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노령인구 및 중산층 증가로 반려동물 시장이 확대되고 아프리카·아시아의 식습관 서구화에 따른 육류·유제품 소비 증가로 동물의약품 산업이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으로 평가되면서 국내외 제약사가 연구개발(R&D)에 뛰어들어 시장 선점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동물약품협회 자료에 따르면 세계 동물용의약품 시장은 2009년 186억달러(약 20조원)에서 연평균 5.7% 지속성장해 2016년 300억달러(약 33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트랜스페어런시 마켓리서치(TMR)는 다양한 동물약 수요가 늘어나 전체 동물용의약품 시장이 2024년 502억달러(약 55조원)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세계 동물용 백신 시장은 선진국은 반려동물용, 개발도상국은 산업동물용으로 구분되는 양상이다. 반려동물용 의약품은 감염질환을 기반으로 아토피성피부염, 체중감량, 알레르기 등으로 치료 포트폴리오가 확장되면서 사람과 비슷한 의료서비스 형태로 발전하는 중이어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산업동물용 백신시장은 신흥 개발도상국이 모여있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동물의약품 매출액은 급격히 증가, 2014년까지 최근 6년간 연평균 13.64% 성장했고 이후 5년간 매년 9.3%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료첨가제를 제외한 국내 동물용의약품 시장은 2010년 5445억원에서 2011년 국내생산 3615억원, 수입완제 2185억원 등 총 5800억원으로 성장했고 2015년엔 6540억원으로 연평균 3.7%씩 성장했다. 2016년 기준 국내 시장규모는 6988억원으로 세계시장에서 2.1%를 차지하며 수출비율은 0.8%에 불과해 내수보다 수출에 의한 성장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동물약품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내수 평균 성장률은 38%, 수출은 185% 성장을 기록했다. 주요 수출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러시아 등으로 아직은 일부 개발도상국에 편중됐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품목이 원료 등 경쟁이 심하고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제품에 집중됐다”며 “생물학제제 및 의료기기 등 연구개발(R&D)로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해외시장 확대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동물용의약품 시장에서 주요 특허권자는 메리알(Merial), 와이어스(Wyeth),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화이자(Pfizer)등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동물 및 어류용 백신, 육종을 위한 돌연변이(mutant), 백신이나 항생제의 효과를 올리기 위한 보조제(adjuvant) 등에 대한 출원이 활발하다. 주로 소·돼지 등의 가축이나, 조류(닭 등 가금류)에 특허가 집중돼 있다. 최근 반려동물 관련 특허출원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중국이 특허출원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특허 출원과 함께 새로운 기술혁신 노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조에티스(Zoetis)는 영국에 디지털 혁신 허브를 설립하고 웨어러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센서 및 위성기술과 같이 동물의약품에 첨단 진단기술을 접목하는 다양한 디지털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100개국 이상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1위 동물 헬스케어 전문기업으로 2013년 화이자 동물건강사업부에서 분사했다. 이미 가축 및 반려동물에 적용되는 백신·항감염제·항기생충제 등 300개 이상의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머크(MSD)는 지난해 12월 동물의약품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1억유로(약 2조6893억원)를 투자해 안텔릭 그룹(Antelliq)을 인수했다. 안텔릭은 가축용 디지털 식별(digital identification) 제품을 만드는 프랑스계 비상장기업이다. 수의사와 농업 종사자는 물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디지털식별, 추적, 모니터링과 같은 솔루션을 제공한다. 디지털 식별 기술은 동물의 건강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질병을 예측한다.
머크 측은 “축산업 분야에서 단백질 의약품(인체에 쓰는 바이오의약품과 유사), 식품 추적, 식품 안전성 등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디지털 기술 활용범위가 한층 넓어져 안텔릭 인수는 질병예측 및 치료기술 최적화에 유용할 것”이라며 “인수를 계기로 동물건강사업 부문의 고객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사도 속속 동물약 시장진출에 나서고 있다. 대웅제약은 해외지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동물약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지난 12월 특허청에 ‘하트리트’(HEARTREAT)로 상표를 출원하고 이른 시일 내에 제품을 출시할 방침이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8개국에 지사가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심장사상충약, 구충제, 영양제 등 동물약을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시장상황이 좋지 않고 다국적 제약사가 이미 시장을 선점해 출시를 미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대웅 측이 해외에서 먼저 동물약을 출시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해 국내시장 규모가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제품 경쟁력을 갖추고 국내사가 가진 마케팅 역량 등 장점을 활용하면 해볼만 하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러시아 등에선 국산 동물약이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지난 5월 동물의약품 개발 전문 바이오기업 우진비앤지와 동물용 신약개발 제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진통소염제, 항생제, 항암제 등 이미 인체 투약을 통해 약효 및 안전성이 확인된 다수의 혁신 신약상품 및 후보를 발굴해 국내 및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경보제약도 지난달 26일 충남 아산공장에서 신약개발 전문기업인 아이바이오코리아와 동물용 신약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동물용 안구건조증 치료제를 시작으로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신장질환 치료제를 개발해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출시한다. 관절염, 알레르기 등 염증성질환 치료제로도 파이프라인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도 기업의 움직임에 발맞춰 글로벌 협력 강화에 나섰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한·중 동물용의약품 품질향상 및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수의약품감찰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중 검역당국은 동물용의약품의 관리제도·평가·검정·검사기법 등에 대한 정보교류 및 공동연구, 신약 및 생약제제 평가 기술교류 등 6개 분야에 대해 기술교류를 진행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국 검역기관간 정보 기술교류는 세계 동물용의약품시장(약34조) 중 약 23%를 차지하는 중국 거대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동물약 수요 증가로 국내 제약사의 해외시장 진출 노력이 시작됐다. 이에 다국적 제약사가 점령한 국내 동물약 시장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반려동물용 의약품과 해외 산업동물용 의약품 수요 증가에 발맞춰 정부의 정책 지원과 국내 기업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