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일회용 인공눈물(점안액) 약가인하를 놓고 제약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부딪히며 일선 약국에선 즉시 고시된 약가를 적용하기 위해 반품과 재주문의 절차를 거치느라 애를 먹었다. 고시일(31일)과 시행일(1일)간 간격이 너무 짧아 약가 차액을 제 때 정산하지 못해 벌어진 사태였다.
이같은 약가고시 변경 기간이 짧은 문제는 그동안 개선 필요성이 계속 지적돼왔다. 약사들은 제약사, 도매업체와 정산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 논의하느라 행정업무가 가중된다며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요구해왔다.
한 약사는 “1주일 전에 고시를 해도 겨우 처리하는 수준인데 3~4일 전에 갑자기 고시하는 할 때도 많다”며 “약가 차액이 적으면 편의상 그러려니 넘어가는데 차액이 크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엔 마더스제약 등 9개사가 골관절염 천연물신약인 한국PMG제약 ‘레일라’의 복제의약품(제네릭) 출시를 앞두고 특허분쟁을 벌이던 중 법원의 약가인하 집행정지 결정이 해제되면서 레일라의 약가가 갑작스레 떨어져 약국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소송으로 약가인하 조치가 잠시 유예된 상황에서 법원이 한국PMG제약이 9개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발매 정지 처분 요청 소송이 기각되자 약가가 떨어졌고 허둥지둥 뒷수습에 나서야 했다는 게 약사들의 이야기다.
현재 시행되는 월단위 약가인하 조치는 매월 말(25~30일)에 고시하고 다음 달 1일에 시행해 약국의 의약품 사입 등 효율적인 재고관리를 저해하고 재정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2007년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월 15일 이전 약제급여목록 개정고시를 발령하면 다음달 1일 시행하고 매월 15일 이후 발령 시 다다음달 1일 시행하는 방식의 소위 약가조정 적용 ‘1개월 유예제도’를 운영했다. 하지만 2013년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한 사후조치로 이 제도는 폐지됐다.
이에 약사회는 정부의 약가인하 고시, 제약사의 해당 고시 집행정지 신청, 이에 대한 법원의 인용 등이 이뤄지면서 일선 약국의 피로도가 누적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피력했다. 약가조정, 양도·양수 및 비급여 전환에 따른 보험약가코드 삭제, 해당 품목의 반품 및 정산 등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총괄적인 업무처리 프로세스 마련을 요청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약가고시일과 시행일의 미스매치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약가조정 시스템과 프로세스 변경 등에 현장의 어려움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문제는 약사뿐만 아니라 정산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도매유통업계에도 부담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도매업계 관계자는 “과거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에 대해 복제약 출시에 따른 약가인하와 회사의 자진 약가인하 등이 결정된 뒤에도 약가인하를 유예하게 되면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손해를 떠안게 된다는 입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며 “보험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으니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는 감수하라는 입장인데 현재도 그러한 떠넘기기식 관점이 크게 달라지지 않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같은 약사회의 요구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약제급여목록 개정고시 발령일로부터 약가인하와 삭제 시행일 사이에 1주 남짓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임시적인 조치를 취해 지난해와 같은 기습 약가인하 조치의 우려에서는 잠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유예기간 부여에 그치지 않고 제도를 명문화해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원활한 의약품 유통과 약국이나 도매상이 겪는 유통과정 상 손실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