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건강식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니’로 가공한 일부 제품에서 기준치의 최대 50배가 넘는 쇳가루가 검출돼 소비자를 공포에 떨게 했다. 적발된 제품은 모두 분말·환 제품으로 기준치인 ㎏ 당 10.0㎎을 최소 6배, 최대 56배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적발된 제품 수도 27개 제품 중 9개나 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온라인 등에서 유통되는 모든 ‘노니 분말·환 제품’을 수거해 검사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시민이 식약처에 요청한 국민청원 67건 중 하나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청원 내용은 “노니 분말 제품이 많이 시판되고 있는데 먹어도 안전한지,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그동안 먹었던 제품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다”는 게 주된 골자다.
노니 분말·환 제품에서 쇳가루가 검출된 원인으로는 분쇄기계의 부산물이 지목됐다. 노니를 분쇄하는 방식은 크게 롤러분쇄 방식과 기류분쇄 방식으로 나뉜다. 롤러분쇄 방식은 쇠로 만들어진 톱니바퀴 모양의 롤러 사이에 노니 열매를 넣어 가루를 낸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식으로 롤러끼리 맞물리면서 쇠가 마모되면 쇳가루가 혼입될 수 있다. 기류분쇄 방식은 노니 열매를 여러개 통 안에 넣고 바람을 불어넣어 서로 부딪히게 하는 방식이다. 바람을 주입하면 열매끼리 반복해서 부딪히는 과정을 반복해 분말이 된다.
주로 문제가 되는 방식은 롤러분쇄다. 장비가 노후화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부품을 사용했을 때 롤러간 마찰로 마모가 일어나 쇳가루가 혼입된다. 이를 걸러내는 대형자석이 구비된 설비는 99.9% 쇳가루를 걸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석이 없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을 보유한 공장에선 쇳가루 등 이물질을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설비에서 바로 상품포장 과정을 거치면 소비자가 쇳가루 노니를 먹게 된다. 보건당국은 이같은 내용을 파악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류분쇄장비 가격이 롤러분쇄장비보다 비싸 롤러분쇄로 분말을 제조하는 업체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 이야기다.
쇳가루와 세균검출 외에 노니 판매업자가 내세우는 항암·항염 등 효과에 대한 과도한 홍보 경쟁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시중에선 노니가 ‘천연항암제’로 입소문이 나 분말, 차, 주스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노니가 열매 상태로 발휘하는 성분과 효능은 다양한 연구로 밝혀져 있다. 노니는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쌍떡잎식물로 학명은 ‘모린다 시트리폴리아(Morinda citrifolia)’다. ‘인도뽕나무(Indian mulberry)’, ‘치즈과일(cheese fruit)’로도 불린다. 주로 괌·하와이·피지·뉴질랜드 등 남태평양 지역에서 서식한다. 중국ㆍ동남아시아ㆍ오스트레일리아ㆍ인도 등지에서도 두루 재배되고 있다. 10~18cm 정도의 울퉁불퉁한 감자 모양의 열매로 초록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냄새는 역한 편이며 맛이 쓰다.
노니가 함유하는 파이토케이컬(phytochemical) 성분들은 항염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성분은 프로제로닌(proxeronine), 스코폴레틴(scopoletin), 이리도이드(iridoid) 등이다. 프로제로닌은 체내에서 제로닌(xeronine)으로 변환돼 세포벽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영양분의 흡수가 쉽도록 해 손상된 세포 회복 및 재생에 도움을 준다. 스코폴레틴은 혈압조절, 염증억제에 효과가 있다. 이리도이드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세포손상과 노화를 방지하고 바이러스 등 병원균 침입을 막는다.
이밖에 담나칸탈(damnacanthal), 폴리페놀(polyphenol), 우르솔산(ursolic acid) 등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암세포의 생성·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폴리페놀은 100g당 365㎎으로 키위(2.9㎎), 망고(2.5㎎) 등에 비해 100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신경전달물질로 통증을 완화하는 세로토닌(serotonin)도 함유하고 있어 카리브 지역 등에선 노니나무를 ‘진통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또 신진대사를 촉진해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고지혈증이 유발된 쥐에 노니 추출물을 투여한 결과 콜레스테롤이 12.8%, 중성지방은 무려 28.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원이 발표한 ‘노니 발효물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항당뇨 발효식품’이란 제목의 논문에선 인위적으로 당뇨병을 유발한 실험 쥐를 노니섭취군과 비섭취군으로 나눠 관찰한 결과 노니 섭취군의 혈당수치가 대조군에 비해 47.1%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같은 효능·효과와 성분을 근거로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어 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보통 치료효과나 기능성을 가진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를 받아야 이를 홍보할 수 있지만 노니로 만든 분말이나 환 제품은 이들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못한다. 온라인 상에서 노니를 검색하면 만성염증개선, 다이어트효과, 노화방지, 당뇨예방 등 다양한 효능을 내세우고 있지만 원료를 가공하는 방식이나 함량 등에 따라 실제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믿고 먹기 어렵다.
또 구입한 제품을 복용할 때 기존 병력에 따른 주의사항을 표기하지 않은 제품이 많아 섭취하기 전 개인의 건강상태 확인이 필요하다. 노니는 칼륨 함량이 높아 고혈압약·칼륨보존성 이뇨제 등을 복용하는 사람이라면 혈중 칼륨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고칼륨혈증을 초래할 수 있다. 신장기능이 떨어진 사람도 칼륨 배출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칼륨이 고혈압약 성분과 만나면 약 성분의 체내 흡수를 막아 약효가 떨어지게 돼 있다.
또 개인별 체질이나 섭취 가능한 용량이 달라 과다복용 시 설사, 복통, 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노니의 하루 적정 섭취량은 분말은 1티스푼(약 3g), 주스는 원액 60㎖를 1~2회 나눠 먹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일반식품이라 이같은 내용을 고지할 의무사항이 없으므로 부작용을 겪지 않으려면 소비자가 직접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제품은 대부분 일반식품으로 등록돼 제조시설이나 제품 기능성 등 전반적으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실제 효능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다광고돼 보건당국이 제제조치에 나서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심의위원회에서 논의된 검사 대상·항목 등을 바탕으로 제품별 유통 현황 등을 고려해 이번달부터 수거·검사에 나설 계획이다. 검사 대상은 국내 품목제조에 보고된 267개 제품과 수입이력이 있는 제품 145개 등 총 412개 제품이다. 식약처는 금속성 이물과 식품위생 오염지표 미생물 3종(세균수·대장균·대장균군)을 검사한다. 또 혈압강하 및 이뇨제 등 의약품 성분 23종이 노니제품에 불법적으로 혼입됐는지 여부를 쇳가루 등과 함께 조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적발된 제품을 보면 해외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하는 노니 분말 등은 원료 자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국내 가공과정에서 쇳가루가 혼입되고 온라인 판매업체가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하게 하거나 과대 광고를 하는 게 대부분으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선 제조시설에 대한 관리·감독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이번 쇳가루 노니제품을 적발한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9개 제품은 모두 국내에서 분말·환으로 제조한 제품”이라며 “외국에서 가공한 수입 완제품 4개 중엔 부적합 제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는 부적합 제품을 전량 회수 및 폐기하고 식품 당국에 업체에 대한 행정조치를 의뢰하는 한편 허위·과장 광고를 한 업체를 고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