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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유통 판치는 낙태약 ‘미프진’ … 정부·국회 방치에 여성 병들어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1-20 01:14:50
  • 수정 2020-09-14 15: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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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산 가짜약 등 적발 건수 증가 … 불법인데 구매는 쉽고 관리는 안돼, 총선 앞두고 공론화 꺼려

프랑스 엑셀진의 낙태유도제 ‘미프진(Mifegyne)’

온라인에서 처방과 유통이 금지된 낙태유도제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 Mifepriston) 불법 유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산 가짜약이 쏟아지는데다 정확한 복용법이나 사후관리에 관한 정보도 부족해 부작용 등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스테로이드성 항프로게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구용 약으로 임신 12주차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산부인과 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내로 확진받은 여성에게만 처방된다. 1988년 프랑스 루쎌 위클라프(Roussel Uclaf)가 개발해 프랑스에서 최초로 허가된 뒤 미국 영주 호주 스웨덴 등 세계 67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처방하고 있다. 1997년 미프진 판매만을 위한 엑셀진(Exelgyn)을 설립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판권을 넘겼다. 미국은 뉴욕주 소재 비영리기구인 인구협회(The Population Council)가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고, 201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COSOC)는 여성이 임신중단에 사용되는 약물을 포함해 필수의약품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50일 이내 사용 시 약 95%의 성공률을 보인다.

국내에선 미프진 판매와 구입 모두 불법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지만 형법 제269, 제270조와 모자보건법 제14, 제15조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고 관련 법령은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약물 처방이나 수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미프진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 받지 않았다.

이에 모든 거래는 음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19일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낙태 관련 단어를 검색하면 미프진 판매 사이트 또는 판매자 메신저 아이디를 소개하는 글 수십 개가 나온다. 이들은 미프진 낙태 성공률이 98%에 이르고 부작용 없이 안전하다며 빨리 복용할수록 좋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 가격은 40만~60만원선에 거래된다.

한 산부인과 간호사는 “헌재 판결 이후 대중의 심리적인 부담감이 줄어든 탓인지 오히려 낙태 문의가 늘었다”며 “낙태 유도제를 취급하는지, 낙태수술 뒤 기록이 남는지 등을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선 산부인과에선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수술을 종용하고 현금 결제를 강요하는 등 환자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술비는 60~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병원에서 기록이 남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수술을 받는 비용보다 온라인에서 구입해 혼자 낙태유도제를 복용하는 게 경제적이고 개인 신상에도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에 미프진 불법 유통은 지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 낙태유도제 판매 적발 건수는 2015년 12건에서 2018년 2197건으로 늘었고 2019년 8월까지 1742건이 확인됐다. 대부분이 중국에서 유통된 약으로 성분을 알 수 없는 가짜 약이나 정식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미국산으로 둔갑해 국내에 들어온다.

이같은 보건 사각지대 확대로 청소년도 위험에 노출됐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법적 제약이 많은 미성년자는 불법 유통 미프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 수도권 모 대학병원에 자궁외 임신인 줄 모르고 미프진을 복용했다가 출혈과다로 미성년자가 응급실에 실려 온 사례도 있다.

정확한 정보를 문의할 곳도 마땅치 않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질문과 답변을 제공하는 게시판에선 청소년임을 밝히고 미프진 복용법이나 이상 증상 등을 문의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 산부인과 의사가 답변을 할 법도 하지만 불법적인 의약품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없다는 댓글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미프진은 정식 승인된 제품을 의료진 관리 하에 복용해야 하고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어 후속 조치에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미프진은 프로게스테론 구조를 변형 합성한 화합물로 프로게스테론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궁내막 결절 변성, 자궁 경부 연화 및 확장, 간접적 영양막 감소 등 약리작용으로 자궁에 착상된 수정체에 영양공급을 차단해 자궁과 수정체를 분리시킨다.

미국 FDA에 등록된 복용법에는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 성분 약과 병용투여하게 돼 있다. 화이자 ‘사이토텍정’이 오리지널 약인 미소프로스톨은 프로스타글란딘 유사체로 자궁내막 세포에 결합해 강한 자궁내막 수축을 일으키고 자궁경부성숙으로 분리된 수정체를 자궁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미프진만 복용할 경우에는 완전 낙태율이 60~85%에 그친다.

미프진 200mg 1정을 경구투여한 날부터 24~48시간이 지난 뒤 미소프로스톨 4정을 투여한다. 미소프로스톨은 협측(頰側, Buccal) 투여 방식으로 복용하는데 양쪽 볼에 각 2정을 30분 동안 물고 있다가 물과 함께 삼키면 된다. 이는 미소프로스톨의 체내 흡수 속도가 빨라 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한 복용법이다.

이같은 과정을 마친 뒤 7~14일 사이에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대해 전문의 진찰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출혈 여부나 수정체 상태를 확인해 임신이 아직 진행 중이면 추가 약물요법이나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이 시기에 임신이 이어지면 자궁 외 임신으로 산모가 위험하거나 12% 이상의 높은 확률로 태아에 선천적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 구토, 현기증, 설사 등으로 약 8%에선 30일 이상 출혈이 발생하고, 1%에선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과다 출혈을 경험했다.

미프진이 금지된 국가에선 미소프로스톨만 이용하는 방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200mcg 용량 4알을 혀 밑에 놓고 녹이는 것을 3시간마다 총 3회 반복하는 방법인데 완전 낙태율은 75~90%로 미프진 병용요법에 비해 떨어진다.

비교적 성공률이 높고 세계적으로 쓰이는 안전한 방법임에도 전문의의 관리가 필요한 점 때문에 미프진 등 낙태 허용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미 핀란드에선 전체 낙태의 약 93%가 미프진 병용요법으로 이뤄진다.

낙태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관련 법률 개정 시한은 올해 말까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싶지 않은 국회와 정부는 사실상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국회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의 의견 제기가 있었지만 다른 의원들이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 관련 인터넷카페 회원 A씨는 “불법 유통된 약물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미프진만이라도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며 “불법은 불법을 낳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은 낙태가 금지된 국가 여성에게 시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단체가 보유한 네델란드 국적 선박에 낙태를 희망하는 여성을 태우고 영해인 12해리 밖 공해상으로 나간 뒤 시술을 한다. 이 단체의 선박 입항을 금지하는 국가의 군당국과 충돌을 빚는 등 국제적으로도 화제와 논란을 촉발시켜왔다. 2004년에는 포르투갈에서 이 단체의 선박 입항을 금지하는 군 당국과 충돌을 빚어 국제적 이슈를 일으켰다.

이 단체는 약물을 통한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과 인터넷 상담을 한 뒤 국제우편으로 약을 보내주는 ‘위민온웹(Women on Web)’도 운영하고 있다.  17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해 총 50만명 이상이 상담을 받았고 7만여명이 약을 지원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 3년간 한국 여성 2500여명이 도움을 받았다. 국내 통관 시 적발돼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레베카 곰퍼츠 파도 위의 여성 대표는 “일부 국가에서 수술을 통한 임신 중절이 많이 이뤄지는 이유는 수술이 이윤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어 의사가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은 의학적으로 성형수술이나 ‘비아그라정’ 보다 안전하므로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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