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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자·중국 보따리상 싹쓸이에 국내 마스크 품귀 … 정부 단속엔 ‘콧방귀’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2-07 16:37:34
  • 수정 2020-02-07 18: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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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절 빌미로 저가품 대체 발송 비일비재 … 가격 5~6배 인상, 중국 반출 증가로 국민건강 위협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내 약국에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박 모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미세먼지·방역용 KF94 인증 마스크를 50장 주문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박 씨는 동네 마트나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해 온라인 쇼핑몰을 찾았지만 이 마저도 매진된 곳이 많아 한참을 검색한 끝에 주문에 성공했다.

하지만 며칠 뒤 집으로 배송된 제품을 확인해보니 당초 주문한 마스크보다 저렴한 제품으로 아무런 연락도 없이 변경돼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다른 곳에서는 더 저렴하게 판매가 됐던 제품이었다. 판매사에 전화 연결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 씨는 “주문한 제품은 지난해에 장당 990원에 팔던 물건인데 배송은 같은 시기 690원에 나가던 게 왔다”며 “한 박스에 5만원하던 걸 11만원 주고 사는 것도 비싼데 바꿔치기까지 당하니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요즘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써야할 것 같다”며 단념했다.

 

조직적·대량 매입하는 도·소매업자 거치며 가격 폭등

온라인 상에선 박 씨와 같은 피해자가 올린 글이 수백 건에 이른다. 중고 사이트에서 마스크를 구매해 선급금을 보냈는데 판매자가 잠적하거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나온 제품을 구매하면 나중에 전화로 품절됐다며 다른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마스크 확보가 어려워져 일단 구하는 대로 사용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전국적으로 마스크 구매 관련 소비자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방역용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빚는 데에는 유통업자들이 매점매석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이 중국으로 유통하는 물량도 상당하다. 주문 수량이 워낙 많다보니 마스크 1장 당 10~20원씩만 올려도 수백만장을 팔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다.

마스크 도매업자 C씨는 “공장에서 웃돈을 주고 물량을 받아 국내 도소매점, 중국 보따리상 등에게 팔고 있다”며 “
300~400원에 도매업자 손을 떠난 마스크는 소매업체 5~6곳을 거치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고 설명했다.

C씨에 따르면 소매업자는 도매업자로부터 마스크를 대량으로 매입한 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등에서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개에 달하는 이들 대화방에서 거래되는 마스크의 기본 수량은 만 장 단위가 넘는다. ‘KF94 마스크 20만장 구함’, ‘KF80 급매’, ‘즉시 현금 지급’ 등 글이 오가는 것으로 볼 때 대대적이고 긴박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방에서 물량을 확보한 업자들은 가격을 올려 인터넷 쇼핑몰 등 유통업체와 병·의원 등 의료기관에 값을 올려 판매하고 있다.

지난 5일 정부는 ‘보건용 마스크 및 손 소독제 매점매석 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고 매점매석한 생산자·판매자를 단속해 적발 시 2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내린다고 엄포를 놨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벌금을 내고도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스크를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빗대 ‘마스크코인’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보따리상부터 최대 부호 마윈까지 되는 대로 한국 마스크 싹쓸이

중국 상인들도 한국으로 몰려와 닥치는 대로 마스크를 쓸어 담고 있다. 제주국제공항에 근무하는 G씨는 공항 한 켠에서 중국인 보따리상으로 보이는 그룹이 마스크를 대형 여행용 가방 수십여개에 나눠 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중국인이 지나간 자리에 비닐과 박스 포장 부산물 등을 버리고 떠나 분리수거장을 연상케 했다”며 “마스크 비닐까지 뜯어 무게를 줄이고 중국 세관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숨겨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선 마스크가 부족해 생수통을 잘라 머리에 뒤집어 쓰거나 자몽·귤 껍질, 여성 속옷, 배춧잎 등에 고무줄을 달아 직접 마스크를 만드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동부 푸젠성 샤먼시에선 추첨으로 마스크 구입 자격을 줘 당첨된 사람만 약국에서 마스크를 최대 6장까지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를 설립한 중국 최대 부호 마윈은 국내 기업인 유테크에 KF94 마스크 1200만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테크는 물량 확보를 위해 KF인증 제조사를 돌며 납품수량을 맞췄고 알리바바그룹은 중국건설은행과 협력해 복잡한 송금 절차를 생략, 물품 대금을 보내고 중국동방항공 전세기 7대를 마련해 마스크를 중국 우한시로 운송했다.

