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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성대장증후군에도 ‘케이캡정’? … 일선 병의원서 과다처방 의혹
  • 손세준 기자
  • 등록 2019-11-23 14:36:34
  • 수정 2021-06-02 17: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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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응증인 위식도역류질환·위궤양 외 ‘오프 라벨’ 처방 의심 … 온라인에선 몇몇 부작용 호소
씨제이헬스케어가 개발한 국산 30호 신약 ‘케이캡정’
씨제이헬스케어가 개발한 국산 30호 신약 ‘케이캡정’(성분명 테고프라잔, Tegoprazan)이 일선 병의원에서 과다 처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인천의 취업준비생 정 모 씨(30)는 수험 스트레스로 복통과 설사가 찾아왔다. 처방전에 써 있는 케이캡정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적응증이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이었다. 경기도에서 약국을 여는 6촌 약사 형님에게 “속쓰려서 간 게 아니라 약간의 식중독 증상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아 가스가 부글부글 차는 것인데 왜 이런 처방이 나왔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 약사는 “나도 인근 내과에서 과민성증후군 같은 환자에게서 위궤양이나 위산과다에 쓸 법한 케이캡정 처방이 나와 의아했는데 너도 그랬니”하고 6촌 동생을 위로해줬다.
 
서울의 Y 대학병원 L 소화기내과 교수는 “케이캡정은 과민성장증후군이나 복통·설사에 쓰는 약은 아니다”며 “속이 싸하게 아픈 데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냐”고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경기도 A약사는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지 않고 속쓰림이 없는데 역류성식도염으로 간주하는 처방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은 의사가 상병코드를 자의적으로 입력해 케이캡을 과다 처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위식도역류질환(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GERD)은 음식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또는 저녁 식후 취침 도중 위산이 역류해 신물이 올라오고 가슴에서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지는 만성 재발성 소화기병이다. 서양 유병률이 20%인 것에 비해 국내 유병률은 2%로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재발률이 60% 이상인 데다가 방치하면 바렛식도(식도조직이 단단하게 변하고 식도가 좁아지며 선암성 또는 편평상피암 조직이 되기 쉬운 상태, 연간 0.5%씩 암조직으로 변화), 바렛선암 등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커피, 술, 담배, 초콜릿, 탄산음료, 과도한 야식 후 취침, 고혈압약, 근이완 작용이 있는 약물, 비만 등이 요인이다.
 
강한 산성을 띠는 위장의 내용물이 식도로 거꾸로 올라와 식도를 부식시켜 패이고 붉은 염증이 있으면 미란성, 이런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면 비미란성 역류질환으로 구분한다. 상부 위장관 내시경 소견으로 진단한다.
 
이에 비해 과민성대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IBS)은 복통, 복부 팽만감, 변비, 설사 등이 만성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위 내시경검사를 해보면 대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건강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케이캡 처방 행태와 관련, 서울 용산의 한 내과의사는 “GERD는 일반적으로 기능성 소화불량증, 과민성장증후군, 만성 변비와 같은 다양한 기능성 질환이 함께 나타나는 중복증후군 형태로 흔하게 표출된다”며 “이런 관점에서 케이캡정을 IBS 치료제와 병행 처방하는 것은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케이캡정은 2018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아 올해 3월 출시됐다. 기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의 주를 이루던 프로톤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 계열과 다른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차단제(potassium competitive acid blocker, P-CAB)계열 의약품이다. 세계 최초로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ERD)·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NERD)에 모두 허가를 받았다. 지난 7월 위궤양 적응증을 추가해 총 3개 질환에 처방이 가능하다.
 
P-CAB 계열인 케이캡정은 기존 PPI 계열 치료제가 가지는 단점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기존 PPI 계열 치료제는 위산에 의해 활성화되는 전구약물(Prodrug)로서 식전 투여를 통해 약효를 기대할 수 있다. 활성화된 프로톤펌프에만 비가역적으로 결합해 활성화를 억제한다. 위산에 불안정해 내강(Lumen)에서 잔존시간이 짧아 새로 합성된 프로톤펌프는 억제하지 못한다.
 
