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외교갈등, 지역사회 전염 수준이란 의식, 세계보건기구 지침 핑계, 총선 판도 감안 소극 대응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에 감염된 국내 28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대중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세계 각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중국 지역으로부터 입국을 차단,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바이러스 발원지인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만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뒤늦게 내렸을 뿐 대상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 전역 대상 입국 금지 요청’ 글에는 약 70만명이 동의했다. 청원 동의가 20만명을 넘기면 답변해야 하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입국 금지 대상 지역을 후베이성에서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현재 단계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안일함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국 내 다른 지역의 입국 제한 조치는 상황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시간 뒤 박능후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무회의 참석자 다수가 현재 상황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지난 1주간 중국인 입국이 현저히 줄었다”며 “추가 입국 금지 조치가 없더라도 의도했던 입국 제한이나 입국자 축소가 이미 이뤄지고 있어 조금 더 상황이 급변하기 전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가 입국 금지 지역을 확대하는 뉘앙스의 발표를 하자 논란이 일지 않도록 기존 방침을 고수한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하루 뒤 10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문 의료진이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증 질환이 아니고 치사율도 높지 않다”며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고 의료진 역량도 뛰어나 관리·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도 엇갈린 견해 … 더 강력한 조치 필요 vs 과도한 우려는 손해 키워
정부가 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낙관적인 평가를 내놓는 가운데 중국인 입국 금지 확대 여부를 놓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엇갈린 견해를 보였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국내 전염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입국 금지 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중국 우한에서 감염된 환자를 넘어 2·3차 감염자가 발생, 확진되는 과정에서 국내 감염 유행 우려와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 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도 감염 환자가 나오는 마당에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국 금지 지역을 넓히고 필요 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과 교류가 많은 저장성, 광둥성 도시에서도 환자가 비교적 많이 발생하는데 해외 유입원을 차단하는 감염병 대응 첫 단계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정부가 감염위기 ‘경계’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 학회는 10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한 외국인 입국 제한 등은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더 크다”며 “오히려 공포와 낙인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소모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확진 환자가 방문한 시설과 직장 환경의 적정 소독으로 충분하며 장기간 폐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전파력이 있는지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확진 환자가 다녀간 곳을 일단 폐쇄하면 당사자들이 방역 당국을 피해다니게 된다”고 강조했다.
학회 측은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지역의 치명률은 0.3%로 매우 낮고 한국은 사망자가 없다”며 “과도한 불안과 효과 없는 과잉 대응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 핑계로 확대 조치 미뤄
입국 금지 대상지역 확대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입국제한 조치 시 효력, 국제사회 동향 등을 전반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WHO는 중국과의 여행·교역 제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WHO는 최근 10년간 신뢰도 하락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다. 2013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병한 지 9개월이 지난 2014년 8월에서야 비상사태를 선포해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에서 1000명 이상이 숨진 뒤에야 늑장 대응에 나섰다는 질타를 받았다.
여기에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자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중국이 경제 침체를 우려해 WHO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7년 7월 취임한 에리트리아 태생의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WHO 설립 이래 첫 아프리카 출신, 첫 비(非)의사 수장이다.
그는 2017년 치뤄진 사무총장 선거에서 중국의 전폭적 지지 아래 당선됐다. 아프리카 지역 영향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온 중국은 친중 인사였던 거브러여수스 당선을 위해 ‘WHO에 향후 600억위안(약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대대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거브러여수스는 194개 회원국 중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을 집중 공략해 총 133표를 얻어 당선됐다. 중국이 키운 WHO 사무총장인 셈이다. 국제연합(UN) 산하 조직의 모든 활동은 정치·외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한 폐렴이 발생한 지 30일이 지나서야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중국 여행과 교역 제한은 권고하지 않는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처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이에 미국에 본부를 둔 청원 전문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엔 지난달 23일부터 ‘거브러여수스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지난 10일 기준 35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민간영역서 자발적 입국금지 효과 기대하는 정부
현재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미국·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 26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중국으로 왕래하는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산업 컨설팅 회사인 시리움(Cirium)에 따르면 우한 폐렴이 발생한 지난 1월 23일부터 현재까지 전체 중국 노선의 30% 수준인 약 6만편 이상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고 오는 3월말까지 총 16만5000편이 영향을 받아 2700만명이 이동제한에 따른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8개 항공사도 운항중단 57개, 감편 24개 등 운항 중인 중국 노선의 약 81%가 영향을 받아 피해가 예상된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4곳은 운항을 100% 중단했다.
정부는 이같은 효과로 중국인 입국자 수가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인 조치가 아닌 민간이 자체적으로 단행한 대응책이 정부의 효과라고 홍보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적 항공사는 아직 운항 중이다.
각 대학도 개강을 앞두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교육부는 중국인 유학생 입국과 관련해 ‘대학 자율’이라며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연세대·한국외대 등은 2주간 개강을 연기했고, 고려대는 2주간 기숙사 출입을 금지하고 증상이 나타나면 연락을 하도록 했지만 강제할 방법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이를 무시한 학생이 학내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면 빠른 속도로 번질 위험이 있어서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대학마다 유학생 규모나 상황에 차이가 있는데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개강을 늦추라고 하는 게 오히려 현장 대응을 어렵게 한다”고 해명했다. 국내 대학에 다니는 중국 유학생은 약 7만명에 이른다.
시진핑 방한·4월 총선 의식한 여당·정부 … 국민안전 놓고 줄타기
정부가 입국 금지 조치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기 어려운 것은 ‘제2의 사드보복’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부담도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 2.0%보다 높은 2.4%로 잡은 이유는 한·중 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경제 보복이 재현되면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오는 3월 예정된 시진핑 주석 방한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져 4월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 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오는 3월 시진핑 주석이 일본 국빈 방문에 패키지로 들르는 형식이 아닌 단독 방한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코로나 사태가 없었더라도 3월 방한은 빠듯한 일정으로 춘절 연휴 직후 고위층 인사를 보내 사드 문제 등을 논의하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사태가 1~2개월 내 진정된다는 가정 하에 5~6월은 돼야 방한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의 소극적 대응은 이같은 일정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여당을 제외한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뿐만 아니라 정의당도 국민안전을 이유로 입국 제한 지역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중국 전역이 위험지역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광저우 등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여당은 자화자찬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한 지역 입국 금지를 두고)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이어 “감염병보다 무서운 것이 불신”이라며 오히려 “이를 유발하는 가짜뉴스를 차단해달라”고 말했다.
중국 전체 우한 폐렴 감염의 40%는 정부가 입국을 금지한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 발생했다. 항저우·광저우·정저우·창사·난징 등 감염 위험이 높은 도시에서 입국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선 후베이성 방문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방문한 적 없다고 말하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통제가 허술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11일 국내에선 28번째 확진자가 발생했고 유증상자 2749명 중 809명이 격리 중이다.
중국에선 사망자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1일 0시 기준 전국 31개 성에서 신종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4만2000명, 사망자는 1000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9일 하루 사망자가 처음으로 90명을 넘어선 가운데 11일 100명으로 늘어났고 확진자 중 위중한 환자가 많아 사망자가 속출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