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병협, “병원 인력부족 해소 위해 의대 정원 1000명 늘려야” vs 의협 “의사수 많아, 의료전달체계 확립 우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이후 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대 정원 확충과 의료인력 증원을 주장했던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이를 위한 정책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21대 총선·병협회장 선거 의료인력 확충 공약 승리 … 국민적 공감대
지난 15일 제21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은 총선 공약으로 “의료인력 확충으로 지역의료체계 확립과 일자리 창출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필수·공공·지역 의료인력 확보 △의과대학 정원(학부생·전공의·전문의)의 합리적 조정을 통한 의학교육 질 향상 △의사과학자 육성을 통한 공중보건 위기 대응 및 미래성장 동력 창출 등을 세부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공약집에서 한국이 주요 국가에 비해 의료인력이 부족하고, 의대 정원 동결 정책 유지로 인해 의료현장이 상시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진료·공공의료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우선 추진하고, 증원된 인력은 ‘지역의사제 특별 전형’으로 선발해 해당 지역 병원급 기관 의무복무를 유도하겠다는 내용을 밝혔다.
이밖에 적정 교원 확보 및 양질의 시설·장비·기자재 확충을 적극 지원하고, 의학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도 의료인력 증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오랫동안 의대 증원을 주장해온 정영호 대한중소병원협회장이 신임 대한병원협회장으로 선출된 게 한 예다. 정 회장은 중소병원의 의료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증원 등의 필요성을 외쳐왔다. 이번 협회 회장 선거 과정에서도 정원 수가 적은 의대에 추가로 정원을 더 배정하는 방식으로 전체 정원을 1000명까지 늘리자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국내에선 연간 1000명 정도의 의료인력 확충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의대 입학 정원을 3000명에서 4000명으로 증원하고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인력 중 3만명 중 필수적인 개원의 2만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만명을 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당과 정 회장의 공략이 선택된 것은 여론 역시 의료인력 충원에 공감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특히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과잉병상이 사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인료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 만큼 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국내 병상 수는 12.3개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3명으로 평균인 3.4명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총선으로 힘을 받은 여당과 정부가 병협·대형병원 등의 지원을 얻으며 무난하게 의료인력 충원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의협, ‘통계의 오류’ 주장 … 지역 의료 격차 줄이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우선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일각은 인구에 비해 의료인력이 적다는 것은 ‘통계의 오류’라며 있는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료인력 충원을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2일 이슈브리핑 1호 ‘의사 수 부족, 진실 아닌 정치적 주장일 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의사 근무시간·의사 밀도·인구감소·활동 의사 증가율 등을 고려할 때 의사 수 부족 통계는 틀렸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미국이나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는 의사 인력 산정 시 전일근무자(Full Time Equivalent, FTE) 기준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히 고용인력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OECD 국가의 국토 면적 대비 의사 밀도에서 한국은 10㎢당 12.1명으로, 네덜란드(14.8명)와 이스라엘(13.2명) 다음으로 3번째로 높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와 활동의사 증가율을 감안하면 5년간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3.0%로 OECD 회원국 평균 2.5%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구소는 “국내 최근 5년간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0.49%임을 감안하면 2028년에 활동의사 수는 OECD 평균치를 추월한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의료인력 문제는 양적 부족보다 지역별 의료 격차가 문제라며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조건적인 의대 신설과 의사 증원은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방식에 불과하면 향후 공급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대안으로 △의료 수요에 맞는 적정 전문인력 양성 △의사인력 관리를 위한 전문조직 필요 △지역 1차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공공의료기관 역량 강화 등을 제시했다.
밥그릇 싸움 비난 속에 오랜 쟁점 … 의사 사회 반발 시 정부와 갈등 예상
의료인력 확충 문제는 그동안 의료계의 오랜 쟁점이었다. 임기가 한달 남은 20대 국회에도 공공 의료인력을 충원하려는 ‘공공의대 설립법’ 등이 계류돼 있다.
정부·여당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을 상정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앞서 지난 2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는 정치 논리를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반발에 밀려 법안 심사가 불발됐다.
가장 강력한 반대 주체는 역시 의협이다. 의협은 지난 4월 9일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기존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공공의료 개념 재정립에 역점을 두고 의료계가 앞장서서 공공의료 활성화 대책을 수립해 나가기 위해 ‘공공의료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전세계적으로도 공공의대를 설립한 곳은 일본뿐”이라며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료인력 확충이 공공의료의 답이 될 수 없으며, 기존 의대 입학 정원 안에서 위탁교육생을 뽑아 교육한 후 지역 의료 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 자체가 다 공공의료인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의대는 의사를 공무원화해서 영국이나 이탈리아처럼 환자를 대충 보고 끝낼 것이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의대정원 확대와 의료인력 충원을 둘러싼 병협과 의협의 갈등을 두고 서로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의료인력이 많을수록 유리한 병원 경영진과 의료인력이 제한될수록 유리한 의사들 간에 이권 다툼이라는 시각이다.
그럼에도 여권의 총선 압승으로 공공의료 확충을 목표로 하는 의대정원 확대와 의료인력 증원 정책은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계류 중인 공공의대 설립법은 당장 20대 국회 임기 안에 통과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의협이 합리적 사유를 들어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정책들을 힘의 논리로 독단 강행한다면 반드시 전국의사 총파업으로 맞설 것”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의대정원 증원과 의료인력 확충 정책이 논의될 경우 의사와 정부와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은 크다. 비록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 수를 갖고 있어도 정책이 법안으로 통과되기까진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