PPI 계열 약은 복용 후 3~5일이 지나야 효과가 극대화되고 수 년간 장기 복용하면 부작용 위험이 높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위산 살균능력이 줄어들어 소화기 감염 위험이 커지고 소장내 세균 과증식, 위용종, 비타민B12 흡수장애,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 감염(CDI), 골다공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이에 비해 P-CAB 기전 치료제는 위산에 의한 활성화 과정이 필요 없어 식사와 관계 없이 투여 가능하다. 활성화된 프로톤 펌프 및 휴지(Resting) 상태의 펌프까지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프로톤 펌프는 위벽세포에서 수소양이온(프로톤, 위산의 원료)은 위강안으로, 칼륨 양이온은 위강에서 위벽세포로 맞교환한다. 케이캡은 프로폰펌프와 가역적으로 결합해 칼륨 양이온이 벽세포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그 결과 위산 분비를 차단한다. 위산에서도 장시간 잔존하며 새로 합성되는 프로톤 펌프도 억제할 수 있다.
 
임상시험 결과 케이캡정은 복용 1시간 내에 위산분비 억제 효과를 보이고 복용 첫 날부터 야간 위산 과다분비 현상을 억제하는 것이 입증돼 기존 PPI계열 약제 대비 비교적 효과가 빠르고 부작용 위험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야 또는 새벽에 위산역류에 따른 흉통이나 수면장애 현상을 줄여주고 식사 전·후에 관계없이 복용해도 유사한 약효를 내 복용 편의성도 개선됐다.
 
Y대 의대 L 소화기내과 교수는 “의약품의 메커니즘이나 임상시험 결과로는 모든 면에서 P-CAB 제제가 PPI 제제보다 우월한 게 맞다”며 “다만 P-CAB이 신약으로서 약값이 비싸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하냐는 측면은 시간이 흘러 장기적인 임상데이터가 분석돼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식도역류질환 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약물 부작용에 대한 불만이 종종 올라오고 있다. A 환자는 “병원에서 의사가 케이캡정으로 약을 변경해줘서 복용했는데 오히려 속쓰림이 악화돼 약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케이캡정은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했다”며 “다른 약 때문에 속이 쓰린 것이라고 해 참고 복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B 환자는 “식도염·만성위축성 위염으로 케이캡정을 15일 정도 복용한 뒤 온 몸에 힘이 풀리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난 뒤 원래 상태로 회복이 안됐다”며 “신경과 약을 복용한 뒤에야 일부 호전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손발이 퉁퉁 부어 복용을 중단했다는 환자도 있다.
 
케이캡정의 의약품 설명서에 기재된 부작용으로는 위장관계 질환인 복통·복부 불쾌·하복부통증·위궤양·직장출혈·위식도역류질환, 신경계 질환인 두통·어지럼증, 피부 관련 질환인 혈관부종 등이 있다. 또 이 약을 복용해 악성종양 증상이 완화되거나 진단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현저한 체중 감소, 재발성 구토, 삼킴곤란, 토혈, 흑색변 등 의심되는 증상이 있거나 위궤양 등이 동반된다면 악성이 아님을 확인하고 투여해야 한다고 주의사항에 명시했다. 이 약으로 위산식도역류가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특이체질이면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케이캡정은 PPI제제와 공통적으로 비타민B12(시아노코발라민) 결핍을 유발할 수도 있다. 3년 이상 위산 억제약물을 장기간 매일 투여하면 저염산증 또는 무위산증으로 시아노코발라민 흡수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PPI제제 대비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다는 의미일 뿐 절대적 안전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케이캡정은 지난 3월 출시된 지 2개월 만에 일부 약국가에선 품절이 일어나 유통업체가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월 평균 10%대 성장을 보이며 지난 9월 기준 7개월만에 누적매출 150억원을 돌파한 케이캡은 최근 라니티딘(Ranitidine) 성분 위장약 판매금지 수혜를 입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다만 P-CAB 계열 경쟁 제품으로 대웅제약이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적응증을 대상으로 신약 ‘DWP14012’의 임상 3상을 진행 중이어서 씨제이가 조급해하고 있다. 제일약품도 같은 적응증으로 신약 ‘JP-1366’의 임상 2상을 시작했다.
 
케이캡정의 오프 라벨 과다 처방 의혹이 시장 선점을 위한 과도한 마케팅에서 비롯됐는지, 의사의 재량과 양심에 따라 이뤄진 일인지는 케이캡정에 대한 환자의 평판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경쟁 제품 등장으로 우열을 비교할 수 있을 때 판명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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