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 사망한 2009년과 유사 … 접종 시 스트레스 줄여야 … 정부 10월중 접종 마쳐야, 의협 1주일 연기 권고
인플루엔자(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하는 사고가 21일, 22일 추가로 이어지면서 22일 오후 3시 기준으로 사망자는 총20명으로 늘었다. 지난 19일 고령자에 대한 무료 독감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나흘만의 일이다.
보건당국은 백신사업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백신의 생산‧유통‧분배‧접종 전 과정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가운데 고령자들은 백신을 계속 맞아야 하는지 불안해하고 있다. 사망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보고 안전하게 백신접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22일 사망자 10명 추가, 총 20명 … 정 청장 “백신사업 미루지 않는다”
보건당국이 사망과 예방접종 간의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추측한다며 예방접종 사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힌 22일 오전 이후 7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22일 오후 3시 기준으로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자는 총 20명으로 늘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사망자 보고가 늘기는 했지만 ‘예방접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직접적 연관성은 낮다는 게 피해조사반의 의견”이라며 “백신접종 사업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저희와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당시 백신접종 후 사망한 사례는 총 13건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정 청장의 발언 이후 7명의 사망자가 추가되면서 백신접종과 사망 간의 관련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차츰 나오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잇단 사망사고에도 독감백신을 맞겠다는 이들이 많았으나 짧은 시간 안에 사망사고가 늘어나자 접종 희망자가 급감했다.
19일 고령자에 대한 무료 독감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나흘째이며, 고령자 접종률이 30.1%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 청장은 사망자의 사망 원인 조사에 대해 “백신을 맞은 대상자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고 의무기록 조사나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찾고 인과관계를 검토해야 한다”며 “부검 완료까지는 2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백신접종에 대한 불안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50대 1명 제외하면 모두 고령에 무료접종 공통점 … 10대 사망자 1명도 무료접종
22일 보고된 사망자들은 대전시 70대, 경남 창원 70대, 경북 성주 70대, 경남 청원 80대, 경남 통영70대, 전남 순천 80대, 전북 임실 80대, 인천 70대, 춘천 70대, 대구 80대 등 10명이다.
앞서 16일 인천지역에서 17세 청소년이 접종 후 사망했으며 전북 고창 70대, 대전 80대가 20일에 사망했다. 이어 21일 대구 70대, 제주 60대, 서울 50대, 전남 목포 90대, 경기 고양 80대, 경북 안동 70대 등이다. 나머지 1명은 유가족의 요청으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들 중 서울 지역의 50대 여성을 제외하면 모두 무료백신 접종 대상자다. 또 그와 인천지역17세 청소년을 빼면 모두 60대 이상의 고령자로 상당수가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과 같은 의료기관, 동일 시간대에 백신을 접종한 이들에서는 사망사건이 나타나지 않았다.
접종 후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서울지역 50대 여성 85시간을 제외하면 짧게는 3시간에서 60시간까지로 접종 당일에서 3일 이내 사망했다.
이들이 맞은 백신은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플루VIII테트라(A14720007, 사노피파스퇴르 원료)와 보령플루V테트라(A16820012 녹십자 원료), 녹십자의 지씨플루쿼드라밸런트(Q60220039), 한국백신의 코박스인플루4가(PT200801 일양약품 원료), LG화학의 플루플러스테트라(YFTP20005 녹십자 원료),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셀플루4가(Q022028) 등으로 5개 회사가 제조한 6개 제품이었다.
정은경 청장은 “사망자들이 접종한 백신은 5개 회사가 제조한 것이고 로트번호가 다 달라서 한 회사백신이나 동일 제조번호 백신이 일관되게 이상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며 “제품 품질이나 제품의 특성 독성 문제로 인한 사망은 아닌 것으로 전문가도 판단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백신을 생산하는 원료의 품질 이상이 있었을 수 있단 의혹을 제기했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감장에서 “바이러스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에게 자문한 결과 백신 내 톡신이나 균이 기준치 이상 존재하면 사망 등 쇼크가 유발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사망자가 접종한 백신 중에는 백신 원료(항원)을 유정란에서 배양하지 않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셀플루4가(Q022028)도 포함돼 주장에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정은경 청장도 “사망자는 유정란 외에 세포 배양 방식 백신에서도 보고되고 있다”며 “유정란 방식 문제로 보기 어렵고, 해당 제품들은 식약처 독성물질 검사도 통과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일반적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와 길랭바레증후군과 양상 달라 … 연 2.5명 사망과 비교해도 이례적
백신접종 후 부작용 및 사망사례는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식약처가 제출한 ‘독감백신 이상반응 보고 추이’를 보면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5년반 동안 총 1만3769건(사망 15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으며, 연간 평균 2700건의 이상사례가 나타났다. 백신접종 후 사망 사례는 지난 10년간 평균 2.5명가량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올해 접수된 이상반응 신고는 총 431건으로(20일 기준) 평년 같은 기간보다 훨씬 높다. 이중 국소반응은 111건, 알레르기반응 119건, 기타가 104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앞서 ‘유통 과정 중 상온노출’과 ‘백색입자 발견’ 사건 등으로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신고 건수도 덩달아 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흔한 백신 부작용은 국소반응으로 주사 부위에 열감과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고 경우에 따라 붉게 붓는 것이다. 접종자 15~20%에서 나타나는데 대부분 하루이틀 사이에 사라진다. 드물게 발열이나 두통 등 전신반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역시 하루이틀 사이 가라앉는 게 보통이다.
