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 “자국산업보호 위한 정책적 판단, 인정 못 해” … 메디톡스 “과학적 검증 결과, 민·형사 소송도 승리 자신”
2016년부터 약 5년 가까이 이어진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보톨리눔톡신 제제 균주 도용 분쟁에서 메디톡스가 승기를 잡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6일(현지시간) 예비판결에서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10년간 대웅제약 보톨리눔톡신 제제 ‘나보타주’(미국명 주보) 수입금지를 권고했다.
이번 예비판결은 오는 11월 진행되는 최종 판결 전 행정판사가 ITC 위원회에 권고 의견을 내는 절차다. 큰 이변이 없다면 예비판결이 최종 판결로 확정되는 게 일반적으로 대웅제약 입장에선 패소 위기감이 커졌다.
대웅제약 측은 “이번 ITC의 예비판결은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정책적 판단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정식 판결이 나면 이를 검토해 이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분쟁은 2016년 11월부터 약 5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2006년 3월 보톨리눔 톡신제제 ‘메디톡신’을 출시한 뒤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메디톡스는 2014년 4월 출시된 대웅제약 나보타주에 사용된 균주가 자사를 도용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자사 직원이 퇴직하면서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편취해 대웅제약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은 나보타의 미국 임상 3상이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메디톡스는 균주 관련 자료를 편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퇴직자 2명과 대웅제약을 대상으로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2017년 5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다른 퇴직자 3명 및 대웅제약을 상대로 재차 고소했으나 증거 미확보 등으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에 메디톡스는 검찰과 경찰이 음으로 대웅제약을 비호하고 있다는 시선을 내비쳤다.
이후 메디톡스는 201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대웅제약과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대웅제약 건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렸고 에볼루스 건에 대해선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양사는 이 결과를 두고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대웅제약은 법원이 자신의 손을 들어줬다고 봤고,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미국 기업이 아닌 만큼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통해 따져보라는 의미라며 맞섰다. 메디톡스는 같은 해 10월 한국에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는 두 달 뒤인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시민청원(Citizen Petition)을 내고 분쟁 중인 나보타 균주 출처를 확인하기 전에는 승인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FDA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해 2월 나보타(미국명 주보 Jeuveau) 시판을 허가했다.
이에 메디톡스는 2014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액상형 보툴리눔톡신 제제인 ‘이노톡스주’ 기술 수입사인 엘러간(현 애브비)과 함께 지난해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제소했고, 양측의 자료제출 과정을 거쳐 이번 예비판결에 이르렀다.
대웅 “이번 판결은 명백한 오판, 미국 내 피해 없다” 이의 제기 전망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의 제조기술 도용, 관할권 및 영업비밀 인정을 명백한 오판으로 규정하고 이 부분을 적극 소명해 최종판결에서 승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ITC 행정판사 스스로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균주 절취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며 “16s rRNA 차이 등 논란이 되는 과학적 감정 결과에 대해 메디톡스 측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했거나, 메디톡스가 제출한 허위자료 및 허위 증언을 진실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예비판결은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며 “ITC는 예비결정의 전체 또는 일부에 대해 파기(reverse), 수정(modify), 인용(affirm) 등 결정을 내린 뒤 대통령 승인 또는 거부권 행사로 최종 확정된다”고 설명했다.
대웅 측은 균주 도용 여부를 떠나 이번 소송이 미국 내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최종 판결에서 메디톡스가 승소하면 대통령 승인이 결정되는 내년 1월부터 나보타주는 10년간 미국 수출이 금지된다.
ITC의 결정을 근거로 메디톡스가 대웅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선 “ITC는 일종의 행정소송이라 수출입 제한에만 효력이 있을 뿐 손해배상 청구 근거가 되지 못한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면 민·형사상 대웅이 균주를 도용했다는 명확한 판결이 나와야 하는데 국내 민사 소송은 형사에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양사 모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메디톡스 “사실상 최종 결정과 다름 없어” … 관련 국내외 소송 신속 해결 집중
메디톡스는 ITC의 예비판결에 대해 승리를 확신하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메디톡신주’ 품목허가를 취소해 가라앉은 분위기가 해소되는 모양새다. 7일 메디톡스 주가는 장 개시와 동시에 상한가를 기록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와 제조기술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며 “이번 판결은 대웅제약이 수년간 해외 규제 당국과 고객에게 균주와 제조과정의 출처를 거짓으로 알려왔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ITC 예비판결은 번복된 전례가 흔치 않아 사실상 최종 결정이나 다름 없다”고 덧붙였다.
메디톡스는 ITC 판결 결과를 토대로 국내에서 진행 중인 민사, 서울지방검찰청에 접수된 균주 출처 신고자 형사 고소 건 등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과의 국내 소송에서도 승소해 메디톡신 품목허가 취소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한국 법원과 검찰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도용했다는 ITC 판결과 동일한 결론을 낼 것으로 확신한다”며 “ITC에 제출된 증거자료와 전문가 보고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신속하게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 타격 불가피 … 미국 판매사 손해배상·국내 품목허가 재고 등 전망
결국 이번 예비판결이 확정되면 대웅제약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 초 수출이 금지되면 나보타주의 미국 판매사인 에볼루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 소송이 이뤄지면 배상금이 상당한 규모가 될 전망된다. 또 메디톡스 균주를 도용해 만든 제품으로 국내 식약처 허가를 받은 게 확인되면 국내 허가 시 제출한 서류에 기입된 균주 출처도 조작된 것으로 간주돼 허가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는 만큼 국내외에서 부정적 이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ITC 행정판사가 메디톡스 손을 들어준 이유는 두 균주의 유전자 데이터가 기원 상 동일하다라는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소송 과정에서 메디톡스가 수많은 이슈의 중심에 서면서 주가가 크게 폭락한 가운데서도 데이터만 놓고 보면 승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다림으로 얻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자사 3품목의 국내 허가 취소로 침울해있던 메디톡스의 한 관계자는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됐다”며 “사필귀정으로 메디톡스의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