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1일 시행된 의약분업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 유행 속에 그 의의와 개선점을 평가할 겨를이 없는 가운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및 한국보건행정학회 주최, 국민건강보험공단 후원으로 1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의약분업 20주년 성과와 과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현옥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연구위원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국민의 행태 및 인식변화’ 설문 결과 의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조제받는 것에 대한 불편 정도를 묻는 질문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852명(58.3%)으로 가장 많았고, ‘매우불편’ 또는 ‘대체로 불편’ 응답자는 220명(15.1%), ‘보통이다’는 389명(26.6%)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조사는 2주간(2020년 3~4월) 전국 1461명 국민을 대상(응답률 25.6%)으로 의약분업과 병원·약국 관련 내용으로 진행됐다.
소비자들은 약국을 선택할 때 ‘의료기관 및 거주지와의 거리(74.1%)’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약사의 평판(16.0%)’이 그 뒤를 이었다.
의료기관 및 약국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와 신뢰도는 모두 상승했다. 의사의 진료행위 만족도는 2008년 3.8점에서 2020년 3.93점으로 올랐다. 약사의 복약지도 및 정보제공 만족도는 3.5점에서 3.91점으로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컸다.
약사 대체조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민적 인식이 부정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조제에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35.7%,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는 41.3%, 모른다는 응답자는 22.9%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40대가 47.3%로 동의율이 가장 높았고, 50대가 28.2%로 가장 낮았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약사 각자의 전문성에 대한 평가는 다소 갈렸다. 의사들은 분업 이후 처방전 공개로 처방 내역에 신중해졌으나 의사 정체성이나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약사들은 분업 이전의 불명확한 역할에서 벗어나 의약품 전문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관련 지식을 학습할 동기 부여를 받았다고 느꼈다. 약사들은 합리적 의약품 사용을 위해서 지역처방 의약품 목록 공유, 대체조제 활성화, 성분명 처방 등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현옥 부연구위원은 “의약분업으로 처방 투명화 및 조제약 정보 공개가 이뤄졌지만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만성질환 및 고령 환자의 투약관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와 약사 역할 간 조화·협력이 중요하다”며 “환자 중심 보건의료서비스 적정화를 위한 상호협력 모델이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약분업의 성과 및 개선과제’를 주제로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를 통한 약제비 절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약분업의 의의와 성과로 △의사와 약사 간 역할 정립 및 서비스 질 향상 △의약품 오남용 예방 △환자의 알 권리 향상 △국민건강 기여 △의약품 사용량과 약제비 절감 △보건의료 정책과정의 혁신 경험 등을 꼽았다.
그러나 고가약 처방 증가, 의사 처방 행태 변화 미흡, 행위별수가제 때문에 의약품 사용량과 약제비 절감이 여전히 미흡하고, 의사 약사 간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논란이 해소돼야 하며, 의약분업 후속조치 및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건강보험 가입자 1인당 약제비는 연평균 10.5% 증가했지만 고가약 처방 증가로 인한 증가가 전체의 40%를 차지했다”며 “의사가 다량의 약을 처방하는 행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거친 제네릭을 통해 대체조제를 활성화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약품을 조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의사와 약사 간 상호 역할 인정과 협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단체 대표로 나온 박종협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는 “항생제 처방률은 의약분업 이전 60%까지 근접했다가 최근 세계보건기구 권장치에 근접한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며 “그러나 의약품 오남용 결과인 내성률은 여전히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항생제 처방 패턴만 바뀐다고 내성률이 줄지 않은 것을 볼 때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의약분업은 맞지 않은 처방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의약분업을 통한 의료비 절감은 처음부터 신기루와 같은 언급이었다”며 “분업 전에는 의료기관에서 진료와 투약을 원스톱으로 받고 진료비를 지불했으나 분업 후 의료기관에는 진료비, 약국에는 조제료와 약품비를 지불하게 됨에 따라 당연히 국민 부담도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약사단체 대표로 참석한 좌석훈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의료기관에서 처방약 목록 제출 미이행으로 약국에서는 처방약에 대한 사전정보를 얻지 못해 단골환자에게 약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미제출에 대비한 처벌조항 등 세심한 법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시민단체 대표로 나선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상비약 약국 외 판매 이행 △의약품 분류 및 재분류 체계 개선 △기등재 목록정비사업 추진 등 약가제도 개선 △약가 거품과 리베이트 제거 △성분명 처방과 저가약 대체조제 허용 등을 남은 과제로 꼽았다.
의약분업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차흥봉 한림대 명예교수는 “의약분업이 현재까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보완이 필요한 미완의 제도”라고 평가했다. 차 교수는 “20년전 7월 1일에 시행한 의약분업은 1년 동안 준비했는데도 그해 11월에서야 의·약·정 협의로 제대로 시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대단히 어려웠던 경험”이라며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당위적 명제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혀 자꾸 왜곡되고 변화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의약분업 제도는 ‘문화 혁명’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는 최소한 30년이 지나야 할 것”이라면서 “그만큼 제도의 효과 결과를 판단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중간평가를 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