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테크노밸리(Techno Valley)에 제약·바이오 기업이 입주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이 곳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택지개발지구의 일부분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정부와 경기도가 융합기술 중심의 혁신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20만평(66만㎡) 규모로 조성된 첨단 산업단지다. 20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문화기술(CT)·나노기술(NT) 중심 연구개발(R&D) 허브로 2005년부터 10년간 총 5조270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경기경제과학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은 총 1270여개로 이들 기업의 연매출은 총 80조원, 직원 수는 7만명에 달하는 슈퍼 산업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서울 강남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2000년대 초 강남을 대체하는 신도시로 주목받으면서 판교밸리에 대한 기대도 커졌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각종 개발사업이 중단되거나 속도가 느려져 주변 집값이 동반 하락하는 등 고비를 겪기도 했다.
바이오 벤처기업이 판교에 입주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코리아바이오파크가 완공되면서다. 순수 민간자본으로 건립한 단일 빌딩에 대화제약, 화일약품, 바이오니아, 서린바이오사이언스, 오스코텍, 크리스탈지노믹스 등 22개 제약바이오 기업과 한국바이오협회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주했다. 대지면적 1만1061㎡(3346평), 건축 연면적 5만9548㎡(1만8013평) 규모다. 인근에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 경기도 글로벌 R&D센터, SK케미칼, 휴온스 등이 입주해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2015년 신분당선 판교역 신설과 기존 분당~수서 고속화도로에 분당~내곡 고속화도로 노선 변경 등으로 교통망이 확충되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문을 열면서 편리한 교통과 대형 상권이 시너지를 내 기업 입주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NHN·카카오·엔씨소프트·넥슨·스마일게이트 등 굵직한 IT·게임 기업이 자리를 잡았고, 2016년 삼양바이오팜이 신사옥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를 준공하는 등 바이오기업의 판교 입주도 이어졌다.
기존 계획된 부지에는 입주가 끝난 상태로 판교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을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성남시는 수정구 금토동 일대에 올해까지 판교 제2테크노밸리(43만㎡), 2023년까지 제3테크노밸리(58만㎡)를 조성키로 했다. 기존 판교 테크노밸리 66만㎡을 합하면 총 167㎡로 여의도(총면적 290만㎡)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정부는 판교 일대를 첨단산업 클러스터인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단지 확장을 마치면 2500여개 기업, 13만여명이 근무하는 초대형 산업클러스터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일찍이 바이오 허브로 자리를 잡았다. 판교밸리에 입주한 바이오기업은 141곳으로 전체 입주사의 15% 내외다. 생산시설 비중은 낮은 편이라 전체 제약바이오 기업 종사자의 25% 정도만 생산직이고 나머지는 연구개발 및 마케팅 등 인력이다. .
판교밸리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는 두 기업은 SK케미칼과 휴온스다. SK케미칼은 1999년 개발된 국산 1호 신약인 항암제 ‘선플라주’(성분명 헵타플라틴), 13호 신약인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정’(성분명 미로데나필) 등 케미컬의약품과 4가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주’,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주’ 등 백신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백신 부문은 2018년 7월 100%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로 분사했다. 지난해 11월 27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노바티스의 치매 치료제 ‘엑셀론캡슐’(성분명 리바스티그민타르타르산염)의 제네릭(복제약)인 ‘윈드론’의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코스피 상장사인 SK케미칼의 시가총액은 1조5792억원으로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2525억원, 영업이익 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16% 늘었다. 매출 감소는 지난 2월 바이오에너지사업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면서 발생했다. SK케미칼은 바이오원료를 조달해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이르는 전 사업(바이오원료 및 특수 플라스틱)을 팔고, 케미컬의약품·백신 사업과 인수합병(M&A) 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합성 항원 기반 코로나 19 서브유닛’ 백신 후보물질이 지난 3월 동물실험을 시작했고, 오는 9월에는 임상 1상에 진입해 내년 9월 최종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5월에 미국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국내 업체 중 가장 많은 약 44억원을 지원받았다.
