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에 진입한 요즘 동물의약품 시장이 날로 성장 중이다.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37조원을 넘어섰으며 한국동물약품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시장은 1조1273억원으로 2014년 7745억원에 비해 50%가량 증가했다.
동물의약품은 축종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크게 앙계, 양돈, 축우, 반려동물로 쓰임새가 분류되며 축종마다 취약한 질병의 종류가 달라 사용하는 의약품도 다르다. 가령 조류독감은 가금류, 돼지열병은 돼지, 구제역은 소와 돼지에서만 발생한다. 양계, 양돈, 축우의 경우 유행하는 질병을 방지하는 약품이 주로 쓰인다. 대부분 사료첨가제의 형태로 투여하며 동물약국이나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에서 구입한다.
동물약국에서 가장 흔히 처방하는 약은 반려동물용 약이다. 반려동물용 약은 크게 개, 고양이용으로 나뉜다. 공통으로 광견병 백신이 필요하고 서로 취약한 바이러스가 달라 백신은 다른 종류를 사용한다. 개가 접종해야 할 중요 백신에는 파보바이러스(Parbovirus), 디스템퍼(distemper), 개 간염 등이 있다. 고양이의 경우 고양이백혈구감소증, 고양이칼리시바이러스(Feline calicivirus), 고양이헤르페스바이러스 유형1(비광기관염) 등이 필수 예방 백신이다. 개는 고양이와 달리 울혈성 심부전에 취약하다.
반려동물 중 개, 고양이가 아닌 것은 특수동물이라 부르며 뱀, 거북이, 햄스터, 고슴도치 등을 총칭한다. 특수동물에게는 동물용의약품이라고 명시된 것 중 최적의 것을 투여한다. 개체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보다는 소량을 투여한다. 수많은 동물의약품 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사항을 이영준 양수동물약국 약사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선택이 아닌 필수 ‘심장사상충 예방약’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심장사상충(心臟絲狀蟲, irofilaria immitis)은 개 또는 고양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기생충이다. 회충의 일종으로 심장까지 침투하며 실처럼 생겨 심장사상충이라고 부른다. 폐동맥과 우심실에 기생하면서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숙주의 면역과잉반응을 일으켜 신장 사구체를 망가뜨리고 심폐질환을 야기한다.
심장사상충은 암수가 짝을 지어 개의 몸 속에서 유충을 낳고 혈액으로 방출한다(L1). 이어 모기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개를 물어뜯어 혈액 속의 유충을 받아들여 3기까지 키운다(L1~L3). 모기가 건강한 개를 물어 L3 상태의 유충을 옮기고 개의 피하조직에서 지낸다. L3~L4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의 흉부·복부의 근육이나 혈구세포로 이동한다. 건강한 개에 감염된 후 45~60일경에 L5(미성숙성충)이 된다. 감염 후 75~120일경엔 심장과 폐동맥에 자리잡는다. 이후 3~4개월이 지나면, 크기가 커지게 되는데 암컷 성충은 30cm 정도, 수컷성충은 23cm 정도로 자란다. 감염 후 7개월이 되면, 암수는 짝짓기를 하고 유충을 낳는 게 심장사상충의 일생이다.
심장사상충은 모기가 없이는 감염될 수 없다. 모기가 개를 물거나 흙속의 심장사상충을 먹어야 전파가 이뤄진다. 따라서 개가 물리지 않게 하는 게 상책이지만 불가능하다. 더욱이 심장사상충은 14도 이하에서는 성장을 멈추고 27도 이하에서는 증식하는데 아파트 등 겨울에도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고 겨울을 성체 상태로 버티는 모기도 적잖아 근절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성충의 수가 증가하면서 기침, 폐렴, 무기력함, 혼절 등의 증상을 보이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일단 심장사상충에 감염되면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강아지는 생후 6주, 고양이는 생후 8주부터 먹는 약 또는 바르는 약으로 매달 관리해야 한다. 1개월 간격으로 꾸준히 관리할 때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방약은 적용하는 방법에 따라 먹이는 약, 바르는 약, 주사약이 있다. 반려동물의 몸 상태·나이·몸무게·생활환경에 따라 약의 선택이 달라지므로 약사 또는 수의사와 상담 후 결정해야 한다. 약을 먹는 데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반려동물은 피부에 바르는 외용제나 주사제를 선택할 수 있다. 주사제는 1년간 효과가 지속된다.
국내 심장사상충 약은 이버멕틴(Ivermectin) 계열, 옥심 계열(밀베마이신 옥심), 셀라멕틴 계열 등 3가지다. 이버멕틴 계열의 약들이 가장 많다.
