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내법 제정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제약바이오기업의 관심과 대응방안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나고야의정서는 동·식물, 미생물 등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공유토록 하는 국제협약이다.
1992년 이전엔 생물유전자원을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해 누구나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공동자산임에도 선진국이 이 자원으로 얻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어져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이 마련됐다. 이 협약은 생물유전자원의 사전접근 승인 및 이용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공정한 공유를 명시했다.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제6차 당사국 총회에선 그동안 논의된 절차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고 자발적인 지침에 그쳐 국제적인 규범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복해서 나오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대립구도가 지속됐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강제성을 가진 규범을 만들기 위해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제10차 당사국 총회에서 192개 국가 대표와 관련 국제기구 및 민간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됐다.
이 의정서는 2014년 10월 발효돼 중국, 인도 등 개도국과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117개국이 비준했다. 2017년 1월 국내 이행을 위한 법률로 ‘유전자원의 접근·이용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유전자원법)’이 제정됐으며 같은 해 8월부터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경우에 해외 당사국이 정한 법적 승인절차를 준수한 신고서를 국내 관련기관(점검기관)에 9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이에 국내에서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활용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연구개발(R&D), 제품화 등 과정에서 이익의 일부를 자원 제공국에 반환할 의무를 가지게 됐다. 또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선 제공국이 제정한 법적 절차에 따라 사전통고승인(PIC)을 받고 제공자와 로열티·기술이전·연구 등 관련 상호합의조건(MAT)을 협의해야 한다. 제공국의 ‘ABS(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이익공유)’ 관련 법규도 준수해야 한다. 이같은 절차가 추가로 관련 기업은 해외 생물유전자원의 실질적 원산지와 관련 국가의 법률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해외생물자원을 이용하는 국내 기업이 자원제공국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는 연간 최소 약 1417억원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는 의약품이 108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화장품 214억원, 바이오화학 및 기타 72억원, 건강기능식품 48억원 순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품 총 매출에서 로열티를 2.8%로 적용했을 때 추산치다. 의정서 비준국은 보통 1~3% 범위에서 로열티 비율을 정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중국의 로열티 책정에 따라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의 자원 원산지를 조사한 결과 약 51.4%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지리적 접근성 등으로 천연물 등 한의학, 한약제제 관련 자원 공유가 많다. 중국은 최대 10%의 로열티를 받겠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확정했으나 주변국과 관계 등을 고려해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당초 계획의 절반인 5% 수준으로 로열티 비율을 확정해도 국내 기업의 부담은 최소 두 배 가량 높아질 것으로 보여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에 이어 자원 의존율이 높은 국가는 유럽 43.2%, 미국 31.1% 등으로 이들과 교류해 발생하는 로열티도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 구미 업체는 로열티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동연구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 중이어서 특허권 행사에 따라 발생하는 로열티가 예상치를 훨씬 웃돌 수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서는 분류체계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응태세가 미흡하다”며 “자원 의존도가 높은 중국 등이 높은 로열티를 요구하거나 관련 소송을 제기하면 일반 국내 업체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주먹구구식 대응에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등 5개 부처를 주축으로 대한변리사회와 함께 특허·지식재산권 관련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유전자원 이익공유(ABS) 법률지원단’을 발족하고 관련 기업 지원에 나섰다. 자원 제공국마다 법과 절차가 다르고 허가대상의 이용 목적 등에 따라 이익공유 비율·방식이 달라 기업이 이를 모두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내 제약사가 A성분을 활용한 제품 연구를 위해 B국가에서 원료를 수입했으나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이 원료 원산국이 C국가라면 A기업은 C국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용 목적에 따라 이익 배분 정도가 달라지는 구조다.
관련 법적 분쟁도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와 중국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로슈가 중국 내 자생식물인 ‘팔각회향’의 시킴산(shikimic acid) 성분을 화학적으로 개조해 조류인플루엔자(AI) 의약품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어 Oseltamivir)’를 개발했다며 이 내용을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슈는 이 성분을 직접 이용한 게 아니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등은 이같은 상황에 대비하고자 일찍이 나고야의정서 담당 부서를 만들고 의정서 적용 여부, 법적 해석, 원료 구매 등을 통합 검토하는 등 적극적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중국 등 유전자원 출처 공개를 의무화하는 국가는 아예 피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다. 윤주병 동화약품 수석연구원은 “쥐꼬리망초처럼 국내 자원을 사용하면 출처를 상세히 공개하지만 해외 자원을 사용하면 출처를 공개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국가별로 특허법이 달라 애초에 특허를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 관련 업계는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인식을 시작하고 자원 원산지와 해당 국가의 법률을 확인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전략적인 접근 측면에서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해당 국가의 법률이 없어 의정서가 적용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 불필요한 법률 검토를 하는 비효율이 빚어지고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의정서를 우려한 나머지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유전자원의 출처 공개가 특허 출원 요건으로 포함되면 해외에서 특허 출원이 지연되고 심사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는 부담도 커질 전망이지만 국내 업체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같은 로열티 및 법적 분쟁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국산 원료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이 나고야의정서에 대응하고자 작성하고 있는 국가생물종목록엔 2017년 4만9027종의 생물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소요되는 원료는 대체로 대량생산이 요구되기 때문에 설령 대체할 수 있는 원료를 찾아도 결국 중국 등에서 대체제를 들여오는 게 일반적이어서 한계가 있다.
결국 생물유전자원 빈국(貧國)인 한국은 국내 자원을 활용한 관련 제품 개발과 로열티 및 법적 위험성 최소화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기업이 아무런 대비없이 관련 법을 제정해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된 2017년과는 달리 정부도 부랴부랴 피해 최소화를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각 기업에서도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소한의 대응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협약을 단순히 국가 간 약속이 아닌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려는 글로벌 시장은 유혈이 낭자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제 걸음마를 뗀 정부와 관련 업계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전략적 대응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야 한다.
이수정 특허청 사무관은 “나고야의정서만으로는 유전자원 이용국이 자진신고하지 않는 한 제품의 상용화 여부, 이익 발생 여부를 알기 어려워 강제 이행효과가 있는 ‘특허법’으로 로열티를 추징할 가능성이 있다”며 “체계가 확립된 뒤 데이터베이스(DB)화 되는 특허법 규율을 적용받으면 이제 초창기인 나고야의정서만 있을 때보다 더 광범위한 후폭풍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