최근 코로나19 이슈와 함께 오는 7월 코스피에 상장하는 SK바이오팜과 같은 바이오 계열사로 묶여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모회사가 최태원 회장인 주식회사 SK 계열사이고, SK케미칼은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의 대표로 있어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수혜주로 영향을 받고 있다.
휴온스는 M&A 전문가로 불리는 윤성태 휴온스글로벌 부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일양약품을 거쳐 SK케미칼에서 23년간 근무한 베테랑 엄기안 사장이 맡고 있다. 이 회사는 1965년 창업한 광명약품공업이 전신으로 1999년 광명제약, 2003년 휴온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2016년 회사를 인적분할해 휴온스글로벌을 세워 지주사 체제를 완성했다. 의약품 제조·판매기업 휴온스, 미용필러 및 점안제 등 제조사 휴메딕스,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휴온스네이처, 미용의료기기 제조사 파나시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지난 29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휴온스글로벌 3548억원, 휴온스 5207억원, 휴메딕스 2752억원으로 3개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하면 1조원이 넘는다.
휴온스글로벌은 올해 1분기 매출 1166억원, 영업이익 18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 6% 증가했다. 계열사 휴온스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9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5% 감소한 114억원이다. 이 회사는 다각화된 포트폴리오와 주력 사업부문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실적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나노복합점안제 ‘HU-007’은 독일에서 임상 3상을 승인받았고, 보톨리눔톡신 제제 ‘리즈톡스’ 는 외안각주름(눈가주름) 적응증 추가 임상시험 종료를 앞두고 있다. 연구개발비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하며 영업이익이 소폭 감소했지만 R&D 투자를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휴온스그룹은 다변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매출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순환기 의약품 등 경구제 중심 전문의약품 판매가 꾸준히 늘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함량 비타민C ‘메리트C산’ 등 건강기능식품 매출도 늘었다. 이밖에 건강기능식품 및 의약품 수탁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사업 확대가 실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출시한 여성 갱년기 맞춤형 유산균 건강기능식품 ‘엘루비 메노락토 프로바이오틱스’를 비롯해 남성 비뇨기 필러 ‘더블로 필’, 전문가용 보습제 ‘베러덤MD’ 등이 다이나믹하게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윤성태 휴온스글로벌 부회장은 “헬스케어 전반으로 다변화한 휴온스그룹의 포트폴리오가 제 역할을 하며 1분기에도 선전할 수 있었다”며 “불확실성이 더 커졌지만 헬스케어산업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만큼 그룹의 역량을 모아 선제적 투자와 시장 대응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넥신은 ‘하이에프씨(hyFc)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코로나19 치료제·유방암 치료제·지속형 성장호르몬 등을 포함한 15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선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임상 단계에 진입해 후보물질인 GX-19를 지난 19일 사람에 처음 투여했다.
이 회사의 핵심 신약후보물질인 ‘GX-I7(하이루킨-7)’은 제넥신 관계사인 네오이뮨텍을 통해 미국 FDA로부터 코로나19 경증 환자 치료제로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이 물질은 화학치료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와 병용 투여해 다양한 암 치료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범용 면역항암제다. 현재 치료제가 없는 삼중음성유방암에서도 의미있는 중간 임상 결과를 나타냈다. 현재 3세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주’를 개발한 미국 머크(MSD)와 함께 하이루킨-7을 활용한 유방암 환자 대상 병용투여 임상 1b·2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매출액 7억원, 영업손실 128억원, 순이익 298억원(중국 바이오기업 투자지분의 가치 상승)을 기록하며 성장단계에 있지만 시가총액은 2조2748억원으로 코스닥 10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2000년 세워진 바이오 기업으로 창업자인 양윤선 대표는 국내 바이오벤처 1세대로 불린다. 양 대표는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제대혈(탯줄에 남아 있는 혈액) 보관 서비스와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를 목적으로 회사를 세웠다. 제대혈 유래 줄기세포 치료제로 무릎연골 재생 효과를 내 건 ‘카티스템’으로 주목 받았다. 2011년 ‘카티스템’이 FDA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엔 제품을 출시했다. 2013년에는 기관지폐이형성증 치료제 ‘뉴모스템’이 미국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올해 1분기 매출은 122억3600만원, 영업손실 8200만원을 기록했지만 전분기 적자 약 42억원 대비 폭을 크게 낮췄다.
