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보톨리눔톡신 제제 ‘나보타주’(미국명 주보) 수출 10년 금지 권고를 받은 것과 관련해 미국 현지 판매사인 에볼루스(Evolus) 달래기에 나섰다. 대웅 측은 ITC 예비 판결 결과가 발표된 7일 즉시 이사회를 소집해 에볼루스가 발행하는 48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일(현지시각) 에볼루스 종가 대비 144%의 프리미엄을 붙인 금액이다.
대웅제약은 이번 CB 인수가 “사업파트너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에볼루스 측으로부터 대규모 손해배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현금 올인으로 보인다. 480억원은 지난 1분기 별도기준 대웅제약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인 548억원의 약 87.5%를 차지한다. 다만 이번 사들인 CB에 매수 27개월 뒤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투자금 회수 통로는 마련했다.
미국 언론은 에볼루스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고의적으로(Intentionally), 악의적으로(Maliciously), 매우 무모한(Grossly Reckless)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로 인정될 때 적용되는데 보통의 보상적 손해배상 대비 소송금액이 높은 편이다.
에볼루스가 지난해 미국에서 주보를 통해 거둔 매출은 약 425억원으로 나보타는 미국 시장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던 중이었다.
지난해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것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이번 ITC 예비판결 직후 나스닥 상장사인 에볼루스 주가는 40% 넘게 떨어졌다. 지난 6일(현지시각) 5.5달러였던 주가는 지난 8일 3.29달러로 급락했다.
ITC 최종 판결은 11월경 나올 예정이지만 예비판결 결과가 뒤집힌 적은 거의 없어 사실상 최종 판결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내년 1월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받으면 나보타는 미국 수출길이 10년간 막히게 된다.
에볼루스는 지난 6일 “ITC는 외국과 부적절한 경쟁으로부터 미국 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미국과 상관없는 한국 내 경쟁자 간에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ITC가 이용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미국 보톨리눔톡신 제제 매출 1위 엘러간(Allergan)과 한국 파트너사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균주 탈취 의혹은 미국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에볼루스 입장이다. 회사 측은 ITC 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해 예비판정을 다시 검토하면 최종결정에서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모아타제디(David Moatazedi) 에볼루스 사장은 “ITC 예비판정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오는 11월 예정된 최종 판결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업계는 에볼루스가 나보타 외에 마땅히 판매할 제품이 없어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에볼루스는 미국 외에 캐나다, 유럽연합(EU), 러시아, 독립국가연합(CIS),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국가에서 나보타 허가, 수입, 판매, 마케팅, 상업화 등과 관련된 독점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보타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 중으로 지난해 9월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외 국가에선 허가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번 예비판결이 나오면서 미국 내 증권 소송 전문 로펌인 깁스(Gibbs)는 에볼루스가 대웅제약과 맺은 나보타 판권 계약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미연방 증권법 위반 가능성을 기반으로 대규모 주주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보인다. 깁스 측은 “에볼루스에 투자한 주주는 깁스 홈페이지나 증권팀에 연락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에볼루스와 파트너십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시킬 예정”이라며 “ITC 예비판결로 에볼루스 CB 인수 취소나 에볼루스가 CB 발행을 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