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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직장 괴롭힘 금지법’ 시행 한달 … 의료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08-19 01:01:56
  • 수정 2020-09-22 15: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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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협·대학병원 직원교육·캠페인 전개, 체감효과 미미 … 내부고발 배척 여전, ‘갑’ 인식 변화가 우선
의료계 관계자들은 고용노동부가 규정한 괴롭힘 행위 중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분이 너무 추상적이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직장에서의 폭언·성희롱·괴롭힘 등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가운데 일선 병·의원도 임직원 교육, 고충상담 전문부서 설립, 캠패인 전개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수직적 도제식 조직문화가 고착화된 의료계에선 새 개정안이 유명무실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고질적인 병폐인 교수의 전공의 폭언·폭행, 간호사 ‘태움(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은어)’ 등을 개선하려면 의료기관에서 ‘갑’ 위치에 있는 의사와 경영진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의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발생 시 조치 관련 사항을 정해 취업규칙에 필수적으로 기재하고, 사업장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작성·변경한 취업규칙을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을 신고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업규칙에는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고충상담 △사건처리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 제재 △재발방지대책 등을 명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로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함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병가·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 행사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함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함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함 △다른 사람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함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함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컴퓨터·전화 등)을 주지 않음 △인터넷·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함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생명과 직결되는 업무 특성상 항상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엄격한 위계질서,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갖게 된다. 이로 인해 다른 사업장보다 폭행·폭언이 더 빈번하게 이뤄졌고, 개인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올해 초 보건의료노동자 3만64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9.2%가 폭언, 13%가 폭행, 11.8%가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전임의(펠로우, 전문의 획득 후 수련 중인 의사, 임상강사로도 불림), 전공의(전문의 과정 중인 레지던트), 수련의(인턴 과정의 의대생)·간호사 순으로 내려오는 의료계 권력의 피라미드 속에서 한 번 찍히면 이직이 쉽지 않아 내부고발도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던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유독 의료계에서만 잠잠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고무적인 점은 이번 ‘직장 내 괴롭힘 금지’의 경우 ‘미투’와 달리 일선 병·의원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병원계는 개정안 시행 수 개월 전부터 대응책을 마련해왔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6월부터 간호인력취업지원추진단과 협력해 의료기관 내 인권침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육은 지난 6월 19일 경희의료원을 시작으로 오는 9월 27일 아산충무병원까지 약 3개월간 전국 2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엔 ‘의료기관 내 인권침해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발간·배포해 병원에서 활용하도록 안내하기도 했다.
 
한림대 성심병원은 지난 7월 8일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 캠페인’ 선포식을 가졌다. 캠페인은 직장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을 위한 10가지 수칙을 제정해 모니터 배경화면 ·화면보호기 반영, 외래 및 병동 유인물 배부, 어깨띠 착용 등을 통해 실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방교육을 통해 조직문화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매월 부서 선임직원과 노동조합원이 공동 라운딩에 나서기로 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지난 7월 15일부터 4일간 고용노동부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과 함께 ‘더(THE) 존중 캠페인’을 개최했다. 병원 측은 향후 △안녕하세요 모닝(Morning) 치어업 △협력업체 칭찬박스 전달 △심리치유 특강, 당신이 옳다(정혜신 박사) △사과데이 등 행사를 요일별로 진행했다.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정착시킨다는 각오다.
 
인제대 백병원은 전국 5개 백병원에 고충상담원 15명을 선발해 배치하고, ‘직장 내 상호존중 문화 확산 포스터 공모전’ 수상 작품을 원내에 게시해 ‘의료현장 폭력 예방 및 상호존중 캠페인’에 활용키로 했다
건국대병원과 충북대병원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예방교육과 임직원 선언문 채택 및 선포 등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괴롭힘의 주요 대상이었던 전공의와 간호사들은 대부분 새 개정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2년차 전공의는 “부당한 대우를 당했더라도 수련 기간에 계속 마주쳐야 할 담당 교수에게 찍히는 것을 감수하고 신고할 전공의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1년에 한두 번씩 수련병원에서 불거지는 지도교수의 폭언·폭행 사건도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폭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A 대학병원에서 3년째 근무 중인 한 간호사는 “아무리 규정을 만들고 교육해도 의사나 병원 경영진 등 소위 ‘갑’들의 인식이 그대로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새 개정안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귀찮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히려 신고자를 조직문화를 해치는 ‘원흉’으로 몰아 배척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지난 7월 5일 서울대병원에선 새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이뤄진 전직원 교육에서 강사로 초빙된 노무사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조직 내 부적응자·저성과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고 발언해 참석자들이 강력히 항의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괴롭힘을 규정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K 대학병원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 중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분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너무 추상적이라 실제 업무현장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업무 대부분이 루틴대로 돌아가는 다른 사업장과 달리 병·의원은 응급환자 발생, 감염병 유행 등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해 노동자가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동료나 후배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화풀이하는 경우가 잦다”며 “경영진의 인식 변화와 함께 인력부족 등 의료계 구조적인 문제 개선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사문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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