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변이 인한 유효성 저하 방지 ‘재조합’ 백신 … 유정란 백신 대비 항원 함량 3배↑, 감염률 30% ↓
사노피의 4가 재조합 인플루엔자 백신 ‘수펨텍’(Supemtek)이 18세 이상의 성인들에게서 인플루엔자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으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허가를 지난 18일(현지시각) 획득했다.
유럽연합(EU)에서 재조합 인플루엔자 백신이 허가를 취득한 것은 수펨텍이 최초로 그 기술적 장점이 주목을 끈다.
기존의 달걀 또는 세포 배양 기반 백신은 배양 과정에서 변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백신 생산을 위해 준비된 바이러스주와 인간 집단에서 유행되는 바이러스주가 달라져 백신의 유효성을 떨어뜨릴 여지가 있다.
반면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백신은 오로지 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유전적 구성을 가진 바이러스의 일부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스스로 복제능력을 갖춰 변이를 일으키는 달걀 및 세포 배양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독감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두 번씩 그 해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선정해 백신 생산에 기준을 정한다. 북반구용 백신은 해마다 2월경, 남반부용 백신은 7~8월에 바이러스주가 결정되며 4가 백신의 경우 A형 2종, B형 2종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유전자재조합 백신도 매년 이렇게 선정된 바이러스주를 바탕으로 만든다. 세포배양 방식 백신과 같은 종류다. 반면 유정란 배양 방식은 세포 배양 및 유전자재조합 방식과 바이러스주가 달라질 수 있다. 재조합 방식이라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아니냐고 혼동할 수 있는데 WHO가 정한 바이러스주의 유전자 서열 그대로를 쓴다.
수펨텍은 바큘로바이러스-곤충 세포 발현 시스템(Baculovirus-insect cell expression system)을 바탕으로 생산된다. 이 기술은 만들려는 바이러스 항원단백질을 담은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유래한 공여 플라스미드(Donor plasmid)에 담은 다음 무해한 바큘로바이러스(곤충 중 주로 갑각류에 존재)의 DNA와 교접하도록 한다. 이렇게 재조합된 것을 박시미드(Bacimid)라 하며 이를 숙주인 곤충세포에 집어넣으면 바큘로바이러스가 번식(감염)하면서 원하는 항원 단백질을 양산하게 된다.
요컨대 이 기술을 활용하면 WHO가 바이러스 변이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 권고하고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주들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항원 단백질(백신 원료)을 만들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생산되는 수펨택은 3배나 많은 양의 항원(정확히는 혈구응집소(hemagglutinin)로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세포(호흡기세포)를 침투할 때 쓰는 접착물질)을 포함해 차별화된다. 더욱이 이 같은 예방효과는 50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사노피 측의 설명이다. 다만 3배의 항원 용량은 초기 임상에서 투여됐던 것으로 양산 제품에선 다소 감량될 가능성도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임상연구 논문(Dunkle LM, Izikson R, Patriarca P, et al. 2017)에서 50세 이상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수펨택의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50세 이후엔 노화와 기저질환으로 독감 및 합병증 발병이 가파르게 늘어난다.
사노피는 예컨대 수펨텍을 50세 이상 성인 환자에게 투여할 경우 유정란 배양 독감백신의 4가백신을 표준용량으로 투여 대비 인플루엔자 감염률을 30%가량 추가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수펨텍은 1만명이 넘는 피험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2건의 3상 시험을 근거로 이번에 승인됐다. 피험자 무작위 배정, 다기관, 위약 대조시험에서 안전성, 면역원성, 유효성을 입증한 자료를 근거로 허가 관문을 통과했다.
특히 수펨텍의 유정란 배양 백신 대비 상대적 효능 미국내 40개 외래환자 의료기관에서 9000명 이상의 성인 환자들이 참여한 1건의 3상 임상에서 입증됐다.
사노피파스퇴르의 토마 트리옹프(Thomas Triomphe) 대표는 “인플루엔자 예방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공보건을 지키는 최우선 현안 중 하나가 됐다”며 “수펨텍은 EU 당국이 원하는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중증 합병증을 방지하고 의료 관련 사회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매년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적게는 총 29만명, 많게는 65만명에 달하고 있다. 인플루엔자로 인한 입원 건수만 해도 1000만건이 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후 한 주 동안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성이 최대 10배, 뇌졸중 발생 위험성이 최대 8배 정도까지 급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이 호흡기뿐만 아니라 전신 합병증까지 야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사노피의 코로나19 백신은 연내에 3상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 안에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펨텍’은 유럽 각국에서 2022~2023년 인플루엔자 시즌에 본격 공급될 전망이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는 이르면 2021~2022년 시즌부터 신속한 공급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수펨텍은 2017년 7월에 사노피가 미국 코네티컷주 중남부의 메리던(Meriden) 소재 단백질공학기업 프로테인사이언시스코퍼레이션(Protein Sciences Coporation)을 7억5000만달러에 사들이면서 유럽 시장을 겨냥해 새로 만든 브랜드다.
4가 수펨텍의 전신인 3가 ‘플루블록’(Flublok)은 2013년 1월 16일 18~49세 성인의 계절성 인플루엔자 예방, 16주 보관 가능한 백신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2014년 10월에 18세 이상 모든 성인, 9개월 보관 가능으로 확장됐다. 2016년 10월 11일 4가 플루블록이 미국에서 처음 승인을 받았다.
유럽에서 무려 미국보다 4년 뒤에 4가 백신이 수펨텍이 허가가 난 것은 생산 인프라와 임상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사노피 측은 설명했다.
수펨텍은 계절과 상관없이 어느 바이러스주에 쓸 수 있는 범용 독감백신(multi-season, multi-strain protection Vaccine)과는 다르다. 이스라엘 비욘드백스파마슈티컬스(BiondVax Pharmaceuticals)의 범용 독감 후보물질인 M-001의 경우 대부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공통적으로 갖는 A형 및 B형의 9개의 항원결정기(epitope)를 포함하는 재조합 단백질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3상 임상에 실패했다. 사포니도 수펨텍을 개발한 재조합 기술을 바탕으로 범용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