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과거 얀센에 비만·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해 기술수출했다가 계약이 취소된 신약후보물질을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바꿔 다시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미국 머크(MSD)와 바이오 신약후보물질 ‘LAPS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의 개발, 제조, 상용화 권한 일체를 라이선스 아웃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 신물질의 일반명은 에피노페그듀타이드(efinopegdutide)이며 ‘HM12525A’라는 코드명으로도 불렸다.
이번 계약으로 MSD는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에피노페그듀타이드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게 됐다. 한미약품은 MSD로부터 확정된 계약금 1000만달러(약 119억원)와 단계별 임상개발 및 허가, 상업화 마일스톤(기술료)으로 최대 8억6000만달러(약 1조272억원)를 수령하며 제품 출시 이후에는 판매에 따른 일정 비율의 로열티도 받는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인슐린 분비 및 식욕 억제를 돕는 GLP-1과 에너지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작용 치료제다. 한미약품이 보유한 약효지속 기반 기술 랩스커버리(LAPSCOVERY)가 적용됐다.
이 회사는 이 신약후보물질을 2015년 임상 1상 단계에서 1조원 규모로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 수출했다. 하지만 임상에서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얀센은 지난해 7월 1억5000만달러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개발 권리를 다시 한미에 반환하면서 계약이 종료됐다. 임상 2상에서 체중감소 목표치는 도달했으나 혈당조절 능력이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한미약품은 당시 임상 과정에서 약물 개발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됐다며 방향을 새롭게 잡겠다고 해명한 바 있다.
MSD 임상 연구센터 당뇨·내분비내과 총괄 샘 엥겔(Sam Engel) 박사는 “에피노페그듀타이드의 2상 임상 데이터는 NASH 치료제로서 개발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임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며 “MSD는 개발을 계속해 대사질환 치료를 위한 의미 있는 의약품 개발이라는 사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세창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은 “비만·당뇨병 치료 신약으로 개발되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이 NASH를 포함한 만성 대사성질환 치료제로 확대 개발할 가능성을 인정받고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어 의미 있다”며 “신약개발 영역에서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실패가 새로운 혁신을 창출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수년 새 잇따른 신약후보물질 수출 계약이 파기되면서 주춤했던 한미는 이번 기술수출 ‘재수’에 성공함으로써 반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