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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사 논란, 선진국형 심사제도인가 ‘심평의학’ 악용 수단인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2-23 02:24:38
  • 수정 2020-09-15 1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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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환·환자별 특성 고려해 무차별 삭감 방지 … 의료계는 진료 하향평준화·획일화, 행정업무 과중 우려
강원도 원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비 과다청구를 큰 시각에서 훑어보겠다는 분석심사가 환자·질환별 특성을 반영한 혁신적 심사제도가 될지, 진료비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심평원의 자의적인 ‘심평의학’의 단초가 될지 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진료비 심사제도에 대해 공정성·투명성·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심평원은 지난 8월 새 심사제도인 ‘분석심사’ 선도사업에 들어갔지만 개원의들의 강력한 반발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심평원은 최근 몇 년새 진료비 청구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한 가운데 이를 심사할 인력 및 행정력 부족으로 새로운 심사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의사단체는 실질적 이익이 없고, 행정 업무만 과중되며, 진료비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분석심사를 반대하고 있다.
 
분석심사는 진료행위 건별로 진료비를 심사 및 삭감하는 현재 방식과 달리 환자·질환·항목·기관 등 주제별로 분석지표를 설정해 진료 경향을 분석하고, 진료 건수 또는 환자 수 급증 같은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심층심사에 들어가는 제도다. 분석심사 대상은 고혈압, 당뇨병,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슬관절치환술(인공관절수술), 초음파검사, 자기공명영상(MRI) 등 7개 항목이며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심사제도에선 심평원에 진료비 청구명세서가 접수되면 정형화된 전산심사를 거쳐 심사직원에 물량이 분배된다. 심사 담당직원들이 명세서를 살피며 심사 기준 등의 준수 여부를 체크한 뒤 기준이 맞지 않으면 진료비 삭감 등 조정 작업에 들어간다. 의료기관은 총 전산심사와 인력심사를 거쳐 삭감된 후 나머지 금액을 최종 진료비로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진료행위가 심사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차없이 진료비가 깎여 ‘삭감을 위한 심사’라는 불만이 적잖았다.
 
반면 분석심사는 심사 기준에 벗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진료비를 삭감하는 게 아니라 전문심사위원들이 환자·질환·의료기관별 특성과 진료행위의 효과·타당성 등을 총 3단계에 걸쳐 종합적으로 분석 및 조정함으로써 제한적·일률적인 기존 심사 기준에서 탈피하고 의료인의 진료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분석심사는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업무 포털에 환자의 진료내역을 첨부하고 진료비를 청구하면 1단계 전산검사를 통해 기재 및 산정 오류, 약재 허가사항, 의료장비 현황 등 필수사항을 점검한다. 단 현행 심사제도와 달리 의학적 근거 중심의 분석심사를 위해 진료행위 횟수, 시술·수술 도구 사용 개수 등 급여기준 및 심사지침은 필수점검 대상에서 제외한다.
 
2단계인 필수점검에서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진료량이나 시술건수가 특이적으로 많은 의료기관을 선별해 전문가심사위원회가 주제별 분석지표, 청구현황 등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해 중재 및 조정한다. 분석은 서면조사 또는 대면 컨설팅으로 이뤄진다.
 
중재 이후에도 의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진료량 증가가 지속되면 위원회가 의무기록을 직접 조사 및 분석하는 3단계 심층심사로 이어진다. 심층심사 대상으로 분류되면 바로 급여비 지급이 보류 및 삭감되는 강도 높은 패널티를 받게 된다.
 
이영아 심평원 심사기획실장은 “기존에는 급여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진료비가 삭감됐지만 분석심사에선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원인 분석과 소명 절차를 거쳐 의학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적정 진료로 판정한다”며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청구 건수가 급증하더라도 특정 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있거나, 인근 의료기관의 폐업으로 인한 환자가 일시적으로 몰리는 등의 합리적인 사유가 소명되면 진료비를 삭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진료 건수가 급증하는 등 이상 진료 행태가 포착된 의료기관에게 먼저 심사 결과를 통보해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하고,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심평원 직원과 전문가위원이 공동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해 조정 여부를 가리게 된다”며 “분석심사는 정상적인 의료기관의 진료행위까지도 건건이 심사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의료기관들의 전반적인 진료 경향을 파악한 뒤 유난히 특정 진료행위가 많이 이뤄지는 ‘이상한’ 의료기관에만 심사를 선택과 집중함으로써 인적·행정적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구 방식은 기존과 같지만 진료비 명세서에 ‘특정내역’을 기입토록 한 게 다르다. 고혈압은 진료할 때마다 측정한 혈압 수치, 당뇨병은 당화혈색소(HbA1c) 검사 수치, 슬관절치환술은 수술일자 및 수술사유 등을 적어야 한다.
 
진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진료비를 덜 삭감한다는 분석심사를 의사들은 왜 반대할일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는 분석심사가 의료비용을 더욱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관치의료, 심평의학을 공고히 하는 한편 심평원의 눈치를 보느라 필요한 진료조차 하지 못하는 ‘과소진료’를 강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겉으로는 분석심사가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환자·질환·의료기관별 상황을 고려해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일 것”이라며 “청구 건수가 많은 특정 질환이나 수술 및 시술 행위를 집중적으로 심사해 진료비를 삭감할 경우 의료기관이 심층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진료에만 집중하게 돼 장기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분석심사가 획일적인 진료를 강제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기획·정책이사는 “분석심사에서 특정 진료행위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임상지표들은 대부분 학회 진료 가이드라인을 따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일 뿐이고, 환자 상태에 따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잖다”며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못하는 환자들을 많이 본 의료기관은 분석심사에서 평가 점수가 떨어져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은 진료 및 치료 가이드라인이 수시로 바뀌지만 정책이 학문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이들 질환의 진료 및 치료 임상지표를 심사 기준으로 못박아버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최신 의학지견과 괴리가 생기고, 새로운 내용을 임상에 적용하기가 어려워져 장기적으로 치료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보다 의료기관의 행정업무가 과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심평원은 지난 10월 분석심사에 필요한 37개 표준서식을 제정한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심사 관련 자료제출에 대한 세부사항’ 제정안을 공고했다. 이 안에 따르면 의사는 심평원에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할 때 환자의 병력, 수술력, 입원력, 가족력, 등을 상세히 적어 전자통신망으로 제출해야 한이다. 표준서식 종류는 입원초진기록지, 외래초진기록지, 처방소견서, 퇴원요약지, 진단검사결과지, 영상검사결과지, 병리검사결과지, 수술기록지, 외래경과기록지 등 37가지에 이른다.
 
이들 표준서식에 넣을 환자 정보의 양도 방대하다. 입원초진기록 중 환자 치료계획은 영문 8000자, 한글 4000자로 기재해야 한다. 여기에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정보, 과거에 복용한 약물, 받았던 수술 등을 모두 파악해 기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진료비 심사와 무관한 환자의 진료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심평원이 의료의 질 평가라는 명목으로 심사 범위와 권한을 확대하고 의료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심평의학이라는 관치의료의 기반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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