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醫·政 간담회 열고 올해안 전면 급여화 추진 … 의료계 “전면 반대, 일부 비급여 존치해야”
정부의 의료 보장성 강화 로드맵 중 가장 큰 고비로 꼽히는 척추 자기공명영상(MRI) 급여화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유행으로 미뤄졌으나 최근 보건당국은 의사단체 등 유관기관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대 목소리를 높이려는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를 협상 창구로 단일화하고 단단한 대응 체계를 갖추는 모습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입안은 물론 시행까지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일정 부분 비급여 존치를 주장해 향후 합의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 10월내 협의체 구성 및 연내 사업 시행 추진 … 의료계, 비급여 시장 실태 확인이 우선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말 척추 MRI 급여화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의료계와 본격 협의체를 구성하기에 앞서 척추 MRI 급여화 진행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의료계는 비급여 진료 중 가장 규모가 큰 척추 MRI를 급여화로 전환하는 게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급여화가 되면 그만큼 의료기관이 갖는 자율성이 줄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르면 척추 MRI 급여화는 10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통해 11월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등의 이유로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번 간담회를 시작으로 일정을 진행하며 가급적 이달 내,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다만 척추와 함께 당초 2020년 항목에 포함될 계획이었던 근골격계 MRI는 2021년 추진 대상으로 유보됐다.
지난달 간담회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영상의학회, 대한영상의학과의사회, 대한정형외과학회, 대한정형외과의사회, 대한재활의학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련학회와 기관 등이 참여했다.
척추 MRI 급여화 진행 방향에 대한 논의 외에도 의료행위 분석 및 수가 개선방안 마련 연구결과 등도 발표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진동규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팀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연구팀은 42개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78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척추 MRI 비급여 현황 조사를 진행하고, 재정을 추계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78개 병원의 척추 MRI 비급여 비용은 1801억원이며, 프롤로치료 (prolotherapy) 등 관련 비급여 시술은 781억원이었다. 이를 모두 합하면 현재 척추 관련 비급여 시장 규모는 대략 2582억원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에 맞춘 규모로 재정을 준비하고 올해 안에 척추 MRI 급여화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추계가 상대적으로 축소된 결과라며 비급여 시장의 현실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의협은 심평원 조사에서 작은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이 빠져 있음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비급여 시장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의료 관계자는 “급여화 전에 비급여 규모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수적이므로 지금보다 정확한 추가 조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부 “모든 척추질환에 급여 적용하되 3회 한정” vs 의료계 “처음부터 적용 기준 제한 마땅”
급여 적용 범위에 대해서도 정부와 의료계의 의견이 갈렸다. 심평원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척추질환을 MRI 급여대상에 포함시키되 공통적으로 3회까지만 인정하도록 하는 횟수제한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횟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진료항목별로 급여기준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평원의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척추질환이 있거나, 이를 의심할만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있는 경우’, ‘신경학적검사 등 타 검사 상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 ‘척추 관련성이 의심되거나 감별진단이 필요한 경우’, ‘1~2개월 이상의 표준치료에도 통증이 지속돼 급성기에서 아급성, 만성으로 이행할 경우’ 등을 모두 MRI 급여화 기준에 포함시켰다.
대신 모든 질환에 대해 진단 시(diagnosis), 치료 후(postoperative), 증상 시(event)로 모든 질환에서 1년에 공통적으로 3회만 인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급여 대상도 △추간판탈출증, 척추협착증 등 퇴행성 질환 △척추염 등 감염성 질환 △골절, 출혈 등 외상성 질환 △신경근염 등 염증성 질환 △척추종양 등 종양성 질환 △혈관질환 △척수질환 △척추변형 △선천성 질환 △아밀로이드병증 같은 희귀질환 등 척추질환 대부분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의료계는 척추 MRI를 건강보험 급여화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필수 영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전면 급여화로 전환했다가 뇌‧뇌혈관 MRI처럼 급여 범위를 다시 축소하는 일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복지부는 뇌‧뇌혈관 MRI 건강보험 적용으로 연간 1642억원의 재정이 투입을 예상했으나, 모니터링 결과 촬영건수 급증으로 2730억~2800억원이 투입되자 급여 대상을 줄였다.
의료계는 이밖에도 MRI 오남용으로 인한 건보재정 악화와 실손보험 분쟁 여지 등이 있다며 “급여 적용에 제한을 두고 MRI 촬영은 환자의 요구가 아닌 의사의 의학적 판단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전면 급여화로 수익성 악화 우려 … 의협 중심 TFT 구성해 대응
이 같은 의료계 주장 기저에는 전면 급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의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수익 면에서 비급여 진료가 유리한 만큼 가급적 비급여 영역을 많이 남겨두는 게 병원으로서는 이익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척추 MRI의 의료기관 비급여 규모가 상당한데 이것이 모두 급여화가 될 경우 자칫 중소병원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의료계는 의협을 중심으로 지난 7월경부터 일찌감치 유관 학회 및 의사회와 ‘척추 근골격계 보장성 강화 TFT’를 꾸리고 세 차례 회의를 진행하며 의료계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FT는 정부와의 9월 간담회 후 지난 23일 자체적으로 학회들과 간담회를 추진하고, 척추 MRI 급여화 논의에 같은 목소리를 내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인 합의사항으로는 △척추 MRI 급여화시 수가는 중소병원 관행가격 유지를 원칙으로 한다 △척추 MRI 급여 범위는 필수 의료에 준하는 범위에 한하며 그 외는 비급여로 존치한다 △척추 근골격계 비급여 치료재료, 진료행위를 급여화할 경우 의협과 충분한 사전협의 후 진행한다 △척추 MRI 급여화 협상 창구를 의협으로 단일화한다 △코로나19 진정 후 구체적인 회의를 진행한다 등이다.
TFT 관계자는 “전체 척추·근골격계·통증질환 시장 중 약 40%가 비급여 상태로 올해 척추 MRI의 급여화가 예정된 만큼 (의료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조속히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차가 갈려 향후 이에 대한 합의까지 긴 진통이 예상된다. 다만 촉박한 일정과 건보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연내에 척추 MRI 급여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척추 MRI의 경우 뇌·뇌혈관 MRI보다 더 많은 재정투입을 고려해야 한다”며 “코로나19로 건강보험 재정도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보장성 강화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간담회에 참여했던 의료계 관계자도 “10월 중 복지부와 심평원이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안대로 올해 안에 급여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