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영유아 대상 BCG백신 접종과 관련해 언론이 과도한 공포 조장 보도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며 지금껏 BCG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당시 일본산 ‘경피용건조 BCG백신’에 함께 사용되는 생리식염수에서 발암물질인 비소가 기준을 초과해 검출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즉시 해당 백신 제품을 회수하도록 조치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BCG 백신 접종을 받았거나 받으려고 했던 아이를 둔 보호자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비소가 가진 위험성을 강조하며 ‘독극물’, ‘사약 성분’, ‘농약·제초제 원료’ 등과 같이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는 단어를 썼다. 또는 접종대상 어린이를 ‘마루타’와 같은 언어로 자극하기도 했다. 일본과 관련해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문구도 등장했다. ‘애 낳으라고 할 땐 언제고’와 같이 사회 이슈로 과대 해석하려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경피용 BCG백신은 결핵을 예방하는 약독화 생백신으로 영유아기에 접종하기 때문에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선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극도로 불안감을 느낀 부모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몰려가 백신의 안전성을 밝혀달라며 수많은 글을 올리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선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선 쏟아지는 전화 문의에 응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비소가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우려할 부분이 있다. 여기에 대중이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식약처의 반응이나 언론의 보도가 즉각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이 사태는 올들어 겨우 진정되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당시 언론의 보도처럼 실제 BCG백신의 위험성이 컸는지 따져보면 전문가는 보도가 과장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접종하고 있는 BCG백신은 피내용과 경피용으로 나뉜다. 피내용은 일반 주사제형을 뜻하고 경피용은 피부에 주사액을 도포한 뒤 9개의 바늘로 이뤄진 도구로 도포 부위를 눌러 백신을 주입하는 형태로 접종한다. 피내용은 국가에서 정식으로 채택한 제형으로 무료접종이 가능하지만 경피용은 비급여로 8만원 전후의 비용이 소요된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경피용 백신으로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피내용 백신은 전량 덴마크·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국내 유통사정을 고려해 경피용 백신도 무료접종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는데 이 때 접종받은 영유아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수조치가 내려진 총 14만2125팩 중 12만여개가 이미 접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피용 백신은 백신액, 생리식염수가 들어있는 유리 앰플, 주사바늘이 세트로 구성된다. 비소가 검출된 것은 백신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리식염수가 들어있는 앰플에서다. 앰플을 제작할 때 비소산화물이 들어가는데 가공 과정에서 가해진 고열로 비소 성분이 분리돼 생리식염수에 극미량 녹아나오게 돼 있다.
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가이드라인 ‘Q3D 금속불순물’ 기준은 1일 최대 비소 주입 허용량을 1.5㎍으로 제한하고 있다. 식약처가 회수 조치한 제품에서 검출된 비소 함량은 최대 0.039㎍ 수준으로 기준치에 크게 못미친다.
백신 공급업체 관계자는 “경피용 백신은 백신액을 1~2방울 떨어뜨려 바른 뒤 도구를 이용해 흡수되게 한다”며 “2방울 모두 체내에 들어가도 함유된 비소량은 약 0.016㎍으로 실제 바늘을 통해 몸안으로 유입되는 백신액은 그보다 훨씬 미량이기 때문에 0.016㎍ 보다 더 적은 양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비소는 체내에서 72시간 안에 소변으로 배출된다”며 “무기 비소로 인한 이상증상인 구토나 설사 증상이 1개월 간 없으면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은 평생 1회 접종하는 백신 특성과 검출량이 기준치에 크게 못미치는 점을 들어 “이미 유통된 제품은 회수하지 않고 새 제품이 공급되지 않도록 출하정지 조치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백신 제조사인 일본BCG도 비소 성분이 사용되지 않은 병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경피용 백신은 흉터를 적게 남기고 덜 아픈 장점이 있어 영유아를 둔 부모가 피내용 백신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피내용 백신이 비용 대비 효과성이 좋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접종 및 관리가 편리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건의료계는 지난해 비소 사태로 BCG 백신 접종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발생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결핵 후진국으로 분류됐다. 한국인에서 발병이 많은 이유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예방이 최선의 방법임은 명확하다. 인구감소에 따른 다문화 사회 전환과 고령화로 인한 질병 증가 등을 고려할 때 백신 접종은 필수다.
하지만 이같은 혼란스런 상황을 조장한 백신 수입업체는 추한 상혼을 드러냈다. 한국백신은 독점 수입하는 값비싼 경피용 백신을 국고로 지원받고자 수급을 조절하는 비윤리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피내용 백신을 대신할 대체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여오는 경피용 백신 물량을 늘리기 위해 일본 제조사에 의도적으로 피내용 백신 주문량을 줄여온 게 들통났다. 국내에 높은 결핵 예방접종 수요로 피내용 백신이 달리는 취약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결국 언론이 명확한 사실보도보다 불안과 공포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데 무게를 둔 탓에 의료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의약품 안전 문제가 제기된 부분에 대해 신속히 공개하고 대응하는 게 규제기관의 역할이지만 성급한 대응은 오히려 안심보다는 불안과 공포의 확대 재생산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보건당국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불안감이 증폭됐고 여기에 일부 언론의 과장된 보도로 문제를 확대시킨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어떤 문제점에 대해 공개하기 전에 충분한 사후 시나리오 등을 고민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최근 발생하는 보건 이슈를 보면 일단 발표해놓고 수습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같은 행태가 반복되면 보건당국과 언론 모두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