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서울의대’에 보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상류층의 모습을 그린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SKY캐슬)’이 연일 시청률 대박을 내고 있다. 첫 방송 당시 1%에 불과했던 시청률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차 상승해 어느새 케이블방송 역대 최고인 23.8%를 달성했다.
드라마 에피소드의 상당 부분이 ‘주남대병원’이라는 가상의 의료기관에서 진행되다보니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직군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성격, 진료 스타일, 치료법 등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주남대병원 정형외과 과장 강준석(정준호 역)과 신경외과 과장 황치영(최원영 역)의 갈등 구조도 흥미를 유발했다. 극 중 강준석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척추수술 명의’로 척추관절센터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주남대병원장이 되는 게 그의 유일한 목표다.
하지만 수술을 다소 무리하게 강행하는 탓에 한쪽 다리가 마비되는 등 부작용을 겪는 환자가 적잖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곤혹을 겪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을 앓던 직속 후배 우양우 정형외과 교수(조재윤 역)가 ‘피부를 덜 째고 통증·부작용도 없다’는 이유로 자신 몰래 황치영에게 진료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극심한 배신감까지 느꼈다. 결국 현임 병원장의 견제로 척추관절센터장 자리를 앙숙인 황치영에게 뺏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현직 의사들은 드라마속 갈등 구조가 다소 과장된 면은 있지만 어느 정도 실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K대 정형외과 교수는 “드라마에서 정형외과 교수인 강준석은 환자보다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고 과잉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권력지향적인 캐릭터인 반면 신경외과 교수는 환자에게 따뜻하고 정의로운 의사로 묘사돼 동료 정형외과 의사들이 탐탁치 않아 한다”며 “드라마처럼 대놓고 갈등을 드러내진 않지만 척추질환 치료시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의 영역이 겹쳐 적합한 치료법을 결정할 때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형외과 교수와 레지던트들의 관계 같은 것은 잘 묘사됐다고 본다”며 “아무래도 수가 많은 정형외과는 회진을 돌 때 교수, 후배 의사,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고 선후배 관계가 더 엄격한 반면 신경외과는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많아야 한 두명이 회진다닐 때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대학 또다른 정형외과 교수는 “몇 년 전부터 각종 미디어에서 마치 척추수술을 ‘과잉진료 원흉’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강했다”며 “내시경시술이나 신경성형술 같은 최소침습시술은 통증을 일시적으로 개선할 뿐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라서 무작정 수술을 미루다간 더큰 부작용과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외에도 애매한 진료 범위 탓에 진료과간 갈등이 생기는 사례가 적잖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치료제로 쓰이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 급여기준을 놓고 대립 중이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진료과에서 SSRI 처방시 급여 제한은 60일로 제한돼 있다. 이에 신경과 전문의들은 파킨슨병처럼 SSRI 투약이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신과 의사들은 “SSRI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오히려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사들은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 이른바 ‘심장스텐트’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관상동맥질환, 판막질환, 선천성 심장기형 진단 및 치료를 위해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를 실시할 경우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사가 협진해야 건강보험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시안을 발표했다.
전공의 기피 현상으로 사기가 떨어진 외과, 그 중에서도 고난도 수술 건수가 많고 업무 강도가 가장 세다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수익 향상을 위한 ‘당근책’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심장스텐트를 사실상 독점해왔던 심장내과 의사들은 “불필요한 ‘통합진료’로 환자 대기기간과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문제 발생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갑상선수술 분야에선 외과와 이비인후과가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17년 주요수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2만8699명이 갑상선암이나 다른 갑상선질환을 진단받아 갑상선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잉진료’ 논란이 불거지며 2012년 5만1513건에서 5년새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여전히 병원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인식된다.
원래 갑상선수술은 외과 의사들이 주도해왔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가세하면서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그러던 중 2009년 복지부가 침체된 외과계를 살린다는 이유로 갑상선을 비롯한 외과수술 수가를 30% 인상하자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불만이 가중됐다. 외과 수가가 인상되면서 병원 측이 내원한 갑상선질환 환자를 외과로 먼저 보낸다는 이유에서다. H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외과, 이비인후과 중 누가 더 갑상선수술을 잘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갑상선암의 경우 암세포가 임파선이나 기도 등 주변 부위로 전이됐다면 해당 부위 해부학적 구조에 더 익숙한 이비인후과 교수가 수술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