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의 ‘퍼스트 제네릭’에 대한 국내 제약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각종 규제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내 제네릭(복제약)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미국은 오리지널 의약품 또는 의료기기의 첫 번째 복제품인 ‘퍼스트 제네릭’에 우선판매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 제도는 기존 특허권에 대한 도전을 장려하고 상응하는 보상을 부여해 제네릭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퍼스트 제네릭 의약품으로 선정되면 180일 동안 미국 시장에서 제네릭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이스라엘 테바(TEVA)는 2010년 로사르탄의 퍼스트 제네릭 및 로사르탄+하이드로클로로티아지드 복합제의 퍼스트 제네릭을 출시한 이후 6개월 동안 각각 2100억원, 314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가 진출을 노리는 ‘빅 마켓’이다. LG화학 등 한국 제약업체도 미국의 제약산업단지인 보스턴에 지부를 설립하고 현지 제약사와 협력하는 등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 시장 진출에는 아무래도 고비용이 든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신약 특허신청 비용이 적게는 109만달러(약 12억원)에서 많게는 217만달러(약 24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제네릭 독점권 신청은 상대적으로 적은 6만달러(약 6600만원)가 든다.
미국의 제네릭 시장은 2012년 약 470억달러(약 51조원)에서 2018년 약 690억달러(약 76조원)로 46% 가량 커졌다. 미국 특허법률사무소 퍼킨스 코이(Perkins Coie)는 이 시장이 2022년 860억달러(약 94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 6일 퍼킨스 코이와 함께 개최한 ‘미국 퍼스트 제네릭 진출전략 세미나’에서 이 곳 소속의 윌리엄 맥케이브 변호사는 “2008년 미국 의약품 시장에서 제네릭 비중은 72% 수준이었는데 2017년엔 90%대로 늘어났다”며 “이는 시장이 커진 만큼 경쟁이 이미 포화상태로 시장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의 가능성과 퍼스트 제네릭 의약품에 선정됐을 때 거둘 수 있는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도전해볼만 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맥케이브 변호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등재된 ‘오렌지 북(Orange Book)’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했다. 오렌지 북은 특허를 받은 오리지널 제품과 제네릭 의약품의 정보가 총망라된 인터넷 페이지로 제품에 대한 효능 및 특허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ANDA(Abbreviated New Drug Application, 제네릭 의약품 인허가 제도)에 등록된 제네릭 의약품과 최종 비교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도전해볼 수 있다.
브랜든 M.화이트 변호사는 “제네릭 품목허가 신청의 40%가 인도 제약사를 통해 이뤄진다”며 “2017년 허가된 제품 중 300여 개가 인도가 개발한 것으로 한국 제약사도 성공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범 전 제약특허연구회 회장은 “국내 제약사의 미국 퍼스트 제네릭 진출은 풍부한 제네릭 개발 및 특허소송 경험, 영업마케팅 비용 절감 등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며 “원료생산은 해외CMO(원료위탁생산기업)에 맡기고 미국 로펌·CRO(임상시험대행기관)·CSO(판매대행기관)와 함께 법적 대응, 임상시험, 공동마케팅을 진행하면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시장과 비교하면 진입비용도 높지만 거둘 수익도 크다는 점에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인 셈이다.
미국에서 퍼스트 제네릭 약품으로 선정되면 오리지널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독점 판매가 진행되는데 같은 성분의 약을 가지고 동시에 두 곳이 선정됐다면 반으로 나누고, 세 곳이 선정됐다면 삼등분해 약가를 책정한다. 이 때문에 오렌지 북이나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수집이 매우 중요하다.
퍼스트 제네릭이 아닌 일반 제네릭 약가도 경쟁품목이 많을수록 떨어진다. IMS헬스 자료를 보면 1개의 제네릭이 출시됐을 때 약가는 오리지널 대비 94% 수준이지만 10개가 출시되면 20%, 19개가 나오면 6%까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독 퍼스트 제네릭이 아니면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내에서 소요되는 비용 대비 미국의 특허소송비, 생동성시험비, 허가비 등은 수배에서 수십배에 달하므로 이를 감당하다보면 원가를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김 전 회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퍼스트 제네릭에 등재하기 위해 소요되는 총 개발 비용은 60억원∼110억원, 최대 60개월에 달하는 시간이 소요된다. 이 비용이라면 국내에서 신약개발에 나서거나 한국 약가제도를 활용한 제네릭 의약품을 개발·판매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이견도 제기된다.
국내 제약사의 의견은 분분했다. A제약사 관계자는 “미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데 제도의 장점을 살려 재고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B제약사 관계자는 “미국 시장은 이미 테바 같은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가 넘쳐나 국내 업체가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비용, 시간, 리스크를 고려하면 사실상 힘들다고 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본금이 적은 중소제약사 입장에선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제약사가 투자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예상되는 수익성 하나로 어필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투자자를 확보하긴 어렵다”며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제약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퍼스트 제네릭 제도는 자본력과 특허소송 경험을 갖춘 제약사를 위한 제도라는 평가 속에 어차피 해도 안될 것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더 강한 게 국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인도나 이스라엘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 한국 제약사의 첫 ‘월드 퍼스트 제네릭’ 의약품 등장이 요원하지만은 않다는 분위기가 슬슬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