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액 2900억원 날아갈 위기 … 정부, 약제 이어 유효성 재평가 기준 개정 등 대대적 수술 준비
뇌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제제의 급여인정 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지난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6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선 대웅바이오 ‘글리아타민정’ 등 124개 제약사, 234개 기등재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해 치매 관련 적응증에 대해서만 보험급여를 100%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들 약제의 적응증은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 기억력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 의욕 및 자발성 저하, 집중력 감소(효능효과1) △감정 및 행동변화 : 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무관심(효능효과2) △노인성 가성우울증(효능효과3) 등 크게 3가지 항목이다.
심평원은 이 중 효능효과2와 효능효과3에 대해 급여를 20%만 인정하고 나머지 80%의 보험약가는 환자가 본인부담금으로 내도록 결정했다. 특히 효능효과1중에서 치매에만 급여를 인정한다고 명시해 이 항목에 해당되더라도 치매 이외의 적응증에는 급여가 20%만 인정한다고 못을 박았다.
심평원 자료 기준으로 지난해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적응증에 해당하는 환자 수는 185만명, 이들에게 급여가 이뤄진 전체 처방액은 3525억원이다. 이 중 치매 관련 적응증 처방환자는 33만명으로 약 17%(중증 치매 5.8%, 경증 치매 11.3%)에 불과하다. 처방액은 603억원 정도다.
따라서 100% 급여가 이뤄지던 시장의 17.1% 시장만 온전히 남고 나머지는 대폭 감소될 위기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약은 정당 506~523원하는 약을 하루에 2~3알씩 복용하게 돼 있는데 급여가 20%만 인정되면 환자는 하루 1000~1570원의 80%에 해당하는 본인부담금을 감수하고 하는 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네 의원 등에서는 효능효과 2와 3에 근거해 신경학적 진단 없이도 이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노년층에게 처방을 남발해온 게 사실이어서 처방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효능효과1 중에서도 기존 치매 예방 등을 목적으로 처방되던 경도인지장애(환자수 기준 33.2%), 기타 뇌관련 질환(38.5%), 감정 및 행동변화와 우울증(효능효과 2와 3) 등(11.2%) 등 전체 처방 적응증 환자의 약 83%, 처방액 기준 약 2900억원(82.2%)이 날아갈 위기에 놓인 만큼 개정 고시가 최종 확정될 경우 제약업계는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환자 입장에서도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비싼 약값을 내야 하거나, 다른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데 콜린알포세레이트 대체제로 마땅한 약이 없어 환자들이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1999년 9월 국정감사에서 이데베논, 염산인델록사신, 염산비페멜란, 프로펜토필린, 니세르골린 등 5개 성분은 1998년 5월 일본 후생성이 치매 치료효과가 없다고 판정해 허가가 취소됐음에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를 계기로 치매 적응증이 전부 삭제됐거나 허가가 취소됐다. 현재도 시판 중인 니세르골린(Nicergoline) 성분의 일동제약 ‘사미온정’은 2006년 미생산 사유로 급여가 삭제됐다가 2008년에 법원 판결로 부활했다.
사미온정은 2015년 12월 뇌경색후유증, 뇌출혈후유증, 말초순환장애(사지의 폐색성 동맥질환, 레이노병 및 레이노 증후군) 등의 적응증이 뇌경색후유증으로 축소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현재는 뇌경색후유증, 노인 동맥경화성 두통, 고혈압치료의 보조요법 등 3가지 적응증을 갖고 있다.
치매 환자는 콜린·아세틸콜린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복용하면 증상 개선을 유도한다고 해당 제약사들은 소개해왔다. 하지만 이 약은 출시된 뒤 전반적인 뇌기능 개선제로서 유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지난해 8월 복지부와 심평원이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재평가를 미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치하고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유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건약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적응증이 모호하고 광범위해 건보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약은 3개 적응증 중 감정·행동변화와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 2개는 특정 질환 때문이 아닌 일반 노약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주장했다. 심평원이 이 적응증에 급여를 인정한 근거 자료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급여 재평가는 이같은 지적을 반영한 결과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일선 병원에서 치매 치료제보다는 뇌기능 개선제 등 치매 예방 개념으로 장기처방 해왔다”며 “예방 개념의 처방이 단번에 중단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까지 약평위 심의 결과를 제약사에 통보하고 고시를 발령할 예정이다. 연내에 관련 규정을 개정해 2021년부터 급여적정성 재평가 제도화 및 후속 약제 재평가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11일 의약품 안전성·유효성 재평가 대상 선정기준을 변경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구체적으로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제약업계는 복지부, 심평원, 식약처의 삼각파도에 다른 기등재 약제 급여 재평가 과정에서도 급여축소가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약평위 재평가 과정에서 제약사들은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효과에 대한 자체 자료를 제출했고, 과거 심평원·식약처 재평가 결과를 첨부했으며, 사회·경제적 비용절감효과 등 관련 자료를 보강했는데도 충분히 재평가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제약사의 우려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이외에 다른 약제들도 재평가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건보 재정 상황을 고려한 급여 취소 처분이 늘어날 전망”이라며 “기존 식약처가 적응증을 허가하면서 검토한 임상 결과나 추가 연구자료 등이 합리적 근거 아래 제대로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약평위는 독일 머크(Merck)의 전이성 메르텔세포암 치료제 ‘바벤시오주’(성분명 아벨루맙, Avelumab)에 대해 급여 적정성이 있다고 심의했다. 이 치료제는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복지부 건정심 의결 등을 거쳐 최종 급여 등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