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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크루즈를 ‘코로나19 배양접시’로 만든 일본의 선택
  • 김신혜 기자
  • 등록 2020-02-24 20:49:41
  • 수정 2020-03-03 16: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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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국주의 내세워 일본에는 책임 없음 강조 … 안이한 대응으로 감염 확산 방치 비판 이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일어난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세균배양접시’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 크루즈에서는 지난 19일부터 음성 판정을 받은 승객 970명이 요코하마에서 하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선 시 바이러스 검사를 누락했거나, 음성 판정 후 하선한 승객이 다시 감염자로 확인되는 등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미 초기 대응에 실패했는데 마무리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현재 크루즈선 확진자는 총 634명(23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집계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해 일본 국내외에선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사태를 빨리 수습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올림픽 의식한 무리수에 올림픽 빼앗길 위기

뒤늦은 하선 조치, 적극적인 환자 진단 회피, 귀국하려는 탑승객 의사 무시 등 일본 당국의 이해하지 못할 조치들은 오는 8월 열리는 도쿄 올림픽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태를 축소하려던 일본 정부의 무리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림픽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바이러스 확산을 가져와 향후 올림픽 개최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는 위태로움을 자초하고 있다. 

이에 이미 2012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런던은 도쿄가 어려우면 대신해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며 약을 올리는 상황이다. 영국 집권 보수당 소속의 션 베일리(Sean Bailey) 런던시장 후보는 지난 21일 트위터에 “코로나19로 계속되는 혼란을 고려해봤을 때 런던이 올림픽을 대신 열 준비가 돼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올리면서 양국 갈등은 재점화됐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도 “만약에 대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영국 정부는 일간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를 통해 “정치적 발언일 뿐 영국 또는 런던시의 입장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 누리꾼은 “영국 국적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선을 다시 가져가라”며 분노하고 있다.

기국주의 근거해 방역 책임 없다며 영국에 책임 전가

계속 갈팡질팡하며 이해할 수 없는 대응으로 일을 키운 이번 크루즈 사태를 계기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보건을 자랑했던 일본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말했다.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국주의(旗國主義)를 내세워 “일본은 크루즈에 대한 방역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지난 20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에서 “선박을 소유한 영국 정부나 이를 운용하는 미국 회사가 더 빨리 집단 감염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같은 날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누가 어떤 관할권을 갖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지금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기회에 관할권에 대한 룰을 제대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해상에서 통용되는 국제법상의 원칙은 기국주의다. 공해상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은 배가 등록돼 있는 국가에 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운항회사는 미국 기업의 일본법인인 ‘카니발재팬’이지만 배의 국적인 선적은 영국이다. 운영은 일본법인이 하지만 영국 회사가 소유한 선박이기 때문에 코로나19와 관련된 대응은 영국 관할이라는 게 일본 주장이다. 일본은 선적 등록국인 영국과 기항(寄港·목적지가 아닌 곳에 잠시 들르는 것)을 허용한 일본 중 어느 쪽에 대응책임이 있는지 묻기 애매한 국제법 미비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관할권과 관련된 논의 자체가 크루즈에서 수백명 감염자가 확인된 이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이는 뒤늦은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이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일본 영해에 진입해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건 지난 3일 밤이었다. 일본 정부가 승객들에게 객실 대기 조치를 실시한 것은 10명의 감염자가 확인된 5일 이후다. 3일부터 바로 객실 격리 조치를 취했다면 감염 확대를 더 줄일 수도 있었다. 감염 확대를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집계방식까지 꼼수 … 크루즈 감염자 일본 아닌 기타 지역으로 분류

게다가 일본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일본 내 감염자 집계에서 크루즈 확진자를 제외해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월 5일이전까지 일본은 바이러스 발생지인 중국을 제외하면 신종 코로나 감염증 확진 환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였다. 세계 2위 코로나19 감염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크루즈 탑승 확진자를 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코로나19 발생국이 됐다.

지난 6일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일본 내 감염자로 분류되던 크루즈선 감염자를 ‘기타 지역 감염자’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 내각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크루즈선 감염자들은 일본에 상륙하기 전에 감염됐기 때문에 일본 내 감염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WHO는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1000만달러(약 118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크루즈는 일본 영해이자 일본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선내 탑승객들은 국적에 관계 없이 일본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관리를 받되, 방역 조치는 미약하고, 집계 대상에서는 제외하는 조치에 탑승객은 울분을 터뜨리고 일본 정부는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요코하마가 기항지야 종점이야? … 책임 방기하는 봉쇄적 조치에 국제사회 분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 가고시마, 홍콩, 오키나와를 거쳐 요코하마로 귀항하는 코스다. 크루즈는 출항지에서 출발해 여러 기항지를 거친 후 다시 출항지이자 종점인 곳으로 돌아오게 되고 기항지에 다양한 여행객이 승선, 하선하면서 승객의 풀이 바뀌게 돼 있다. 요코하마는 출발점이자 종점인데 일본 정부는 책임지으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기항지(중간 기착지)라고 우기며 승선을 막는 대기 명령을 내렸다. 14일간 선내 격리 후 문제가 없으면 하선시키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거나 예견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틀에 박힌 사고관에 뜻밖의 충격파를 줬다. 중국 본토 외에서 1000여명이 확진자로 진단된 가운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객 중 634명이 확진자로 진단된 것은 ‘완전한 대응 실패’로 낙인 찍히게 됐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9일 “일본을 자기 역량을 과시하다 자기 덫에 걸린 희생양”으로 비유하며 “예외적인 상황에선 예외적인 대응이 필요한데 일본은 상황이 평상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통상적인 대응만 한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실었다. 모든 면에서 고도로 구조화돼 작동하는 사회는 이런 특수한 상황을 만나도 평소처럼 통상적인 대응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오판을 내리기 쉽다고 꼬집었다. 책임을 방기하고 봉쇄로만 소극적으로 일관하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좁은 공간에 탑승객 밀집은 바이러스 확산의 온상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크루즈 안은 환기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것이고, 격리 조건도 좋지 않을 것이다. 승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데다 영양 공급도 부족해 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초기 대응이 미흡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처음부터 별 거 아닐거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유행 초기에 방치한 중국 우한시와 똑같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며 “좁은 지역에서 비말(침방울)이든 접촉이든 굉장히 많은 사람이 노출됐을 텐데 노출 상황에 대해 낙관적으로, 느슨하게 대응하다 대형 악재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미국은 지난 17일에 자국민을 전세기에 실어 데려갔고, 한국은 19일에 대통령 전용기(공군 3호기)로 우리 국민을 귀국시켰다. 러시아 국민도 23일에 귀국했다. 중국은 20일에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을 통해 본토가 아닌 홍콩으로 여러 차례 자국민을 실어날랐다. 

게다가 일본은 탑승객을 섬세하게 안정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뉴욕타임스는 승객 하선이 이뤄지기 전인 지난 11일 ‘격리된 크루즈선의 승객들은 많은 질문을 안고 있다. 일본 정부는 거의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필요한 정보 제공 없이 입을 다물고 사태를 방관하는 듯한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선내 감염도 막지 못한 일본 정부가 과연 일본 내 지역감염 확대를 억제할 수 있을지 세계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외신들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완전 방역을 마치고 오는 3월에 다시 크루즈 여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을 경유하는 이 코스에 과연 어떤 배짱 두둑한 승객이 탑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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