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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불감, 신종 코로나를 대하는 양극의 심리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02-27 13:56:47
  • 수정 2020-02-27 18: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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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염병 스트레스 VS 반동형성 ...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도 불안감 때문
신종 코로나로 유발된 감염병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감염 예방 수칙을 잘 지키고 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 온 대학생 이 모씨(21)는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사투리를 쓰지 말라’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가 대구·경북 지역을 휩쓴 탓에 혹여 지역 차별을 받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한편 대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박 모씨(67세)는 신종 코로나로 휴원하게 되자 이번 기회에게 서울에 엮어놓은 커뮤니티 친구들에게 상경해서 회포나 풀자고 문자를 돌렸다가 아무도 답신을 남기지 않는 ‘냉대’를 당했다. 눈치가 없는 게 맞을까, 대구 지역민을 통틀어 의심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과도한 걸까.

‘불안’으로 위축 … 접촉을 피하는 사람들
 
신종 코로나 첫 감염자가 발생한 지 달포가 지났다. 초기에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으로 조기종식을 기대했으나 지난 20일부터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급증해 27일 18시 현재 1766명에 이르렀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달 첫째, 둘째 주에 걸쳐 조사한 결과 신종 코로나 이후 60.4%가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상의 모습부터 변했다. 타인과의 접촉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집 밖에서 외식하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기보다는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배달해 받는다. 음식배달업체 요기요는 이달 1~23일 중 주말 평균 주문 건이 전월 대비 17%, 물류 배송 스타트업인 바로고는 12%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마트, 백화점, 재래시장 등에선 물건이 쌓여 있는데도 손님이 뚝 끊어졌다.
 
여가의 형태도 바뀌었다. 외부활동과 만남이 줄어들면서 영화관, 식당, 놀이공원, 찜질방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들도 전례 없는 불황을 맞았다. 예식장 장례식도 한산하다. 불참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부조만 하고 일찍 자리를 뜨는 이들이 많다. 대신 빠르게 필요한 것만 소규모를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은 인기다.

직장에서는 회의와 미팅이 줄었다. 회의는 마스크를 끼고 가능한 짧게 진행하고 외부 미팅은 미루거나 전화·이메일로 대체됐다. 회식이 사라진 것은 물론 점심식사마저 각자 따로 먹는 ‘혼밥’이 굳어졌다..
 
아예 재택근무를 선택하는 기업도 많다. (주)SK, KT, LG상사, NS홈쇼핑, CJ홈쇼핑, 아모레 등은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1~2주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현대·기아차, LG그룹, 포스코에너지, 금호타이어, 고용부 등은 임신부와 기저질환자를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유난이다’ 위기감 부재로 주변과 마찰 겪는 일부
 
박 모 어린이집 원장의 사례처럼 위기감 결여로 주변과 마찰을 빚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여전히 회식을 주장하는 상사, 대면 미팅을 요청하는 거래처, 서비스업 종업원이 마스크를 끼는 것에 항의하는 손님, 의심환자와 접촉 이력이 있으면서도 신고를 게을리하는 이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불안감에 동조하지 못하고 반대로 행동하려는 형태도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기제’라고 설명한다. 불안감을 부정해서 이를 이기려는 ‘반동형성’이 작용한 것이다. 반동형성이란 위협적인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 감정적인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을 왜곡하고 현실을 다르게 해석해서 자신을 속이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말한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면서 반동형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나는 두렵지 않다’고 자신과 주변에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불안감을 이겨내려 시도하는데, 이 역시 불안감 표현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반동형성이 자칫 공통체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다중이용시설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고 기침을 하거나, 격리대상자가 격리 규정을 어기고 해당 구역을 이탈하거나, 감염자와 접촉한 것을 인지했는데도 이를 숨기고 제3자와 꺼리김 없이 만나는 등의 행동은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감염 확산을 막으려는 사회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감염병 스트레스 … 편견·분노로 악화 막아야
 
신종 코로나와 같은 대형 감염병 사태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감염병 스트레스’라고 한다. 지난 24일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스트레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불안과 공포, 불면증, 지나친 의심과 주변인 경계, 외부활동 감소와 무기력증 등을 꼽았다. 신체적으로 두통이나 소화불량, 어지럼증, 두근거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건강염려증으로 번지면서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감염병 정보를 검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한다.
 
가짜뉴스와 유언비어에 휘둘리는 것도 감염병 스트레스가 불러온 불안 증세의 하나다. 불안할 때는 현실에 대한 통제감이 떨어지게 되는데, 현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믿지 못하고 자신이 찾아낸 자극적인 정보를 신뢰하며 통제감을 느끼려는 시도다. 타인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니 더 안전하리라 믿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퍼지는 가짜뉴스와 유언비어가 대립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백종우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불안감을 가져야 적극적인 대처와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종 감염병에 대한 불안 그 자체는 순기능이 있다”면서도 “지나친 불안과 공포로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고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같은 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러스보다 위험한 공포, 종식 믿음가지고 일상 지켜야
 

감염병을 대할 때 “바이러스보다 공포가 번지는 게 더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공포가 퍼져서 사회 기능이 마비되면 감염병 자체보다 공포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불안감에 지나친 위축도, 주변에 폐를 끼치는 반동형성도 감염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감염 예방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대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채정호 교수는 “감염병 사태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 극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함께 지켜야 할 수칙을 성실하게 지키고 윤리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감염병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자신을 격려하기 △기부·응원·봉사 등 사태 해결을 위한 선행에 동참하기 △결국 종식된다는 믿음을 가지기 △타인에 대한 비난을 참기 △정확한 정보에 귀기울이며 일상생활 이어가기를 권고했다. 그는 “인류는 많은 감염병을 겪어왔지만 이겨냈고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믿고 기다리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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