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옷을 걸쳐도 한낮에는 살짝 더울 만큼 봄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여전히 손발이 시려워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한여름에도 손발에 냉기가 돌아 일상생활이 힘든 이들은 바로 레이노증후군(Raynaud`s Phenomenon) 환자다. 평소 손가락이 추위에 민감하고, 추위에 노출됐을 때 손가락 색이 흰색이나 푸른색으로 변한다면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레이노증후군은 1862년 프랑스 의사 모리스 레이노(Maurice Raynaud)가 처음 발견했다. 추운 곳에 가거나, 차가운 물에 손과 발을 담그거나,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추위나 스트레스 등의 자극으로 말초혈관이 수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레이노증후군 환자는 말초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해 문제가 된다. 손이나 발등 말초부위 혈액공급이 감소돼 손발이 시리고 통증·저림·가려움 등이 나타나며 피부색이 변하기도 한다. 주로 손발에 나타나지만 드물게 코·귓볼·입술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레이노증후군은 특별한 원인없이 증상이 나타나는 1차성과 자가면역질환 등 기저질환이나 유발원인이 있는 2차성으로 구분된다. 1차성 레이노증후군을 독립적으로 레이노병(Raynaud disease)이라고 한다. 환자의 70%는 1차성으로 젊은 여성에서 많이 나타난다. 남자보다 약 5배 더 많이 발생하며 전형적으로 15~40세 사이에 발병한다. 반면 2차성은 고령층에서 많이 발병하고 1차성보다 통증이 심하다. 환자의 20~30%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노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는 기저질환 또는 기타 원인으로는 △류마티스관절염·각종자가면역질환 등의 결합조직병 △버거씨병(Buerger’s disease)·죽상동맥경화증·혈전색전증 등 동맥 폐쇄성 질환 △베타 차단제·에르고타민제제·일부항암제 등 약물 △수근터널증후군·반사성교감신경위축증·뇌졸중·추간판질환 등 신경질환 △혈액질환 △진동도구·타이핑·피아노연주 등에 의한 외상 등이다. 자율신경계를 예민하게 만드는 출산·폐경 등이나 40대 이상 여성에서 나타나는 호르몬 변화도 레이노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레이노증후군은 손발이 시린 증상이 수족냉증과 같아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수족냉증과 달리 일반적으로 손발 색깔이 3단계로 변하는 게 큰 차이점이다. 처음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이 하얗게 변하고 감각이 무뎌진다. 이같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산소 공급에도 차질이 생겨 피부가 파랗게 변한다. 마지막 3단계로 다시 붉어진다. 이 때엔 수족냉증보다 증상이 훨씬 심하며 가려움·저림·통증·작열감이 동반되는 특징을 보인다.
대개 증상이 경미하고 일과성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만성화되면 혈액순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게 되면서 피부궤양이나 괴사를 유발할 수 있다. 단순 수족냉증으로 여기고 방치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레이노증후군은 과도하게 수축된 혈관을 이완시켜주는 혈관확장제로 치료할 수 있다. 칼슘채널차단제는 레이노증후군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물이다. 혈관 이완작용으로 발병 빈도를 줄이고 증상을 완화한다. 니페디핀(nifedipine), 암로디핀(amlodipine), 펠로디핀(felodipine) 등이 있다. 레이노병에 적응증을 가진 바이엘코리아의 ‘아달라트연질캅셀’(성분명 니페디핀)은 1회 5~10mg을 1일 3회 투여한다. 특별한 경우 용량을 하루 최대 60mg까지 늘릴 수 있다. 정상 혈압에서 니페디핀 복용으로 급격한 혈압강하가 나타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발가락 궤양이 동반된 심한 레이노 현상에는 일로프로스트(iloprost), 알프로스타딜(alprostadil), 림파프로스트(limaprost) 등의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제제를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혈관확장을 통해 증상 개선을 노린다.
발기부전 치료에 쓰이는 실데나필(Sildenafil) 성분도 혈관 확장 효과가 있어 미승인 적응증(오프 라벨)으로 2차적인 레이노증후군에 사용될 수 있다. 도포하는 약으로 혈관 확장 기능이 있는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 크림을 처방하기도 한다.
이밖에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 억제제, 알파차단제도 있다. 안지오텐신II는 혈관을 좁게 만드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ACE 억제제는 체내 효소의 안지오텐신II의 생성을 억제한다. 알파차단제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노르에피네프린의 작용을 방해한다. 이밖에 소량의 아스피린, 혈액순환 개선제, 스트레스 조절을 위한 안정제 등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차성 레이노병은 약물치료에 잘 반응해 예후가 좋은 편이다. 기저질환이 발견돼 2차성 레이노질환으로 진단되면 기저질환을 치료하는 게 원칙이다. 홍반성 루푸스나 전신성경화증처럼 예후가 나쁜 기저질환이 원인인 경우 레이노 증상 치료도 잘 되지 않는다.
약물에 반응이 없거나 증상이 심할 땐 교감신경을 절제하는 신경차단술로 발작 횟수 및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손·발가락 괴저가 발생한 경우에는 수술적 절단이 필요하다. 좁아진 혈관에 카테터를 삽입해 넓히는 풍선카테터 혈관확장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심리적 긴장감으로 발생하는 발작을 방지하기 위해 명상 등 심리적 요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레이노증후군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일상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여름철에는 에어컨 바람이나 찬물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손발을 보호하고,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 여름에도 장갑 또는 두꺼운 양말 착용이 권장된다.
감정적 스트레스를 회피·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면 도움이 되며 진동을 주는 기구는 필요할 때만 최소로 사용한다. 진동 자체가 증상 악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진동 기구를 사용할 경우에는 진동을 줄여주는 항진동 장갑, 항진동 보호막을 쓰는 게 도움이 된다. 흡연도 레이노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요소다.
박기덕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평소 손발이 차고 저릴 땐 혈관을 수축시키는 니코틴이나 카페인 섭취를 삼가는 게 좋다”며 “담배는 피부 온도를 떨어트려 발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금연은 필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