이버멕틴 성분은 사람에서는 요충, 사상충(filariasis) 등에 쓰지만 개와 고양이에서는 심장사상충 박멸 용도로만 쓴다. 6주령 미만의 반려견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46kg 이상일 경우 체중에 맞게 적정량을 조합해 투약하도록 한다. 1개월에 1회씩 1년에 총 12회 경구 투약한다.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잊지 않도록 한다. 부작용으로 간혹 의기소침해지거나 혼수·구토·식욕부진·설사·동공확대·보행실조·비틀거림·경련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장사상충약은 굳이 비싼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보통 모기가 준동하는 5월말부터 먹이면 되고 간을 피로하게 하므로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중단해도 좋다. 특히 심장사상충약과 소화기 기생충 구충제가 복합된 약이 많은데 이를 모르고 심장사상충 전용약과 복합약을 같이 먹이면 간이 상하게 된다. 처음부터 복합제를 먹이든지, 심장사상충 전용약을 먹이고 필요하면 기생충 구충제를 추가로 먹이는 게 방법이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흙장난을 많이 치는 환경에 놓여 있어 토양 기생충이 의심되면 별도로 장내 기생충약을 투여하는 게 좋다.
이버멕틴 성분의 단일약으로는 ‘하트골드’, ‘하트가드츄어블정’ 등이 있다. 이버멕틴과 장내 기생충약인 피란델 파모에이트(pyrantel pamoate)가 복합된 약이 더 많다. 복합체는 따로 구충제를 먹이지 않아 편리하다. ‘하트캅’, ‘하트가드 플러스’, ‘다이로하트츄어블정’, ‘하트웜솔루션츄어블정’ 등이 있다. 츄어블정은 소형 강아지나 약 냄새를 싫어하는 강아지에 적합하다.
밀베마이신 옥심은 심장사상충 외에도 회충, 십이지장충, 편충, 벼룩까지 구제하는 약이다. 그러나 촌충, 흡충은 구제 범위가 아니다. 4주령 이상의 강아지에게 급여해도 안전하다. 임신견이나 수유견에 투약해도 이버멕틴보다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아 선호된다. 유전자 결핍으로 약물 부작용에 민감한 콜리 견종(牧羊犬類: 콜리, 셰퍼드, 보더콜리, 올드잉글리시쉽독, 셔틀랜드쉽독 등)에도 투약이 가능하다. 오프라벨 투약으로서 매우 적은 함량 사용만으로도 심장사상충 구제가 가능한 것(미국 식품의약국 테스트 결과 0.1mg/kg로 충분)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유통되는 밀베마이신 옥심 성분 예방약은 FDA 에서 인증된 함량(0.5mg/kg)의 절반으로 설정돼 있다. 약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버멕틴을 먹여도 상관 없다. ‘밀베마이신A정’이 대표적이다.
‘넥스가드 스펙트라’는 밀베마이신 옥심에 아폭솔라너(afoxlaner)라는 벼룩·진드기 박멸 성분이 추가된 것으로 효과가 강력하지만 심장사상충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 한꺼번에 죽어 심장혈관을 막아 위험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심장사상충 감염 여부를 진단키트로 알아봐야 한다. ‘파노라미스’는 밀베마이신에 스피노새드(spinosad)가 복합된 약이다.
이버멕틴도 심장사상충의 초기 유충을 박멸하고, 변태 과정을 억제하지만 성충은 잘 죽이지 못하는 게 한계다. 성충이 된 후에 먹게 되면 효과도 떨어지고 자칫 심장사상충 사체로 인해 혈관이 막히는 등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심장사상충이 강하게 의심돼 처음에 먹일 때나 휴약 후 6개월 이상 지나 다시 먹일 경우엔 심장사상충 진단키트를 이용하여 미리 검사해본 후 안전하게 먹이는 게 바람직하다.
셀라멕틴(selamectin)은 주로 바르는 심장사상충 약에 들어가는 성분이다. 성분이 독해서 사람 피부에도 좋지 않고 구제하는 내부 기생충 범위가 매우 좁으나 외부 기생충을 박멸해주는 게 장점이다. 한 달에 한 번 발라줌으로써 심장사상충은 물론 귀진드기, 이, 개선충, 옴진드기, 벼룩, 회충, 십이지장충, 벼룩 등 내외부 기생충을 예방할 수 있다. ‘레볼루션’, ‘셀라가드’, ‘캐치원 셀라멕틴’ 등이 있다.
이밖에 주사제로는 ‘프로하트SR12주사’(성분명 목시덱틴, Moxidectin), 도포제 형태의 ‘애드보킷’(성분명 이미다클로프리드·목시덴틴, Imidacloprid·Moxidectin) 등이 있다. 목시덱틴은 밀베마이신 옥심보다 더 안전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나 2004년 이 성분의 주사제 ‘프로하트6’ 미국 FDA 권고에 의해 자진 리콜한 적이 있다.
