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육군 제2사단 독수리연대 소속 홍정기 일병은 훈련 중 뇌출혈 증상을 호소했다. 의무대에선 이미 구토 증상이 심해지고 이유없는 멍이 들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감기 증상이라며 두드러기 약과 감기약을 처방했다. 결국 증상이 심각해져 군병원으로 이송된 뒤 대학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친 홍 일병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017년에는 의무경찰로 복무 중인 대원이 훈련소에서부터 복용하던 신경정신과 치료제 복용을 중단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우울증치료제에 졸음을 유발하는 성분이 포함돼 야간근무에 실수를 저지른 후 임의로 복용을 중단했다가 자살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생긴 비극이었다.
큰 관심을 불러왔던 이들 사고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매년 군, 경찰 등에서 일반약은 물론 전문약까지 무자격자 처방·조제했다가 사고가 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군 병원에선 마약류에 해당하는 의약품이 오남용되고 있다. 이는 매년 언론과 국회 국정감사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지만 관심이 사그러든 뒤에는 새로운 사고가 터질 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2012년 군병원과 의무대를 대상으로 한 ‘군 의료체계 개선 추진실태’ 감사결과를 살펴보면 군병원에서 약제장교 부족으로 무자격 의약품 조제가 여전하다. 각급 의무부대에선 무면허 약제병이 병용금기·시판금지 의약품을 처방·조제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2016년 기준 약제장교는 전 군을 통틀어 40명 정도가 복무하고 있어 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약제장교 입대를 준비 중인 한 약대생은 “그나마 자리를 지키는 약제장교도 순환보직에 해당돼 행정, 군수 등 관련 업무를 병행하는 실정”이라며 “주업무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약제장교 입대가 흡족하지 못한 선택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무자격 의무병 불법조제 및 관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올해부터 지원자격 강화에 나섰다. 현재 약학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은 약사면허 보유여부에 따라 약제장교, 일반의무병, 전문의무병, 전문연구요원 등으로 복무할 수 있다. 이 중 약학 전공자가 지원할 수 있었던 전문의무병(약제병)의 자격기준을 약사만 지원하도록 변경했다.
이에 대해 전국약학대학학생협회는 “전문의무병 자격이 강화됐지만 병사의 신분으로 군의관을 보조하는 수준으로 자율적인 약사 업무수행이 어렵다”며 “약무 관련 업무만을 할 수 있는 약무장교·공중보건약사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입법 움직임도 있었다. 무자격자 조제·약제관리 대책마련을 위해 전혜숙 국회의원이 발의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개정안은 약사면허 소지자가 약무분야 장교로 편입하거나 약대생이 약무사관후보생을 지원하면 의무·약무·법무·군종·수의 사관후보생의 병적에 편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전혜숙 의원은 입법취지에 대해 “지방으로 갈수록 국공립병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의사·약사·간호사 등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은 특히 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며 “국공립병원 또는 의료취약지역에서 발생하는 의약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중보건약사를 배치해 취약한 의료전달체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가 2017년 약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반수를 넘는 학생이 복무기간이 짧은 병 복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장교와 같이 장기복무에 따르는 여러가지 제도적 이점을 개선한다면 병 복무 대신 직업군인으로 진출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추가돼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길도 열린다.
지방 군소도시에는 약사인력 확보가 어려워 제대로 된 약무가 어려운 지역이 존재한다. 이에 공중보건약사를 제도화해 각 보건소 내 공중보건약국을 설치하자는 공약이 지난 약사회장 선거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약료소외지역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투트랙 전략으로 전문의무병제도를 활용해 약대생의 전공을 살리도록 하고 약무장교, 공중보건약사 등으로 군 복무가 가능하도록 추진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