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인근 동네의원이 집중 관리해주는 ‘1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과도한 행정부담, 낮은 수가, 환자들의 관심 부족 등 악재가 겹치면서 내과 개원의 사이에서 보이콧 분위기가 무르익고, 회원들의 눈치를 보던 대한의사협회도 시범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총 3차에 걸쳐 실시된 시범사업에서 총 1193개 의원에서 5만1046명의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만성질환관리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언뜻 시범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김종웅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장(내과 전문의)은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참여하는지 몰라 못하는 회원, 행정상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시범사업 참여를 포기한 회원이 적잖다”며 “정부가 시범사업과 환자 교육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개원의가 아닌 교수들의 의견만 듣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 중인 C 원장은 “1년간 환자 한 명 당 35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참여하는 회원이 많지만 막상 해보면 과정이 순탄치가 않다”며 “등록서류와 컴퓨터 입력정보가 급격히 늘면서 행정업무가 가중돼 인력이 부족한 병원은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원내과의사회 관계자는 “환자관리를 위한 서류가 복잡해져 행정업무가 가중된 데다 정작 수가는 낮게 책정돼 불만을 토로하는 회원 의사들이 적잖다”며 “행정업무 과다로 인한 진료시간 연장과 부족한 보상, 홍보 미흡 등이 시범사업 참여를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또 “기본진료를 하면서 시범사업을 설명하고 시범사업 동참 여부, 검진 바우처 관련 설명, SNS문자 수신 동의, 개인정보보호법 동의 등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3개월 단위로 이 모든 절차를 차질없이 시행해야 최대 수가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중 한 절차만 빠지더라도 제대로 수가를 받을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불참 의사를 밝히는 개원의들이 늘면서 원래 만관제 참여로 가닥을 잡았던 의협은 재차 시범사업 불참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도 의사회 임원진은 일방적인 보이콧 결정은 의사·환자 간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며 보이콧을 반대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시범사업 참여를 철회했다간 대중으로부터 자칫 의사들의 속좁은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질 수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제는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가까운 동네의원에서 적은 비용으로 대면진료, 상담, 약물치료에 더해 포괄적인 맞춤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한다.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시범사업 참여 동네의원을 방문해 등록하면 해당 의료기관은 환자의 질환 및 생활습관을 파악해 1년 단위의 관리계획(케어 플랜)을 수립한다. 이후 문자와 전화 등을 통해 혈압·혈당 등 임상수치를 관리하고 환자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한편 진료와 상담서비스도 제공한다.
복지부는 시범수가를 포괄평가 및 계획수립(연 1회) 4만3900원, 점검 및 평가(연 2회) 2만4500원, 환자관리료(연 4회) 2만8000원, 초회 교육·상담(연 1회) 3만4500원, 기본 교육·상담(연 8회) 통합 개인 1만400원 및 집단 3100원, 생활습관 개선 개인 8900원 및 집단 2600원, 집중 교육상담 개인 1만9200원 및 집단 5700원 등으로 책정했다.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10%가 적용돼 연간 1만6000원∼2만3000원만 부담하면 만성질환 관리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환자관리료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 또 40세 이상 고혈압·당뇨병 환자는 보건당국으로부터 맞춤형 검진바우처(이용권)를 받아 참여 의료기관에 제시하면 필수검사를 1회 무료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