반기까지 기존 446병상 규모에서 800병상 규모로 늘려 신축 이전하고 의료인력도 1140명서 1660명으로 확충할 방침이다.
대전권‧서부산권‧서부경남권 지방의료원 예타 면제에 사업 탄력
현재 신축사업이 추진 중인 지방의료원은 대전권‧서부산권‧서부경남권 의료원 3곳이다. 이들 의료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달 중으로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예타 면제가 결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사업 추진이 사실상 확정되는 것을 의미하며, 해당 지자체는 정부의 결정을 반기며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재부 예타 종합평가가 예정됐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평가가 무기한 연기됐던 대전의료원은 예타 면제가 확정되는 대로 구체적인 계획안을 발표하고 행정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의료원은 동구 용운동에 부지 3만9163㎡, 건물연면적 3만3148㎡, 319병상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사업비는 1315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대통령 공약사업이자 대전시의 숙원사업으로 2년 넘게 예타 조사가 진행됐지만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이 지연돼왔다.
허정태 대전시장은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5년간 150만 시민들과 각종 시민단체, 지역 정치권, 5개구청 등이 함께 역량을 결집해 노력해 온 결과”라며 “앞으로 국무회의에서 예타 면제사업으로 조속히 확정될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설립 대상 부지를 확정하고 2017년 타당성 용역을 완료했으나 역시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아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서부산의료원 역시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부산시는 예타 면제 확정 시 12월 중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 철회 및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신청 등 서부산의료원 건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서부산의료원 예타 면제는 부산시민과 지역 정치권 등이 합심해 이뤄낸 값진 성과”라며 “시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공공보건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시급한 시설인 만큼 병원 개원까지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부산의료원은 사하구 신평동에 부지 1만5750㎡, 연면적 4만3163㎡, 300병상 규모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주요시설로는 응급의료기관, 감염병예방센터, 심뇌혈관질환센터, 공공난임센터 등이 들어서며, 사업비 2187억원이 투입된다.
제2의 진주의료원으로 불리는 서부경남권 공공병원은 예정보다 1년 당겨진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경남도청은 내년 2월까지 병원 설립 후보지를 결정하고, 9월까지 설립 타당성·운영 계획 등이 담긴 용역을 진행한 뒤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설립 후보지는 진주 옛 예하초등학교와, 남해군 노량주차장 일원, 하동 진교리 산 등 3곳이다.
이 공공병원은 김경수 도지사의 공약사항으로,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공백이 생긴 진주, 사천, 남해, 하동, 산청 등 5개 시군의 공공의료를 책임질 예정이다. 홍준표 전 도지사는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2013년 재임 당시 조례를 통과시켜 폐업시켰고 현재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활용되고 있다.
강수동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민관협력기구 위원장은 “도에서 추진 중인 연구 용역을 빨리 마무리하고 내년 하반기에 사업 계획을 복지부에 제출해 건립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료원 없는 광주시도 설립 의사 타진 … 대구 시민단체도 증설 촉구
이밖에 다른 지자체에서도 지방의료원 설립을 서둘러 준비하고 있다. 예타 조사 통과를 위한 용역 등 준비에만 5∼6년이 걸리기도 했던 만큼, 면제된다면 설립 기간이 대폭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대 신축비의 60%까지 국비가 지원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광주광역시는 14일 연말 안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하고 내년 용역 기간을 거쳐 사업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광주는 울산, 대전과 함께 지방의료원이 없는 몇 안 되는 광역단체로 ‘신축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예타가 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비쳤다.
광주시는 지난 4월 광산구·서구 구역에 1000억원을 들여 음압 병상을 포함한 약 250병상 규모의 시립 광주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으나, 용역조사를 착수하지는 못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165억원인 국비 지원 상한이 폐지되고, 장비 지원 국고 보조금을 상향하겠다고 보건복지부가 밝히는 등 여건이 개선됐다”며 “공공의료원 설립을 서두르면 조선대병원에 설립 중인 호남권역 감염병 전문병원과 함께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료원이 있지만 규모가 적은 대구에서는 시민단체가 나서 증설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대구참여연대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대구의료원 인력과 기능을 확충하고, 제2 대구의료원 설립 준비를 위한 기초예산을 편성해 정부의 지원 시책에 포함될 수 있도록 선제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구시는 코로나 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겪었음에도 현재 대구의료원을 대폭 보강하기 위한 예산을 수립하지 않았다”며 “타 시도들이 공공병원 신설을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지만, 시는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조차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방의료원의 병상 확보만으로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지방의료체가 확보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병상 자체보다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과 시설의 불균형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이날 국공립대병원의 지역책임병원 지정, 수가차등조정, 공중보건장학제도 확대 등으로 지역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의료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각 지자체가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지방의료원 설립에 나서려는 상황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지방 의료계 관계자는 “지방의료원이 수익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한 사전 조사없이 설립이 난발될 경우 국고 낭비 및 지역병원 경역 악화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