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이 동물병원보다 30~40% 싸지만 아직은 관심·전문성 부족 … 어려운 반품, 수의사 견제에 정착에 시간 걸려
반려동물을 돌보는 펫팸족(Pet+Family)이 늘면서 동물약 수요도 팽창 중이다. 지난 27일 기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정상 영업 중인 약국 2만2939개 중 5958개소가 동물약국 허가를 받았다. 전체 약국의 26%에 해당한다. 동물약국협회 자료 기준 2014년 동물약국 허가를 받은 약국이 2917개였던 점에 비하면 5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펫팸족이 10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KB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18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약 3조원에 이르고 매년 10% 이상 성장해 2023년에는 4조6000억원, 2027년에는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펫팸족의 호주머니를 겨냥한 ‘펫코노미(Pet+Economy)’가 확장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동물약국도 그 중 미소한 일부다.
동물약국은 등록제로 약사면허증이나 약국개설등록증만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 약국 개설지역 구청에 방문해 또는 행정안전부 민원24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개설이 가능하다.
대한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동물약 수요가 늘면서 4년전부터 동물약국 개설이 점점 늘더니 작년에 대폭 증가했다”며 “3년 전에는 협회 차원에서 동물약국을 개설하라고 홍보했는데 이젠 약사들이 먼저 문의를 해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대비 마진이 좋은 점이 알려져 동물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반려견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20~30대 약사 문의가 많다”고 덧붙였다.
강병구 신임 동물약국협회장이 2017년 발표한 ‘수의사 처방제 시행 후 인식현황 및 개선방안’ 논문에서 약사 208명을 대상으로 동물약국에서 많이 취급하는 품목을 조사한 결과 기본 필수약인 심장사상충과 내부종합구충제를 취급한 약사가 203명(97.6%)에 달했다. 뒤를 이어 예방접종 백신 121명(58.2%), 피부질환연고 54명(26%), 항생제 34명(16.3%), 소화기질환약 23명(11.1%) 순으로 다취급 품목에 올랐다.
경기 군포시 A약사는 “동물약을 취급하면 신규 고객을 확보해 일반약 판매도 함께 늘릴 수 있다”며 “반려견을 키우는 지역 주민이 한두 번 동물약을 구입하다가 고정 고객이 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전체 약국 4곳 중 1곳이 동물약국으로 등록했음에도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은 서울·경기 약국 10곳 중 1곳에서만 동물약을 취급하고 있었다. 약사들은 구청에 동물약국 등록은 마쳤으나 실제 동물약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 이유는 반려견 등을 손님들이 싫어해서, 처방약으로 매출이 충분해서, 매입·반품 절차로 손해가 발생해서 등 다양했다.
손님이 싫어하는 경우는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경기 용인시 B약사는 “거동이 편치 못한 노인이 많은 동네라 약국 내 반려견 출입을 꺼리는 손님이 많고, 무서워서 피하려다 낙상 등으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손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굳이 동물약을 취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약사들은 매입·반품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물약 중 두번째로 많이 판매되는 백신 제품의 경우 도매업체가 ‘유통기한 6개월 남은 백신은 반품 불가’로 공지하고 있는데 막상 약국에 도착한 제품의 유통기한은 3개월밖에 남지 않아 사실상 반품이 불가능한 상황이 다반사다.
서울 용산구 C약사는 “동물약은 반품처리가 어려워 가뜩이나 불만이 많은데 결제도 선결제가 조건”이라며 “수요가 있고 물품을 들여 놓아도 결국 손해를 보기 때문에 계속 약을 매입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상당수 동물약 도매업체가 반품 불가를 고수하는 가운데 후발 도매업체는 100% 반품을 받는 조건으로 약국에 론칭하기도 한다. 또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만 반품받는 것을 약속하는 업체도 있다.
