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자궁파혈‧양수색전증 등 부작용 신중해야” vs 의약계 “안전성·효과 입증 자료 충분, 도입 서둘러야”
정부가 지난해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는 등 낙태죄 관련 입법 개선 절차에 착수했다. 연내로 관련법을 개정하라는 헌재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낙태약’으로 알려진 경구용 유산유도제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 Mifepristone)의 국내 허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사법기관의 움직임에 임신중지 의약품 허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일각에선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오남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자칫 직역 간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구용 유산유도제 ‘미프진’ … 1988년 프랑스 개발‧2005년 WHO ‘필수의약품 지정’‧OECD 국가 중 80% 처방 가능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스테로이드성 항프로게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구용 약으로 임신 12주차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하는 전문의약품으로 미국 등에선 산부인과 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내로 확진받은 여성에게만 처방된다.
1988년 프랑스 루쎌 위클라프(Roussel Uclaf)가 개발해 프랑스에서 최초로 허가된 뒤 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 세계 67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처방하고 있다. 1997년 미프진 판매만을 위한 엑셀진(Exelgyn) 법인을 설립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판권을 넘겼다. 미국은 뉴욕주 소재 비영리기구인 인구협회(The Population Council)가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약은 2000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고, 2013년에는 북한에서도 출시됐다. 201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COSOC)는 여성이 임신 중단에 사용되는 약물을 포함해 필수의약품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OECD 국가 중 약 80%에서 처방 가능하다. 하지만 식약처 승인이 나지 않아 우리나라 의약품 목록에는 없다.
자궁내막 결절변성 등 자궁 착상 수정체에 영양공급 차단 … 자궁과 수정체 분리 유도, 성공률 95%
미프진은 프로게스테론 구조를 변형 합성한 화합물로 프로게스테론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궁내막 결절변성, 자궁경부 연화 및 확장, 간접적 영양막 감소 등 약리작용으로 자궁에 착상된 수정체에 영양 공급을 차단해 자궁과 수정체를 분리시킨다.
미국 FDA에 등록된 복용법에는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 성분 약과 병용 투여하게 돼 있다. 이 성분의 화이자 ‘사이토텍정’이 오리지널로 프로스타글란딘 유사체이다. 이 약은 본래 위십이지장궤양 치료제로 자궁내막 세포에 결합해 강한 자궁내막 수축을 일으키고 자궁경부 성숙으로 분리된 수정체를 자궁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미페프리스톤은 50일 이내 사용 시 약 95%의 낙태 성공률을 보인다. 그러나 미프진만 복용할 경우에는 낙태율이 60~85%에 그친다.
사용법을 확인해보면 미프진 200mg 1정을 경구투여한 날부터 24~48시간이 지난 뒤 미소프로스톨 4정을 투여한다. 미소프로스톨은 협측(頰側, Buccal) 투여 방식으로 복용하는데 양쪽 볼에 각 2정을 30분 동안 물고 있다가 물과 함께 삼키면 된다. 이는 미소프로스톨의 체내 흡수 속도가 빨라 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한 복용법이다.
이같은 과정을 마친 뒤 7~14일 사이에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대해 전문의 진찰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출혈 여부나 수정체 상태를 확인해 임신이 아직 진행 중이면 추가 약물요법이나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이 시기에 임신이 이어지면 자궁 외 임신으로 산모가 위험하거나 12% 이상의 높은 확률로 태아에 선천적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 구토, 현기증, 설사 등으로 약 8%에선 30일 이상 출혈이 발생하고, 1%에선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과다 출혈을 경험했다.
미프진이 금지된 국가에선 미소프로스톨만 이용하는 방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200mcg 용량 4알을 혀 밑에 놓고 녹이는 것을 3시간마다 총 3회 반복하는 방법인데 완전 낙태율은 75~90%로 미프진 병용요법에 비해 떨어진다.
