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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료원도 활용 못하면서…’ 갈 곳 잃은 공공의대 설치법
  • 박정환 기자
  • 등록 2020-01-09 08:37:57
  • 수정 2020-09-14 07: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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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명당 의사 2.3명, OECD 최하위 … 의료계 “의료접근성 높아 불필요, 지방근무환경 개선이 우선”

2018년 2월에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전경

공공의료 인력 확충 및 지역 의료접근성 개선을 목표로 의료 취약지에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공공의대 설치법’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 간 샅바 싸움이 치열하다. 정치권과 보건당국은 의료인프라 불균형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법안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이미 의사 수가 포화 상태인데 추가적인 의대 신설은 어불성설이라며 법안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발의한 국립공공의료대 설립·운영 관련 법률안, 속칭 공공의대 설치법은 전북 남원에 4년제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2018년 2월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그대로 가져와 2023년부터 입학생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졸업생은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의사면허만 취득하고 다른 지역이나 일반병원에서 근무하는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의무 복무 조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의사면허를 취소하고 10년 내 재발급을 금지하는 처벌규정도 담겼다. 일본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1972년 공공의대를 세운 일본은 매년 120명에게 공공의료를 교육하고 졸업 후 9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안 논의가 잠정 연기되면서 의료계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복지부는 20대 국회 임기가 마무리되는 오는 5월까지 법안 통과를 밀어붙인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공의대 설립을 찬성하는 측은 국내 의사 수가 전세계 평균에 못 미친다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회원국 의사 수 비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3명으로 28개 회원국(전체 회원국은 34개국) 중 가장 적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3.4명으로 오스트리아가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노르웨이가 4.4명, 독일·스웨덴·스위스가 4.1명으로 뒤를 이었다.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는 한국이 7.9명으로 OECD 평균(11.9명)보다 4명 적었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대다수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과 대도시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대는 지역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질 전문가 양성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같은 정부의 선도적 노력이 없이 의료계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극심한 의료 인프라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기준 전국 의대 모집 정원은 2904명으로 의료수요에 비해 20~30%가량 부족해 정원을 지금보다 1000명 이상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개정안은 현재 남원이 공공의대 신설지역으로 적시돼 있으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어서 전라남도 목포시와 경상북도 포항시가 공공의대 유치에 나서고 있다. 두 지역의 인구 1000명당 평균 활동의사 수는 전남이 1.6명, 경북이 1.3명으로 서울(3.0명) 등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적은 실정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7월부터 의대 설립을 위한 의과대학 설립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으며 조사 결과는 오는 3월에 나올 예정이다. 포항시는 인근에 포스텍이 위치해 첨단 융·복합과학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탄탄해 연구 중심 의대 설립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만 ‘의료 취약 지역의 의료접근성 향상’이라는 공공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포시는 2007년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공공의대 도입을 추진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정책으로 실행에 나선 것은 전무했다. 시의회는 지난해 7월부터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함께 목포대 의대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시 측은 목포대 의대를 신설하면 2조원의 경제 효과와 5000여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계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통계의 오류’라며 공공의대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지방 의료인력 부족, 의료접근성 취약, 의료시설의 수도권·대도시 집중 등 문제는 저수가 등 현재의 비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와 지방의 주거·상업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불거진 것일 뿐 의사 수와는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지역 간 의료격차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단순히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며 “지방의료원 등 기존 공공 인프라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면서 세금을 쏟아부어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또 졸업 후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케 하는 조항은 국민기본권 및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전국 보건소 중 1㎞ 내 민간 의료기관이 있는 곳이 90%에 달하는데,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공공의료 시설을 과감히 폐쇄하고 진짜 의료 취약지대로 이전하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공공의대 설립이 재차 공론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건당국이 국내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거나 절대수가 적다는 등의 통계자료를 공개한 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전을 펼친 것”이라며 “단순히 총량만 따지면 의사 수가 부족해 보이지만 통계자료를 꼼꼼히 뜯어보면 2017년 기준 의료접근성을 나타나는 의사 밀도는 10㎢당 10.44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고, 연평균 의사 수 증가율은 3.1%로 OECD 평균인 0.5%보다 6배나 높은 등 국내 의료인력이 꼭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대 정원을 늘려봤자 흔히 인기과로 불리는 ‘피안성(피부·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에만 지원이 몰릴 것”이라며 “OECD 수준에 맞게 수가를 정상화하고 1차의료와 필수과목에 대한 지원을 늘려 의료자원의 적절한 재배치를 유도하는 게 우선”이라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의료계가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 국민 건강을 외면하고 의사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아집으로 의대 정원은 10년 가까이 300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며 “국가가  입학금, 수업료, 생활비 등을 모두 지원하고 졸업 후 의무복무기간을 두는 것은 공공의료 의사 양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지 국민기본권과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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