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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조현병 강력범죄에 힘 실리는 ‘사법입원제’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05-12 23:47:34
  • 수정 2020-09-25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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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보호·행정·응급입원 허점 투성, 제2의 안인득 우려 … 법원이 동의 없이 강제입원 결정
조현병 환자의 행정·응급입원은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데, 환자가 거부하면 진단 자체를 받을 수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진주 방화·살인사건을 저지른 안인득 씨.
진주 방화·살인사건, 창원 아파트 살인사건, 부산 친누나 살인사건 등 정신질환 환자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신청 범위를 확대한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는 방법엔 보호입원·행정입원·응급입원이 있다. 보호입원을 위해서는 보호의무자 두 명의 신청과 정신건강 전문의 두 명의 진단이 필요하다.
 
행정입원은 스스로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직접 발견한 사람이나 경찰을 통해 인계받은 전문의가 신청하고, 시장·군수·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승인하면 2주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행정입원이 지속되려면 전문의 두 명의 진단이 필요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을 지낼 당시 친형 이재선씨를 강제입원시켰다고 논란을 일으킨 게 행정입원에 해당한다.
 
응급입원은 입원 절차를 거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전문의와 경찰 각 한 명이 동의하면 환자를 3일간 입원시킨다. 응급입원 이후 보호입원이나 행정입원 절차를 거쳐 입원을 지속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제도는 허점이 많았다. 진주 방화·살인사건 피의자인 안인득은 지난해 9월 이후 3차례 폭행 등 범죄를 저질렀지만 강제입원되지 않았다. 전문의 진단을 거부하면서도 경찰조사에서는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행정·응급입원을 피했다.
 
수차례 아파트 이웃주민과 갈등을 빚어 경찰이 출동하자 안인득의 친형은 수차례 안인득을 보호입원시키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현행법상 보호의무자는 직계혈족과 배우자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보호입원과 마찬가지로 행정·응급입원을 위해서는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데, 환자가 거부하면 진단 자체를 받을 수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행정·응급입원의 경우 전문의, 경찰, 지자체장 등 제3자가 강제입원을 결정해야 하고 자칫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부담감 탓에 실제 이뤄지는 사례는 드물다.
 
이에 의료계는 보호의무자 규정의 폐지와 사법입원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사법입원제는 법원이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강제입원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가족에게 떠맡겼던 정신질환 환자 관리의 책임을 국가 사법체계가 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독일이 판사가 환자를 직접 보고 강제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강제입원의 요건이 갖춰졌는지를 법원이 심사하고, 환자를 직접 심문한 뒤 영장을 발부해 치료시설로 보낸다. 독일 법원은 강제입원 전에 환자의 항변도 직접 듣고 추후에 계속 입원시킬지도 결정한다.
 
이승환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 정신의료계의 실정은 환자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며 “환자가 장기간 입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적인 절차로 인해 많은 조현병 환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로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사법입원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도 적잖다. 현재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 등의 강제절차가 이미 있는데다 자칫 환자의 인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조현병 환자 대부분은 약물치료와 외래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없는데도 모든 흉악범죄의 원흉인 것처럼 손가락질 받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지원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입원제 등 강제입원만을 논의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조현병 환자와 일반인의 강력범죄율이 비슷한 데도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가 무분별한 적대감을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건강한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도 술에 취하면 살인이나 폭행 등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런 사건은 별로 뉴스거리가 안 된다”며 “반면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방송이나 신문 톱뉴스에 실리는 등 큰 이슈가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승환 교수는 “조현병은 질병 상태에 따라 공격성이 크게 차이나므로 ‘매우 공격적인가?’, ‘범죄율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며 “분명한 것은 대다수 조현병 환자는 매우 순종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공격성을 관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관리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약물 순응도가 감소하면 공격성이 강해지거나, 감정적인 동요가 심해지거나, 불안감이 증폭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며 “즉 조현병 자체가 아닌 제대로 된 환자관리시스템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은 말, 행동, 감정, 인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병적 상태다. 전세계 인구의 약 1%가 조현병을 겪고 있다.
 
주요 발병연령은 남성은 15~25세, 여성은 25~35세로 여성은 남성보다 약 10년 정도 늦게 나타난다. 질병 예후는 여자가 남자보다 나은 편이다.
발병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학적 유전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환경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현병은 환자마다 다른 증상을 보인다. 환청, 망상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환자 가족이나 이웃들은 자신이 경험한 환자의 증상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기 쉽다.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는 망상에 대한 반응이나 환청의 지시에 따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을 보이지만 살인 등 극단적인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며 “범죄를 벌이려면 계획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한데, 조현병 환자는 이에 필요한 계획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환청은 조현병 환자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증상이다. 주변에 아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말소리는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드물지만 환시, 환미, 환촉, 환취 등도 나타난다.
망상은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과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임에도 이성적인 설득으로 고쳐지지 않는 ‘병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강력범죄 위험이 없는 조현병 환자라도 장기간 방치되면 정신병적 증세가 악화돼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아진다”며 “국내 정신보건 의료시스템을 신속히 정비하지 않으면 관리받지 못한 조현병 환자의 사고 뒷수습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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