인천의 한 물류창고에선 중국으로 발송될 예정이던 마스크 10만개가 도난당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한국 무역업체 대표 A씨는 중국인 동업자에게 보낼 제품을 보관해뒀다가 물건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측은 마스크 제조공장에서 인천 물류 보관창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른 인근 물류창고로 잘못 보내진 것인지 수출 면장 등을 확인하는 등 수사를 진행 중이다.

대형 유통업체, 시장 안정화 위한 자정능력 발휘한 노력도

유통업자들로 인한 품귀현상이 지속되자 소셜커머스 업계는 직접 제조사로부터 마스크를 매입해 평균 판매가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핫딜’을 진행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G마켓·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지난 6일 옥션에서 모나리자, 유한킴벌리, 미래생활 등이 생산한 보건용 마스크 50만장을 순차적으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가격은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이전 수준으로 책정했다. 성능별 665~2200원선으로 구성되며 1인당 1팩(30~100장)으로 구매 수량을 제한한다.

11번가도 마스크 50만장을 직접 확보해 오전 11시부터 ID당 2박스 또는 100장에 해당하는 수량만 판매 중이다. 11번가 관계자는 “마스크를 적정 가격에 판매해 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방침”이라며 “상품 판매자가 현 상황을 악용한다고 판단되면 내부 정책에 따라 페널티를 부과하거나 상품 노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시장 안정화 위한 대책 내놨지만 효과 미비

마스크 매점매석으로 인한 품귀현상이 만연하자 정부는 물가안정법 제6조에 근거해 ‘마스크 등에 대한 긴급수급 수정 조치’ 발동을 예고하고 마스크 생산·도매업자에게 구매자·판매 수량 등을 신고받아 유통 단계를 파악하고 있다. 수정 조치가 발동되면 각 업체는 관련 내용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정부의 임의 규정으로 별도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 생산업자는 생산량·국내 출고량·해외 수출량을 매일 신고해야 하며, 도매업자는 대량 판매할 때 구매자·단가·수량을 신고하도록 했다. 대량의 기준 수량은 1000개, 금액은 200만 원이다. 이를 초과하면 정식 수출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 절차를 지킬 곳은 드물다. 정부는 간이 절차를 정식 절차로 변경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가사용 목적은 200만원 이하, 300개까지 가능하다. .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국내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1000만개로 공급량이 충분한 상황에서 민간 수급이 불안한 이유는 유통 단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은 급한 불을 끄고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일반인이 KF80 인증 제품을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필터가 있는 마스크가 없을 때는 기침과 재채기 등으로 인한 침방울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방한(면 재질) 마스크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병원 근무자에 대해선 감염원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는 KF94, KF99 등급 마스크 착용을 권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마스크 착용 필요한가

이미 지역사회 내의 사람 간 전파가 확인된 한국에서는 마스크 권고 지침이 내려졌다. 이미 지역사회 감염 수준으로 광범위하게 바이러스가 퍼질 우려가 있는 데다가 잠복기가 2주일로 길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전파가 보고되지 않은 미국에서는 마스크 착용 지침이 내려지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 여행객의 유입을 차단했으며 이미 갔다온 사람의 경우 2주간 격리조치를 내렸다. 김우주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권고하지 않은 것은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라며 “WHO는 세계인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권고조치를 내린 것이고 미국은 이미 차단 조치를 내렸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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