이에 대해 도매업체는 동물의약품 제조와 수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동물약은 기본적으로 유통기한이 18개월 정도로 짧은데 통관 절차를 거치고 시중에 유통되기까지 8~12개월이 소요돼 실제 사용기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너무 기한이 임박한 약은 반품을 받긴 하지만 일단 들여온 약은 다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반품이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처방전이 많이 나오는 약국에서는 전문약 조제로 충분한 매출이 나와 동물약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려동물의 품종별·사이즈별 특성이나 증상별 세부처방 등을 위해 새로운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동물약을 기피하는 한 요인이다. 인근에 동물병원이 있는 경우 애초에 동물약 취급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C약사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하면 동물약을 구입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약 종류가 다양하고 마진면에서 괜찮은 품목이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고 바로 옆에 동물병원이 있어 취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동물약 취급은 동물병원과 약국 간 신경전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한수의사회와 동물약국협회는 지난해 심장사상충예방약인 조에티스(화이자의 계열사)의 ‘애드보킷’을 두고 여론전을 벌였다. 2013년 8월 시행된 심장사상충 예방제도에 따르면 이 약은 수의사 처방 없이 동물약국과 도매상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이에 대한약사회가 애드보킷의 약국 유통을 요청했지만 유통을 맡은 벨벳은 심장사상충약의 효과적 사용을 위해 동물병원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약국에 풀지 않았다.
이에 2017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상 거래거절행위’에 해당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동물병원들이 약품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1월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는 벨벳의 정책이 부당거래거절로 보기 힘들다며 시정명령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이에 조에티스가 다른 유통망을 통해 약국에 공급하기로 결정하자 수의사회는 “수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신의를 저버린 처사”라며 조에티스 경영진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는 “현재 약국에서 판매하는 심장사상충 예방약은 실제 예방약이 아닌 유충구제제로 처방이 필요하다”며 “애드보킷은 미국에선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약사회는 “동물약 공급 상위업체들이 독과점을 형성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맞섰다. 약국에서 가장 흔히 팔리는 이버멕틴의 경우 심장사상충의 초기 유충을 박멸하고, 변태 과정을 억제하지만 성충은 잘 죽이지 못하는 게 한계인 것이 사실이다.
전문성을 주장하는 수의사회에 맞서 약사단체는 전문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 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동물약 취급 품목수와 전문성이 부족한 약국들이 대부분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약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각 약대와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지역 약사회 단위 교육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K씨는 “동물병원에서 특별히 진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가 반려견 나이가 몇 살인지, 몸무게가 몇 키로인지 물어보는 게 전부인데 너무 비싸게 받는 것 같다”며 “이 정도 문진이면 온라인으로 구입하도록 허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불평했다. 대체적으로 약국은 동물병원보다 심장사상충이나 내부기생충 관련 약이 30~40% 저렴하다. 동물병원에선 수의사가 간단한 진료만 하고 투약하거나 아예 간호사가 약을 주는 것도 허다하다. 약국에선 그냥 일반약을 파는 수준의 상담만 오가기 때문에 약값이 싸지는 요인이 된다.
이같은 애로사항에도 동물약으로 승부를 보는 곳도 있다. 인천 계양구의 C약국은 일반 약국보다는 동물약국으로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약국의 간판에는 ‘인천동물약국’이라는 상표도 함께 표기돼 있다. 이 약국의 J약사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다양한 동물약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꾸준히 글을 올리고 전문성을 쌓아 현재 250여종의 제품을 다루고 있다. J약사는 “동물약은 전문약으로 전환되는 품목이 늘고 있고 최근 해외직구가 활성화되면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며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고객과 신뢰를 쌓고 반려동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물약을 취급하기에 적합한 곳은 20~50대가 모여사는 아파트 밀집단지나 주택지와 상업지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동네 소형약국’이다. 다양한 동물약을 취급하지 않아도 가장 많이 쓰이는 심장사상충약, 구충제 등을 판매하면서 단골 손님을 관리하는 전략으로 접근하는 젊은 약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중대형 약국도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동물약 판매에 뛰어들고 있지만 지역 약국가의 시선은 싸늘하다.
서울 마포구 D약사는 “일부 의약품도매상이 대형약국에 일반·전문약을 론칭하는 조건으로 동물약을 서비스 차원에서 저가에 공급하고 있다”며 “대형약국은 동물약에 관심이 없고 상담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격 할인 경쟁에 불을 붙여 난매를 조장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동물약 판매가 대중화되려면 약사들의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전문성이 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동물병원에서 부르는 게 값인 약제비는 현실화돼야 하고 소비자로선 그 대항마로 약국이 활용될 필요가 있다. 폐쇄적인 유통망을 개선하고, 원활한 수급을 위해 국내 제약·화학·동물약 기업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