비교적 성공률이 높고 세계적으로 쓰이는 안전한 방법임에도 전문의의 관리가 필요한 점 때문에 미프진 등 낙태 허용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미 핀란드에선 전체 낙태의 약 93%가 미프진 병용요법으로 이뤄진다.
국내에서는 불법임에도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불법 거래로 성행됐다. 그러다 2018년 8월 17일 보건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발표하며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처벌을 예고하자 (직선제)산과의사회가 “불법으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미프진이 낙태수술 대체용으로 급부상했다.
건약 “미프진 도입해 안전한 임신중지권 실현” … 의료계 “신중한 접근 필요해”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임신중절에 의약품(미프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 법이 수정이 됐지만 실제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가 안 된 상황”이라며 “제약사에서 판매를 위해 허가 신청을 해도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등 허가 절차가 길어져 도입까지는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으로 낙태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도 의약품 허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제도권 속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은 진단과 처방으로 예상 가능한 위험요소를 최소화해 사용할 수 있기에 의약품의 정식 허가·유통·사용은 건강권에 매우 중요하다”며 “정치적인 해결이 동반돼야 한다. 임신중절 약물은 존재하고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관련 자료들은 충분하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임신중절 의약품 사용이 가능하게 법을 개정하고 승인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건약이 낸 성명에 따르면 ‘미프진’을 통한 약물적 임신중절은 현재 유럽 주요 국가의 70% 이상이 선택하는 주된 임신중절법이며, FDA가 진행한 연구에서 사용 여성의 86%가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미프진은 여러 위험한 부작용이 뒤따라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며 임신중절수술의 대안으로 손쉽게 선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의료계는 반박하고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미프진은 미국에서도 산부인과 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반드시 임신 7주 내로 확진받은 여성에 한해 처방되는 전문의약품”이라며 “만약 임신 10주 이상 지난 여성이 미프진을 복용하면 수혈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과다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임신 7주 이내 여성이라도 해도 복용 시 구토, 설사, 두통, 현기증, 요통은 물론 심한 복통과 하혈을 경험할 수 있다”며 “더 심하면 불완전 유산, 양수 파편들이 혈관을 막아 생기는 양수색전증, 극히 드물지만 자궁 파열, 흔하게는 생리양의 과다증가 등 위험이 수반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완전 유산이 되면 임신 초기 인공중절수술을 하는 것보다 출혈, 염증, 자궁손상 등 부작용 위험이 커지며 심하면 자궁적출을 해야 할 정도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않았을 경우 모든 책임을 환자 본인이 지겠다는 서명을 해야만 처방전을 발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 주수는 마지막 생리 첫날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수정일이 이미 임신 2주차이며, 생리일이 지나 임신을 알게 되면 이미 임신 4~6주차인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 미프진을 복용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매우 짧다”고 언급했다.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회장도 “미프진을 합법화해서 유통이 활성화되면 (임신 위험이 없는 등)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의사의 처방과 임신 주수 확인 없이 약을 먹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만일 허가가 된다고 해도 병원 내에서 의사들의 지도와 감독 아래 약국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환자에게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태유도제 불법 판매. 2015년 12건에서 2019년 2365건으로 200배 폭증
낙태죄와 관련된 낙태유도제의 불법 온라인 판매가 최근 5년 새 200배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의약품 온라인 판매광고 적발 현황’에 따르면 적발 건수는 2015년 2만2443건에서 지난해 3만7343건으로 66.4% 늘었다.
5년간 누적 적발 건수인 15만5142건을 품목별로 보면 비아그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치료제가 6만3805건(41.4%)으로 가장 많았고 각성·흥분제 1만3694건(8.8%), 피부 관련 의약품 9703건(6.3%), 스테로이드 7161건(4.6%)이었다. 낙태유도제 6618건(4.3%)로 5위를 차지했다.
특히 낙태유도제는 2015년 12건에서 2019년 2365건으로 200배가량 증가했다.
낙태유도제는 75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남용 우려 등으로 수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외 직구 등 온라인 구매가 크게 늘면서 오히려 음성화됐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