목시덱틴+이미다클로프리드 성분 예방약은 고양이 심장사상충 약으로 모든 내외부 기생충에 구제 효과가 있으나 FDA 인증을 받지 못한 게 약점이다. 체중에 따라 용량을 달리해 월 1회 피부에 고르게 도포한다. 다른 약제에서 이 약제로 교체할 경우 기존 약물의 마지막 투약 1개월 이내에 애드보킷 투여를 한다. 이미다클로프리드는 체내에 오래 잔류하고 살충제에 가까워 향후에도 FDA 인증을 받을지 의심스러운 약이다.
구충범위 넓고 안전한 펜벤다졸, 항암효과까지?
가벼운 설사부터 조충(촌충)으로 인한 사망까지 반려동물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하는 내부기생충은 2~3개월에 한 번씩 구충해 간단히 예방할 수 있다. 심장사상충약으로 구충 가능한 장내 기생충 범위는 일부 회충과 십이지장충까지로 한계가 있다. 편충, 원충, 조충, 흡충류 등은 대체로 구제되지 않기 때문에 구충제도 예방 차원에서 함께 사용해줘야 한다.
개 구충제로 바이엘코리아 ‘드론탈플러스’는 피란텔(Pyrantel)·페반텔(Febantel)·프라지콴텔(Praziquantel)의 3중 복합 처방 구충제로 구충범위가 가장 넓다. 구충제를 오랫동안 복용하지 않았거나 야외활동이 잦은 경우, 한 번의 복용으로도 내부 구충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10kg당 1정 복용이라 소형견은 복용할 때 용량 조절이 어려운 게 단점이다. 같은 성분인 제이에스케이 ‘제로크림주니어’는 1정 용량이 드론탈플러스의 4분의 1로 5kg 미만 소형견에게 적합하다. 1~2kg견은 1정, 2~5kg견은 2정씩 복용한다. 먹는 심상사상충 약과 7~10일 간격을 두고 복용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대한뉴팜 ‘프라벤’(성분명 프라지콴텔·플루벤다졸(flubendazole)·비타민A)과 대성미생물연구소 ‘안텔민(성분명 프라지콴텔·메벤다졸 mebendazole)’은 외부활동이 많지 않을 때 저렴한 가격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제품이다.
개와 고양이 구충제인 ‘파나쿠어’는 펜벤다졸(Fenbendazole) 성분으로 정제(알약)와 산제(가루약)가 있다. 구충 범위가 넓고 가장 안전해서 임신한 반려동물도 복용할 수 있다. 권장량보다 다소 많이 섭취해도 안전한 약이다. 이 약은 종합구충제이자 지아르디아(Giardia) 감염증에도 효과가 있는 게 강점이다.
지아르디아는 원충류로 설사·혈변 증상부터 사망까지도 일으킬 수 있으며 재발이 쉽다. 감염되면 치료까지 3주의 시간이 필요하고, 치료비도 상당한 편이다. 게다가 약제의 불쾌한 맛 때문에 반려동물이 복용 시 경기를 일으키거나 입에 거품을 무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에 비해 파나쿠어는 기존 지아르디아 치료제와 달리 무향, 무취 제품으로 개나 고양이의 지아르디아 구제에 효과적이다.
한편 펜벤다졸은 최근 항암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품귀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성분이다. 최근 암환자인 개그맨 김철민 씨도 치료를 위해 펜벤다졸을 복용해보겠다고 밝힌 이후 더욱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양수동물약국을 운영하는 이영준 약사는 “말기 암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동물용의약품을 암 치료를 위해 임의로 복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네이처(Nature)지에 실린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를 살펴보면 동물 특히 쥐에 대한 실험이 많고 사람에 대한 임상시험은 전혀 없다”며 “사람이 복용할 경우 어떤 병에 걸릴지, 부작용을 겪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동물의약품 잘 복용하는 법 … 사람이 먹는 약은 주면 안돼요
피란텔 등 대다수 심장사상충 및 장내기생충 약은 고유의 매우 쓴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루로 으깨 음식과 함께 먹이거나 반으로 쪼개 먼저 먹이고 3~4시간 뒤에 나머지를 복용토록 한다. 심장사상충약과 장내구충제를 동시에 복용하면 너무 써서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심장사상충 예방약은 도포하는 스폿온(spot-on) 제제, 주사제, 고기향이 나는 츄어블 정제 등이 나오고 있다.
많은 동물용의약품이 인체용의약품에 뿌리를 둬 상당 수가 용량을 줄여 동물에게 투여해도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쓰는 약을 동물에게 직접 적용하면 더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같은 성분을 쓰더라도 용량, 첨가제 등이 다르면 전혀 다른 약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성분이 같으나 복용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소염제의 일종은 멜록시캄(meloxicam)의 경우 사람은 보통 정제로 복용하고, 개는 액상 형태의 약을 사료에 적셔서 복용한다. 동물약에는 인체용의약품에는 허가되지 않은 감미제가 첨가되기도 하므로 상호 호환은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