차바이오텍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 신약개발 전문기업이다. 만능줄기세포 유래 2종과 성체줄기세포 유래 5종, 면역세포 유래 세포치료제 1종 등 총 8종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임상 3상에 돌입한 줄기세포치료제는 없지만, 줄기세포치료제 (CordSTEM-ST)의 유의성을 입증했다.
차바이오텍의 계열사인 차헬스케어는 LA차병원, 싱가포르법인, 호주법인, 대만법인, 일본법인, 차움의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7일 750억원을 금융시장에서 조달해 글로벌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사업 진출을 선언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29일 기준 차바이오텍은 시가총액 1조394억원으로 코스닥 32위에 올랐다.
삼양바이오팜은 지상 9층, 지하 6층 규모에 마케팅과 연구인력만 400명이 근무하고 있는 삼양홀딩스의 판교 사옥인 판교디스커버리센터에 입주해 있다. 이 회사는 1995년 자체 개발한 식물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해 파클리탁셀의 대량 생산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고 2001년 ‘제넥솔주’ 생산을 시작하며 세포독성 항암치료제 시장에 진출했다. 생분해성 소재를 활용한 수술용 봉합사 ‘크로키’ 등 의료기기 분야에 R&D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밖에 붙이는 관절염치료제 ‘류마스탑플라스타’와 금연보조제 ‘니코스탑패취’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큐리언트는 난치성질환 관련 바이오신약 개발사로 아토피성피부염 치료제 ‘Q301’, 약제 내성 결핵 치료제 ‘Q203’ 등을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미국암학회(AACR)에서 ‘Q702’와 ‘Q901’ 두 후보물질의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Q702는 종양미세환경에서 면역 활성화에 관여하는 3가지 표적(Axl, Mer, CSF1R)을 동시에 저해하는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이고, 이번에 처음 공개한 Q901은 CDK7 인산화효소에 대한 특이적 저해제다. Q702 올 하반기 임상을 시작하며, Q901은 내년 미국 FDA 임상 승인이 목표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프랑스파스퇴르연구소와 파트너십을 구축한 국내 최초의 독립 바이오기술 전문 연구소로 기초 의과학 및 생명공학 분야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치료 후보물질 발견을 위한 다각적인 약물 재창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근당과 혈액항응고제 및 급성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주’(나파모스타트, Nafamostat)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2상 시험을 준비 중이다.
판교에는 바이오 투자만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벤처캐피탈 기업들도 입주했다. 가장 먼저 미래에셋벤처는 판교 내 미래에셋벤처타워 운영을 담당하면서 2012년 판교 내 벤처기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등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현재 서울사무소로 업무를 분산시켰지만 관리인력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주관하고 있다. 이밖에 투썬인베스트, 투썬벤처파트너스, 영풍제지 자회사인 레고인베스트먼트 등이 입주해 있다. 이들 벤처캐피탈은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예비창업자 및 창업기업을 발굴해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성남시는 지난해 9월 분당구 정자동 주택전시관 부지에 바이오헬스 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사업도 발표했다. 10만㎡ 규모 부지에 바이오기업·연구기관·병원·지식산업센터·창업지원센터·컨벤션센터·건강쇼핑센터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특히 국내외 의료인·전문가들의 교육과 세미나·학회 개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사업계획 용역을 내년 말 마친 뒤 주택전시관 개발계획 수립고시를 내고 개발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이 단지를 분당벤처밸리, 야탑밸리, 하이테크밸리, 판교테크노밸리 등과 연계해 성남형 바이오헬스 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