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이후 지속된 유효성 논란에도 심평원 방관 … 국회·정부는 ‘뒷북’, 제약사는 ‘총력방어’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제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효능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보건당국이 조급한 뒷북 행정에 나서 제약업계를 당황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유효성과 관련한 조치 필요성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공문을 각 제약사에 지난 5일 발송했다. 오는 11일까지 허가사항의 효능·효과별 유효성 입증 자료, 국내외 사용현황, 품목허가사항 변경에 대한 의견과 필요시 허가사항 변경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종합의견 및 향후 계획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제제에 대한 허가사항 변경 등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특별한 사유 없이 기한 내에 해당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종합 검토 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며 “이미 제약사가 인지하고 있던 내용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효성 재평가 실시를 국감에서 약속한 만큼 자료 준비기간은 1주일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재촉했다. 공문 수령일을 포함해서 7일밖에 되지 않는 기간에 해당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제약사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7일 복지부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재평가 방침을 결정만 했을 뿐인데 일사천리로 재평가를 밀어붙이고 있다.
콜린알포세레이트(L-Alpha glycerylphosphorylcholine, alpha-GPC)는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Italfarmaco)에서 개발해 1989년 출시한 뇌기능 개선제다. 이 성분은 뇌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콜린 복합물로 알려져 있다. 혈관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뇌 내에서 콜린과 인산글리세릴탈수소효소(Glycerol-3-phosphate dehydrogenase, GPDH)로 분리된다.
콜린은 기억·학습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ACh)의 앞 단계의 물질로 뇌기능 장애 환자에 부족한 아세틸콜린을 보강해준다. 손상된 뇌세포에 직접 작용해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시킨다. 연구 결과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에 아세틸콜린의 전구물질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PDH는 탄수화물과 지질의 대사에서 매개고리로 작용하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전자수송계의 주요 기여자로 역할한다. NADH-H+가 수소 2개를 잃고 NAD+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디하이드록시아세톤인산(dihydroxyacetone phosphate)을 글리세롤3인산(glycerol 3-phosphate)으로 전환하는데 글리세롤3인산은 뇌내 미토콘드리아 내막으로 들어간다. 글리세롤3인산에 아세틸기가 붙은 아실화 과정을 거치며 아세틸콜린을 유도하는 단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치매 환자는 콜린·아세틸콜린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복용하면 증상 개선이 유도된다고 제약사들은 홍보해왔다. 하지만 출시 이후 전반적인 뇌기능 개선제의 유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지난 8월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재평가를 미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치하고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유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건약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적응증이 모호하고 광범해 건보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국내에서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감정 및 행동변화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 3개 적응증을 인정받았고 모두 보험급여를 적용받는다.
건약은 3개 적응증 중 감정·행동변화와 노인성 가성우울증은 특정 질환에 의한 증세가 아닌 일반 노약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주장한다. 심평원이 이 적응증에 급여를 인정한 근거 자료를 찾아볼 수 없거나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건약 측은 “복지부는 2011년부터 ‘종근당 글리아티린 연질캡슐·정’(오리지널, 대웅제약의 판권을 종근당이 가져 감)이 임상적 유용성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심평원에 검토를 요청했으나, 심평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효능·효과를 근거로 삼았다는 이유로 11년간 손을 놓고 있었다”며 “그나마 내놓은 자료는 국내에서 허가받은 효과를 증명하는 자료가 아닌데도 127개 제약사가 238개의 제네릭을 찍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약 관계자는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없는 적응증에 약제가 무작위로 처방·청구되고 있다”며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급여 타당성을 처음부터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사례와 약효 경제성 평가에 착수해 불필요한 급여인정폭을 축소해야 한다”며 “적응증을 받았더라도 급여항목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심평원이 급여 효용성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등 효과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은 의약품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며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효능에 대해 재평가를 실시하고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됐으며 일본은 1999년부터 재평가를 시행해 효과가 없는 제품을 퇴출시켰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지능력 개선’ 등을 언급하며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것처럼 광고한 제약사에 제재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A 교수는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국가에서 아직 전문의약품으로 처방되고 있다”며 “미국과 같이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되면 오남용 또는 치료시기를 놓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해외에서 건기식으로 등록됐다고 국내서 허가사항을 변경하기는 어렵다”며 “오메가3지방산의 경우 고용량은 전문의약품, 저용량은 건기식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향후 용량별로 전문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2가지 허가사항으로 나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처방받는 환자 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어 건보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게 이번 재평가 이슈가 떠오른 가장 큰 이유다. 갑작스런 재평가 이슈도 포퓰리즘 정책 남발에 갈수록 악화되는 건보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한 조처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명연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심평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처방받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는 2014년~2018년 기준 총 151만5000여건이다. 환자 수 대비 처방 환자는 2014년 24만7000여명 중 4만명(16%)에서 2018년 40만9000여명 중 10만8000여명(26.3%)으로 급증했다. 전체 환자 4명 중 1명이 복용하는 대형 시장이다. 급여비가 증가할수록 약제 효과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시장 규모는 약 2700억원으로 추정된다. 각 제조사는 급여 재평가 여부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이 제제는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정’과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정’ 등 두 제품이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매출액은 각각 650억원, 530억원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 유한양행 ‘알포아티린정’과 프라임제약 ‘그리아정’, 대원제약 ‘알포콜린정’, 제일약품 ‘글리틴정’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또는 전체 적응증에 대해 급여 삭제 조치가 내려지면 정부와 제약사의 법적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복지부는 11월까지 재평가 제품 목록을 작성해 내년 6월 평가를 끝낸다는 계획을 밝혔다. 3가지 적응증에 대한 급여 적정성 평가 방향을 설정해 심평원이 평가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외에도 모든 급여약에 대해 국내외 허가 및 급여 현황, 문헌 검토, 제약사 의견조회 등 절차를 거쳐 급여범위를 조정할 것”이라며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급여를 근거없이 삭제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제약사가 유효성 등 입증 가능한 데이터를 제출하면 그에 상응하는 급여가 책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수년간 미뤄온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유효성 재평가가 도마 위에 올라온 만큼 결국 이번 사태는 빠듯한 건보 재정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국회 차원의 조치가 취해진 탓에 보건당국은 재평가 일정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기 위해 제약사를 옥죄고 있다. 갑작스런 조치에 각 제약사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사이 ‘무철학’ 약가 급여 행정의 종지부는 비용 대비 효과성이 떨어지는 약의 급여 혜택을 줄이고 현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선심성’ 급여 지원 항목으로 옮아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