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입원시 수가 절반 깎여 … 재활의료기관 지정 놓고 재활병원 ‘기관제’, 요양병원 ‘병동제’ 갈등
미숙아로 태어나 선천적 소아마비를 겪는 오모 양(4)은 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1주일에 2회씩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얼마 전까지 입원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이제 그만 퇴원해달라’는 요구를 듣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다니며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 다니는 병원으로부터 내년 초 재활센터 운영 중단을 통보받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의료기관들이 예산 부족, 적자 경영을 이유로 잇따라 재활치료 인프라를 축소 또는 폐지하면서 ‘재활난민’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3월 동국대 일산병원이 저수가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재활의학과 소아 낮 병동을 폐쇄하고 원래 주 2회 이뤄지던 외래진료를 주 1회로 축소했다. 병동 폐쇄 사실을 알게 된 장애아 부모들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하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해엔 인천의 올림피아병원이 같은 이유로 소아 낮 병동을 폐쇄, 20여명의 중증 장애아동이 치료를 중단했고, 입소를 앞두고 있던 아동들도 다른 시설을 찾아야 했다.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인 재활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은 전국에 3000병상 정도로 일본(7만5000병상)의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어린이 전문재활병원은 국내에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단 한 곳뿐이다.
이처럼 열악한 재활치료 인프라 탓에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평생 장애를 달고 사는 사례가 적잖다. 현재 방치되고 있는 재활난민은 약 7만명,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연간 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정부는 2017년부터 회복기 재활치료를 전담하는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인센티브 등을 지급하는 재활의료기관 지정 시범사업에 나섰지만 이해당사자인 재활병원과 요양병원 간 갈등으로 시작부터 삐그덕거리고 있다.
재활치료는 최소 6개월 내지 1년 이상 꾸준히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보통 입원 후 2~3주가 지나면 퇴원해달라는 강요를 받기 일쑤다. 장기입원 환자가 많을수록 병원에 불리한 ‘입원료 수가 체감제’ 때문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환자의 입원기간이 보름을 넘기면 차후 병원이 받게 될 진료수가가 10%, 한달이 지나면 15%, 3개월이 지나면 절반이 삭감된다.
재활 환자가 병상 부족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줄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지만 정작 장기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쫓겨나듯 퇴원해 다른 병원을 전전하는 폐해를 낳았다. 또 재활치료 환자는 퇴원 전 가정과 사회로 건강히 복귀하기 위한 교육과 상담이 필요하지만 실제 병원에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떠밀리듯 재활병원에서 나온 환자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여러 병원을 떠돌다 최종 단계로 요양병원을 찾는다. 요양병원은 일반병원과 달리 일당정액제가 적용돼 장기입원에 따른 입원료 삭감이 없어 병원과 환자 모두 부담이 적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질환 말기 환자나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유지치료가 본업이라 재활치료에 필수적인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오히려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기 비일비재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부터 재활의료기관 지정 시범사업이 실시돼 내년 1월 본사업을 앞두고 있다. 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받으려면 △재활의학과 전문의 3명(수도권 이외 지역은 2명) 이상 △재활의학과 전문의 1인당 입원환자 40명 이하, 간호사 1인당 입원환자 6명 이하 △전체 입원환자 중 뇌손상·척수손상,·근골격계질환 등 회복기재활 환자 비율 40% 이상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지정된 병원은 입원료 수가 체감제가 적용되지 않고, 뇌손상·척수손상·근골격계질환·절단 환자에게 최대 6개월간 집중 재활치료를 실시할 수 있다. 지정 대상엔 요양병원, 종합병원, 한방병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기존에 운영되던 재활 전문병원은 제4기(2021년) 지정부터 재활의료기관 지정 사업에 통합된다. 현재 복지부가 지정한 재활 전문병원은 명지춘혜병원(서울 대림동), 국립재활원(서울 수유동), 서울재활병원(서울 구산동), 남산병원(대구),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대구), 유성웰니스재활전문병원(대전), 성화대전재활전문병원(대전), 분당러스크재활전문병원(성남), 미추홀재활전문병원(인천), 휴앤유병원(부천) 등 10곳이다. 복지부는 향후 치료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 방안을 도입하고, 퇴원 후에도 지역내 재활 등 복지 자원과 연계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재활병원계와 요양병원계는 재활의료기관 지정제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요양병원계는 병원내 한 개 병동을 재활병동으로 운영하는 ‘병동제’를 지지하고 있다. 시범사업대로 기관제로 운영되면 지방 중소도시 내 의료기관은 필요한 인력시설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워 재활 환자마저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 중 대다수가 서울, 대구 등 대도시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며 “요양병원 내 호스피스병동, 치매병동, 암병동 등이 있듯 회복기 재활도 지역사회 특성에 맞게 적정 규모의 병동으로 운영하면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지방의 재활 인프라도 확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이나 재활시설은 다른 병동과 완전히 독립된 형태로 운영하되 방사선실·식당·검사실·조리실·원무과 등은 공동으로 이용케 하면 시설 중복투자가 최소화돼 재활치료의 질 향상에 재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도 병동제를 지지하는 이유다.
반면 복지부와 재활병원들은 시범사업대로 재활치료 전담 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기관제’를 지지하고 있다. 서울재활병원 관계자는 “많은 요양병원들이 재활환자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정작 회복기 재활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일본처럼 재활 전문 의료기관이 급성기(초기 재활 14일 이내)·회복기(30∼180일), 요양병원은 유지기(180일 이후) 재활을 전담하고 각각 수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제든 병동제든 근본적인 수가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한 재활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에 대한 수가가 월 300~500만원가량 덜 삭감된 것을 제외하면 시범사업을 통해 바뀐 게 없다”며 “오히려 의사·간호사 한 명당 입원환자 수를 제한하는 등 규제가 늘고 서류작업 등이 많아져 진료 및 업무환경은 열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본사업 개시 전 보건 당국이 재활치료에 대한 구체적인 수가 인상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