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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물리학 천재, 3살 난독증 여자아이 한몸에 … 해리장애 실체는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2-10 13:21:41
  • 수정 2020-09-10 16: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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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빌리 밀리건 24개 인격 보유 … 유년기 학대·정신적 트라우마 원인, 기억상실·이인증 동반
해리장애 환자는 이름, 경험, 정체감이 다른 5~10개 인격이 번갈아 지배권을 갖고 발현되는 게 특징이다.
최근 인터넷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인격장애의 한 종류인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s, 解離障碍)를 겪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참고 살면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 억울함이 누적, 결국 인격이 부서지면서 해리장애가 온 것으로 묘사된다.
 
해리장애는 한 사람 안에 정체성이 다른 자아가 5~10개 존재해 성격과 행동이 갑작스럽게 변하고 기억상실, 빙의(憑依, 귀신들림), 둔주(遁走, 일상의 도피, 돌변적 여행이나 직업전환 등을 감행) 등이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90%가 여성인 게 특징이다. 과거엔 다중인격장애로 불리다가 1994년 현재 병명으로 변경됐으며 해리성 인격장애, 해리성 정체감장애, 해리성 정체장애 등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정신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빙의(Possession)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중인격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개가 넘는 인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William Stanley Milligan, 빌리 밀리건, 1954~2014년)이다. 10살 때인 1964년부터 계부 챌머 밀리건(Chalmer Milligan)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면서 다중인격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등 커다란 사건을 겪을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인물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격은 빌리를 중심으로 △아서 △레이건 △앨런 △타미 △대니 △데이비드 △크리스틴 △필립 △케빈 △월터 △아달라나 등 총 24개에 달했다.
 
인격 중 아서는 22세 영국인으로 지적이고 합리적이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앨런은 18세 사기꾼으로 협상을 잘한다. 토미는 탈출 기질이 있는 16세 예술가, 레이건은 23세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아달라나는 19세 여성 동성애자다. 크리스틴은 3살배기 난독증 여자 아이로 다른 인격인 아서가 그녀를 교육했다.
 
원래 인격인 윌리엄은 고교 중퇴 학력이었지만 아서가 몸을 지배하면 배운 적도 없는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수학, 물리학, 의학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레이건으로 변하면서 크로아티아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타미는 전자제품을 능숙하게 다뤘다.
 
그는 강간, 폭행, 절도 등 수많은 범죄로 법원과 정신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1978년 미국 최초로 ‘다중인격 장애와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관과 의사들은 가짜 연기를 펼치는 것으로 의심해 여러 검사와 취조를 실시했지만 각각의 인격이 보유한 지적·언어적 능력이 발군이라 다중인격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석방 후 10년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다 퇴원해 개인 영화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2014년 12월 12일 59살의 나이로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있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일생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016년 영화 ‘23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됐다.
 
해리장애의 정확한 발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년시절 육체적·성적 학대, 가족·친구의 죽음 또는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 정신적 외상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전체 환자의 약 97%가 윌리엄 밀리건처럼 어린 시절 근친상간이나 학대를 받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던 아이가 실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아를 현실과 분리시키는 방법으로 불안감을 줄이는 일이 반복되면 해리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해리장애 환자가 갑작스러운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는 것은 어린 시절 경험한 심한 학대나 정신적 외상의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피하려는 방어기제에서 오는 것”이라며 “새로운 인격이 생성되는 것도 같은 이유로, 특히 학대를 가한 사람의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 분노가 많은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장애는 크게 해리성 기억상실증(dissociative amnesia), 해리성 둔주(dissociative fugue), 해리성 정체감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 이인증(depersonalization, 離人症) 등 네 가지 병리현상이 나타난다.
 
해리장애 증상 중 가장 흔한 해리성 기억상실은 중요한 과거 경험이나 정보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상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 회복되기도 한다. 기억상실 증상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며 알츠하이머 치매와 달리 언어능력이나 학습능력 등엔 별다른 이상이 관찰되지 않는다.
 
해리성 둔주(기능적 역행성 기억상실)는 일정 기간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이전과 완전히 신분과 직업으로 생활하는 병리현상이다. 그동안 A로 살았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져 B가 되면서 갑자기 집이나 직장을 떠나 여행을 떠나거나 행방불명되는 것이다. 해리성 기억상실과 달리 자신이 기억상실이라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내적 갈등 상황에서 촉발될 수 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한 사람 속에 평균 5~10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각각 다른 이름, 경험, 정체감을 가진 인격이 번갈아 지배권을 갖게 되며 인격끼리 서로 갈등하거나 부정하기도 한다.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하면 해리장애 중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인증은 자신이 낯선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외부 세계가 갑자기 달라진 것 같은 비현실감에 빠진다. 자신이 기계나 사물인 것처럼 느끼거나, 꿈이나 영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신체 일부의 감각이 마비되거나, 물체의 크기와 형태가 다르게 보이는 거시증 또는 미시증이 나타나거나, 언어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인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는 데 어렴울 느끼고 혹시 ‘미쳤다’는 인식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자신이 겪는 증상은 느낌일 뿐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현실검증 능력은 정상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열증과 구분된다.
 
해리장애는 유병률 자체가 낮고 명확한 발병 원인이 확인되지 않아 치료가 쉽지 않다. 해리성 기억상실과 해리성 둔주는 먼저 최면치료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한 후 심리치료와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 항정신성 약물 투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엔 최면요법이 많이 사용된다. 최면은 환자 안에 존재하는 여러 인격을 불러낸 뒤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인지 및 공감하게 한 뒤 인격 간 의소소통을 촉진, 하나의 인격으로 융합시키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인증도 확립된 치료법은 없으며 약물요법·최면·인지행동치료 등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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