위험한 중증 이상반응으로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와 길랭바레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 GBS)을 들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면역과민반응으로 사이토카인폭풍 증상이 일어나 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 청장은 21일 정례 보고에서 “사망 사례 중 2건은 아나필락시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며, 나머지 신고 사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부검 결과와 의무기록 조사 등 추가 조사를 통해 인과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GBS는 식중독 등 감염 등에 의해 유도된 항체가 말초신경을 파괴해 마비를 일으키는 희귀신경계 질환으로 성인 10만명 당 1명꼴로 나타난다. 독감백신으로는 인구 100만명 당 1~2명꼴로 발생한다고 연구돼 있다. 접종 후 3~30일 이내 발병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일반인과 독감백신 접종자 간의 GBS 발병 확률은 도리어 접종자에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례적으로 GBS가 원인으로 추정된다해도 이번처럼 연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1억4000만명이 독감백신을 맞는다고 가정하면 매년 183명이 아나필락시스, 매년 140~180명이 GBS 반응을 보이며 이 중 각각 1명 안팎, 4~14명이 사망한다는 게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통계다. 결국 1년에 1~15명이 독감백신 접종으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독감백신을 접종하지 않을 경우 사망자가 1만2000~5만6000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다.
사망자 많았던 2009년과 비슷 … 고령자 장시간 대기하는 무료접종 시스템 문제 지적
일각에서는 백신 자체보다 독감 무료백신 접종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야외에서 줄을 서서 백신접종을 기다리는 과정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기저질환 악화 및 뇌졸중 등을 불러 일으켰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우주 교수는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코로나19와 백신유통 문제 등으로 백신 물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보도가 몇 번이나 나간 상황이라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며 “고령자가 이른 새벽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장기간 대기하다보면 혈관수축이나 혈전발생으로 뇌졸중‧심혈관계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 예로 역시 사망률이 높았던 2009년을 들었다. 당시에도 독감 유행으로 백신 접종 희망자가 크게 늘어 무료접종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로 인해 무료접종을 시작한 10월 5~22일, 총 18일 동안 8명이 예방접종 후 사망했다.
김 교수는 “무료접종 중 일부를 보건소 외에 민간의료기관에 위탁해 대기시간을 줄인 2015년부터 접종 후 사망사고가 확연히 감소했다”며 “올해는 백신물량 부족 걱정 때문에 고령자 접종 첫날 새벽부터 줄을 서는 등 과거 모습이 재연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무료 백신 접종이라도 민간의료기관에서 접종하는 임산부나 6개월~13세 미만 소아에서는 사망사고가 없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유통 과정에서 이상이 없었는지는 다시 한번 전수조사 등을 통해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사망자들이 맞은 백신은 한 명만 제외하고 국가조달물량으로 국가가 구입해 보건소 등에 배포했고 신성약품이 유통을 담당했다.
당국 “독감백신 접종 10월 안에 해야” … 접종 후 30분 기다려 이상 여부 확인할 것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백신 접종을 미루거나 거부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 청장은 “한해 독감으로 사망하는 이가 3000명”이라며 “어르신·고위험군에서 폐렴이나 다른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독감으로 기저질환이 악화해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접종하는 게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독감유행 시즌이 11월이고, 백신 접종 후 항체가 생기는 데 2주가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늦어도 10월 안에는 맞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22일 ‘독감예방접종 사망사고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1주일가량 백신접종 사업을 미루자”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트윈데믹) 가능성을 고려할 때 독감백신을 맞는 게 좋고, 가급적 예약 후 정해진 시간에 맞춰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백신을 맞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안전 접종을 위해 △전날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대기시간을 줄일 것 △물을 수시로 마셔줄 것 △옷을 따뜻하게 입어 체온을 유지할 것 △접종 후 30분가량 기다렸다가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떠날 것 등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