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의료취약지로 꼽혔던 서울시 은평구에 대학병원급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이 들어서면서 서울 서북부 의료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진관동 구파발역 옆에 위치한 새 병원은 808병상 규모로 지난 5월 개원 이후 1주일 만에 외래환자 1500명, 한 달 만에 2000명을 돌파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새 병원으로 은평, 마포, 서대문, 고양시 일산 등 지역 환자가 빠르게 유입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주변 경쟁병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대체로 지역 경제의료 활성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반면 새 병원과 건강검진 등 포지션이 다소 겹치는 2차 병원이나 내과 병·의원은 시름이 깊어진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은평구는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돼왔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도 평균 이하에 그쳤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중증·난치성질환 환자는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이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까지 가야 했지만 교통량이 많고 도로가 막혀 40~50분이 소요됐다. 이로 인해 아예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적은 경기도 방면의 명지병원이나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가 적잖았다.
은평성모병원 개원 전 은평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병원은 청구성심병원이었다. 1977년 설립 후 현재 201병상, 중환자실 10병상, 준중환자실 11병상 등으로 은평구의 거점병원 역할을 해왔지만 다른 지역보다 주거인구가 많은 터라 의료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불과 한 개역 옆에 대형 대학병원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까지 사라져 병원 경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보인다.
은평구 Y 정형외과 원장은 “은평성모병원은 아직 2차병원(종합병원)이어서 에 3차병원(상급종합병원)과 달리 진료의뢰서 없이 바로 진료받을 수 있어 환자 선호도가 높다”며 “이로 인해 같은 2차병원으로서 포지션이 겹치는 청구성심병원의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구성심병원 관계자는 “은평성모병원 개원 이후 환자 변동 관련 통계를 내진 않았으며 딱히 체감되는 변화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의원급에선 건강검진이 의료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내과 전문의들의 고민이 크다. 응암역 인근 내과병원 S 원장은 “새 병원이 검진 파트를 강화한다고 들었는데,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건강검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결국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두고 개원가 경쟁만 치열해지는 형국”이라고 우려했다.
지역 중소병원들이 대형병원 간 경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L 원장은 “북서쪽엔 명지병원과 동국대 일산병원, 남동쪽엔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자리잡고 있다”며 “파이를 더 많이 가져가려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은평성모병원 개원 이후 내원 환자 감소나 수술 건수 감소 등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명지병원 관계자는 “1·2차급 의료기관은 몰라도 대학병원급에선 새 병원이 생겼다고 해서 내원 환자가 당장 병원과 담당교수를 바꾸는 일이 별로 없어 통계상 외래환자 수는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어떤 영역을 특화 발전시키고, 신규 환자를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장기적인 병원 운영에서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Y 정형외과 원장은 “큰 병원이 들어오면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주변 상권이 발전해 장기적으로는 병·의원을 운영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학병원은 중증질환 치료와 학술연구, 개원가는 경증·급성기질환 치료라는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큰 문제 없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은평성모병원 관계자는 “새 병원 건립을 두고 지역 의료계의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인근 개원 병·의원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등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내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이 없어 많은 불편함을 겪어왔던 은평구 주민들은 새 병원 건립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은평구 진관동에 거주 중인 강모 씨(56·여)는 “5년 전 당뇨병성 신장병을 진단받은 뒤 한달에 3번씩 경기도 일산에 있는 대학병원을 방문하고 있다”며 “서울 지역은 교통이 복잡하고 차도 자주 막혀 차라리 경기도 쪽 병원을 선택한 것인데 구(區)내에 큰 병원이 생겨 한결 수월하게 진료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