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50% 수도권 거주, 다중 밀집 시설 다수 … 여기저기 지역 감염 신호에도 준비 덜 된 당국
지난 8일 구로구 콜센터 발생한 신종 코로나 집단 감염 관련 확진자가 늘고 있는 와중에 전문가들은 서울에서도 대구와 같은 대규모 지역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망설이던 세계보건기구(WHO)가 결국 11일(현지시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에 대한 ‘판데믹’(세계적 감염질환 유행)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신종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자, 공교롭게도 줄어들던 국내 추가 확진자의 수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는 양상을 보여 긴장감이 고조됐다. 사달은 지난 8일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서울코리아빌딩 콜센터에서 일어난 집단감염에서 일어났다.
12일 현재 콜센터 관련 확진자만 102명(서울시 집계)이 확인됐으며 얼마나 더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다. 직원들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서울시가 다른 지역과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과밀집 도시임을 고려하면 자칫 대구보다 빠르게 대규모 지역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콜센터 관련 감염자는 거주지역 별로 서울 71명, 경기 14명, 인천 17명이다. 감염자는 11층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근무자가 77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9층과 10층 직원도 2명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층을 넘어 감염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이 건물에는 총 760여명의 콜센터 근무자와 200여명의 오피스텔 거주자 등 1000여명 이상이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서울시는 해당 건물과 인근 지역을 서울시 차원의 감염병 특별지원구역으로 지정하고 인적·물적 지원을 총집중하여 조기에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2일 “코리아빌딩의 집단감염은 신종 코로나 추가 확산을 막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냐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콜센터 근무 직원과 오피스텔 거주자 전원에 대해 오늘 중으로 검사를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수도권, 다중밀집시설에 대중교통 이용 인구 비중 높아 순식간에 지역감염 확산 우려
문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될 여지가 다분하다는 데 있다. 서울시에는 다중밀집시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다가 인구밀집도가 높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광범위해서 집단감염이 몇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확산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은 방역의 불안요소다. 이미 구로구 외 서울의 다른 자치구는 물론 인천광역시와 경기 안양, 광명, 일산 등에서도 구로 콜센터 관련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감염자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칫 신종 코로나 확산의 도화선이 될 우려가 크다.
구로 콜센터 외에 주요 대학병원과 대학 캠퍼스, PC방 등에서도 잇따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에선 이송요원인 36세 남성(161번 환자)이 지난달 21일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확진자가 14명으로 늘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도 지난 8일 대구에서 상경한 사실을 숨긴 70대여성이 몰래 입원진료를 받다가 확진 판정을 받아 응급실 등 일부 병동을 폐쇄했다.
한양대에서는 11일 서울캠퍼스 학부재학생 1명이 감염돼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던 의대 본관 건물이 폐쇄됐으며, 경희대도 한의대 석사과정 졸업생이 10일 확진 판정을 받아 한의대 출입을 봉쇄했다. 대학 측은 이들과 접촉한 사람을 파악 중이다. 동대문구 PC방에서도 10일 4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동대문구보건소가 PC방을 폐쇄하고 접촉자 파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역망에 걸리지 않은 지역감염이 서울시 내에 다수 존재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현재 방역이 대구 지역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검사 역량을 서울로 옮겨 학대하면 확진자 수가 더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다. 특히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젊은층에서 보이지 않는 전파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30대 젊은층은 신종 코로나에 걸려도 무증상으로 앓고 지나가거나 당국 통제 범위에 잡히지 않을 수 있다”며 “나이가 많은 부모와 조부모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조심해야 하는데 비교적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국민 50% 수도권 거주 … 병실 증설 등 선제적 조치 주장에도 여전히 유보적인 정부
전문가들은 대구와 같은 사태가 서울에서 재현됐을 때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병상 확충을 꼽았다. 서울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형병원과 음압병실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수도권 인구를 고려하면 대규모 지역감염을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내 총 음압병상은 385개로 민간음압병상이 342개, 국가지정음압병상은 43개다.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의 가동률은 96.8%다. 수도권 전체의 감염병전담병원 581개 병상 중 53%도 이미 가동 중이다. 환자 수가 폭증한 대구 상황에서 보듯 미리 병상확보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병실 증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아직까지는 수도권 환자 발생이 대구·경북의 상황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수도권의 의료자원도 대구나 경북에 비해서는 풍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추가적인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기존 집단시설 및 다중이용시설 관리 지침을 바탕으로 세분화되고 강화된 사업장 감염 차단 집중관리 지침을 마련해 시행할 방침이다. 권순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2일 기자브리핑에서 “사업장 내 감염관리 책임자를 지정하는 등 감염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예방교육을 홍보 및 실시하며, 환경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감염을 막기 위해 12일부터 시도별 방역관리와 환자관리체계 점검에 나선다. 감염병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생활치료센터 지정 등을 준비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김 교수는 “대구가 겪은 상황은 서울에 많은 시사점을 보여줬고 결과적으로 대구·경북에서 서울에 시간을 벌어준 셈인데 적절한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며 “비상사태에 대비한 의료 인프라 확충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