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주 유럽의약품청(EMA)의 조사 결과를 고려해 식품에서의 이산화티타늄(TiO₂) 금지를 의약품으로 확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많은 의약품에서 미백제, 차광제, 부형제로서 사용되는 이산화티타늄을 금지할 경우 이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금지 조치가 시행될 경우 영향을 받는 의약품의 수가 많기 때문에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의약품에서 이산화티타늄에 대한 대안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의약품 가용성에 대한 잠재적 영향을 고려한 EMA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했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백색색소, 차광제, 부형제로 쓰이는 이산화티타늄 분말, 출처 KBS 캡처
당초 EC는 2025년 2월에 금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2025년 8월 6일에 최종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산화티타늄은 수십 년 동안 식품의 미백제, 의약품의 백색색소·부형제·차광제, 화장품의 자외선차단제로 사용되어 왔다”며 “높은 불투명도와 밝기로 인해 이산화티타늄은 매우 많은 의약품(9만1000개의 인간 의약품 및 1600개의 동물의약품)에서 안료 및 불투명제(정제 제조 시 균일한 색상 유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산화티타늄은 부형제로서 유통기한 동안 약물의 색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활성의약품 성분(API)을 보존하는 코팅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번 결정에서 이산화티타늄을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EMA의 분석을 요약했으며, 이 결정에는 EMA의 과학 전문가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제약 업계의 피드백이 포함되어 있다.
의약품에서 이산화티타늄의 사용 금지 및 대안 모색에 나선 이유는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2021년 5월 이를 식품첨가물로 사용하기에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의견에 따른 것이다. 이산화티타늄(특히 나노입자의 경우)은 체내에 축적돼 유전독성 및 발암성을 높일 수 있어 신경장애, 유전질환, 암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상승한다. 또 이산화티타늄에 의해 위장관이 손상되면 유해세균의 소화기관 침투가 쉬워져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고 영양분 흡수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EC는 2022년 1월 식품첨가물로서의 이산화티타늄 사용 승인을 취소하고 금지 조치를 의약품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의약품의 색상과 외관의 균일성은 이산화티타늄의 대체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성분은 전통적으로 정제 코팅 전반에 걸쳐 일관된 색상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불투명도를 제공한다. 필름 코팅을 할 경우 정제 코어의 자연스러운 색상이 적용 범위와 색상 균일성에 영향을 미쳐 특정 정제 제형의 효과적인 코팅을 방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대체 코팅은 균일한 적용 범위를 달성하기 위해 더 강렬한 색상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또 이산화티타늄을 대체하기 위해 정제를 재구성하면 제품의 시각적 외관 변화로 인해 환자 순응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불투명도는 이산화티타늄을 대체할 경우 달성하지 못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이산화티타늄은 소량으로도 효과적인 불투명도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반면, 대체 코팅은 일반적으로 유사한 수준의 불투명도를 달성하기 위해 훨씬 더 높은 중량 비율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구사항으로 인해 공정 처리시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현재 대체 캡슐 껍질 및 코팅의 실험실 내 성능은 이산화티타늄 기반 캡슐 껍질 및 코팅에 비해 분해 및 용해에 큰 차이가 없지만 장기 안정성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대체 재료에 필요한 두꺼운 코팅이 의약품의 안정성과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EMA는 “이산화티타늄을 의약품 사용에서 배제하면 간단한 일대일 대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승인된 의약품의 5% 미만에 대해 실현될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개발 중인 의약품에도 동일한 기술적 과제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국내서는 전체 의약품은 물론 일부 식품에도 이산화티타늄 사용이 허용돼 있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산화티타늄을 식품첨가물로 사용하되, 모든 식품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 기준을 설정했다.
육류, 어패류, 채소, 과일 등 천연식품, 식빵, 잼류, 유가공품 등 일부 품목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다만 빛에 불안정한 성분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건강기능식품에서의 차광제 첨가 등 기술적으로 필요한 경우 일부 품목에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식약처는 현재까지 이산화티타늄 사용을 전면 금지할 계획은 없지만, 사용 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해성 논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