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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범죄’보다 위험한 ‘외로운늑대’ … 은둔형외톨이 통계조차 없어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12-17 11:10:50
  • 수정 2021-07-20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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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난·양극화로 국내 21만명 추산 … 스트레스 해소 못해 극단적 폭력 표출

‘외로운 늑대형’ 범죄는 명확한 범행 동기가 없는 ‘묻지마 범죄’와 달리 사회를 향한 분노를 품고 있어 범행 타깃이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
취업준비생 서모 씨(32)는 4년 동안 준비하던 공무원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올해 초부터 거의 100곳에 이르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탈락했고 어쩌다 면접까지 본 곳에선 ‘그 나이까지 스펙도 안쌓고 뭐했냐’는 타박만 받았다. 잇따른 취업 실패로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점차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도 줄어 이제는 거의 연락을 끊고 산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짜증이 밀려와 ‘버럭’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 씨는 “원래 외향적인 성격이라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친구나 지인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취업이 안 되다보니 친구들을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었고, 점차 소외감을 느꼈다”며 “친구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느낌이 들면서 자존감이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다”고 말했다.

취업난, 양극화가 장기화되면서 외부와의 교류를 끊는 은둔형외톨이 청년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은둔형외톨이는 질병, 학업문제, 대인관계 부적응 등 개인적인 문제가 주요인이었지만 점차 사회경제적 이유로 은둔하는 청년이 증가하는 추세다.

은둔형외톨이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고 가족 아닌 사람과 교류하지 않은 채 6개월 이상 집에 머무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국보다 일찍 은둔형외톨이 문제가 부각된 일본에서는 2010년부터 다양한 통계자료와 지원책을 제시했다. 프랑스도 작년부터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은둔형외톨이 46만명을 발굴하고 관련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한국은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이 매년 5월 15~29세 청년층 미취업자(재학 등 제외) 중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낸다’고 답변한 사람을 조사하는 게 이런 실태조사의 하나다. 2008년 첫 조사 이후 이 숫자는 20만명 초·중반대를 유지하다 2017년 25만2000명, 2018년 29만명으로 늘었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해 국내 잠재적 은둔형외톨이를 21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윤 의원실이 청소년위원회와 일본 후생노동성이 제시한 기준을 참고해 장애등급 및 정신과 진료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이상 직장·지역가입 이력 없이 부모에게 피부양자로 등록된 20~49세 성인을 조사한 결과 84만8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20대는 대학 진학과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제외하고, 나머지 30·40대를 종합한 결과 약 21만2000여명이 은둔형외톨이로 의심됐다.

실업·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방에서 벗어나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취업 문제로 3~4개월씩 주위 사람과 연락을 끊는 잠재 위험군까지 감안하면 은둔형외톨이 숫자는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김정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졸업 후 취업준비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자존감 저하, 대인기피,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하게 된다”며 “반복적인 구직실패 경험은 결국 구직활동 포기와 은둔형외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은둔형외톨이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적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지난 3월 새로 산 침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버지와 누나를 살해한 A 씨는 군 전역 이후 외부와 자신을 격리하는 은둔형외톨이 증세를 보였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 신모 씨(21)를 주먹으로 폭행하고 흉기로 80차례 찔러 살해한 김성수도 은둔형외톨이였다는 학교 동창생들의 증언이 나왔다.

친동생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쳐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B 군(19)은 올해 고교 졸업 후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일 오후 3시 20분께 전주 시내 자택에서 TV를 보던 중 동생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동생은 “라면 먹고 왜 설거지를 안 했느냐”면서 욕을 섞어 타박했다. A군은 평소 동생과 사소한 일로 주먹다짐을 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욕까지 듣자 폭발해 동생의 얼굴을 때리고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와 휘둘렀다. 동생은 눈, 이마, 목 뒤에 상처를 입었지만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뇌 손상 등으로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고 의식이 회복된 뒤에도 기억력, 계산능력, 운동능력에 장애가 남았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취업실패, 실직, 이혼 등 이유로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찾지 못해 우울과 불안 등 부정적 감정이 침착되고 자칫 극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은둔형외톨이가 폭력성을 키워 불특정 다수에 테러를 가하는 ‘외로운 늑대형’ 범죄는 명확한 범행 동기가 없는 ‘묻지마 범죄’와 달리 사회를 향한 분노를 품고 있어 범행 타깃이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왕따→은둔형외톨이→외로운 늑대’로 바뀌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위험성을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생 시절의 왕따가 사회에서도 여전한 왕따가 되고 결국 범죄자가 된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포용하는 문화와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사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범죄를 그저 환자로 치부하고 ‘그 사람은 원래 그랬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고 끝난다면 앞으로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 은둔형외톨이를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는데, 이들은 위험한 게 아니라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집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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